성공을 부르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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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이 가만히 우리 곁에 다가와 덮어두었던 희망에 대해 묻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지루함에 대해 위로
의 말을 건넵니다. 복잡한 문제의 엉킨 실타래를 풀고 믿음과 관계의 진실한 면을 보여줍니다. 또 이름 모를
선사시대로 우리를 데려가 시간의 덧없음에 대해 알게 해줍니다. 그들은 왜, 이곳에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모두 여기 있는 거야. 너나 살아 있는 다른 사람들이 여기 있는 것처럼. 너희와 우리, 우리는 망가진
것들을 조금이라도 고치”려고 우리 곁에 존재합니다. 존 버거의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죽은 자들
의 목소리를 통해 삶에서 잊힌 가치들을 현재로 소환합니다. 삶에서 스스로 누락시켜버린 한 조각의 가치, 의미,
용기, 소명 같은 것들 말이죠. 그 사라진 것들을 복원시켜 우리에게 희망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공유된 희망 속
에서 삶의 긍정을 찾기를 바란 것이죠. 삶은 어쩌면 우리에게 늘 호의적이라는 사실, 그 단순한 문장을 건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러니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입니다. 죽은 이들의 생생한 증언의 현장을 말입니다. 소설의 페이지를 펴는
순간, 다른 각도에서의 빛나는 삶의 찬란한 무늬를 목격할 수 있으니까요.


 
☞ 책/영화읽기
작성자  설악 작성일  2015.03.18 14:29 조회수 735 추천 0
제목
 봄이 오면, 사랑을 선언하라  
 
이서희 Headshot

<관능적인 삶>의 저자

 
PARIS PEOPLE

서른이 되기 전까지는 만남의 무게가 얼마나 이중적인지 몰랐다.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이별을 잠깐의 휴지기로만 생각했다. 다시 찾아올 것이고 다시 마주치리라 믿었다. 타인을 우연히 만나 서로 알아가는 과정은 언제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낯선 삶이 내 안의 풍경으로 들어오는 순간은 곱씹어볼수록 독특한 풍미를 풍겼다. 세상은 온통 예감과 그 실현으로 이루어진 듯 보였고 내 앞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이별을 회복할 시간이 남아있었다. 당신과 나 사이에 자라났던 에너지는 결코 소멸하지 않아서, 멀리 반짝이는 별처럼 궤도를 돌며 반드시 찾아올 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랍 속에 남아있는 낡은 일기장처럼,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사라지지는 않는. 하지만 이곳저곳을 떠돌다 보니 오래된 일기장마저 내 삶이 토해낸 거대한 짐 속에서 실종될 수 있음을 알았다. 이름조차 잊은 사람도 있다. 거리를 걷다 마주칠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에 흩어진 사람들, 장소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잇는 지도를 만들어 본다. 별자리를 그리듯이, 어떤 형상이 반짝이듯 일어나기를 소원하며.

나의 사랑의 지도에서 프랑스의 서쪽 도시 낭트도 반짝이는 자리이다. 오래 전 초겨울, 남자친구와 함께 그곳에서 열리는 영화제를 찾았다. 영화제 첫날, 사무실에서 즉석으로 찍은 증명사진이 박혀 있는 배지를 만들었다. 내 목에 배지를 걸어주며 그가 말했다.

"영화제가 끝난 뒤에 바꿔 가지자. 함께 왔다는 걸 기념하기 위해서 말이야."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남자친구는 어디를 가든 카메라를 들고 다녔다. 렌즈가 나를 향할 때마다 차마 마주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몇 번의 시도 뒤, 그의 카메라는 나를 시야에서 잃어버린 듯 외면했다. 그는 대신 내가 찍는 모든 증명사진을 골똘히 바라보거나 몰래 가져갔다. 돌려달라고 해도 잃어버렸다는 식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나중에 그의 서랍과 지갑 안과 사무실 책상을 옮겨 다니는 그 사진들을 발견했다. 속이 울렁거렸고 가벼운 어지럼증마저 찾아왔다.

나는 그와 사랑에 빠진 상태를 잘 견디지 못했다. 내 바닥이 드러나는 일을 가장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필요보다 더 넓은 거리감을 두는 것으로 나를 보호했다. 그를 사랑하는 일은 외로웠으니까. 약속을 잡고 나면 그를 만나기까지의 모든 시간은 한편의 부록처럼 사소해졌으니까. 그것은 알 수 없는 낭패감을 불러 일으켰다. 불시에 찾아든 공격에 저항 없이 항복한 느낌. 엄습하는 무기력함. 나는 나약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손길을 애처롭게 기다리는. 드디어 약속장소에 도착할 때면, 반갑게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 어리둥절해졌다. 마음속에 그려왔던 모습과 닮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바라봐도 그를 그리는 시간을 넘어설 수 없었다. 내 머릿속에서 자라고 변하고 거듭나는 그의 모습 때문인지 그는 마주할 때마다 낯설었다. 생소하기에 자꾸 보게 되지만, 익숙해지면 곧 헤어져야 할 얼굴. 나는 온종일 너를 보기를 기다렸다고 말하는 대신, 온종일 우울했던 아이의 표정을 지어버렸다. 시큼하고 지루한 얼굴로 나의 벅찬 그리움들을 숨기려고 애썼다. 그리움은 기다림을 무겁게 했다. 기다림의 무게는 나를 자꾸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안간힘을 써서 기어오르려 할수록 그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졌다. 지금은 생각한다. 사랑으로 자신의 바닥을 드러냈어야 했다고. 사랑은 그렇게 바닥을 탐사하는 행위라고. 함께, 문드러지고 뒹굴면서. 때로는 혼자이더라도. 바닥을 본 자의 겸허와 용기로, 온몸의 곤두선 핏줄처럼 나를 옭아매는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났어야 했다고. 그렇게 떠올랐어야 했다고.

그래도 그 겨울의 낭트는 달콤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서걱거리는 입술을, 베어 물듯 나누는 입맞춤을 아는지. 우리는 간만에 균형을 찾았다. 뒷걸음치다 우연히 맞닥뜨린 온전한 순간이었다. 사고처럼 찾아온, 그래서 더 급작스레 달콤했던. 들뜬 마음으로 영화제 사무실을 나와 거리를 걸어가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남자친구에게 말했다.

"저 사람,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영화평론가야. 내가 영화를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 중에 저 사람도 있어."

그는 당연한 일이라도 되는 듯 내게 말했다.

"가서 인사해. 네 소개도 하고. "

"모르는 사람인데?"

"네 삶에 영향을 준 사람이라며. 인사를 건네는 편이 좋아."

나는 그의 말에 기운을 얻어 영화 평론가에게 달려갔다. 무작정 말을 붙였다. 안녕하세요. 선생님의 강연을 몇 차례 듣기도 했습니다. 파리에서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이에요. 예상 외로 그는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잠시 카페에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기까지 했다. 헤어지면서는 연락처를 주고받았고 나는 들뜬 마음으로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을 호텔로 돌아왔다. 그가 문을 열자마자 와락 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지금까지 그 분이랑 이야기하다가 왔어. 강의를 몇 번이나 들었어도 인사조차 건네지 못했는데."

"봐. 말 걸기를 잘했지? 연락처도 받았어?"

"응."

"앞으로 네가 일을 하게 될 때 여러모로 도움이 될 거야. 사람들을 알아둘 수 있는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 편이 좋아. 영화를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지?"

그런 이야기를 나눌 때면 그는 부쩍 어른스러워 보였다. 창가에 늘어진 하얀 커튼이 문틈으로 스며든 바람에 흔들렸다. 나는 대답 대신 길게 입을 맞추었다. 그에게 말하지 않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래서 말을 할 수 없는 순간이 더 자주 찾아왔는지 몰랐다. 화가 나도, 고마움을 느껴도,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을 때도, 모두 그를 안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를 통해 알았다. 벅찬 매혹은 혀를 앗아간다고. 너무 버거워서 말이 미리 허무해지는 법이라고. 인어의 목소리를 앗아간 건 마녀가 아니라 휩쓸리듯 찾아온 매혹이었다고. 매혹은 때로 두려움을 부르고 두려움은 말을 잃게 한다고.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말을 하지 않은 자는 사랑을 잃게 되는 법이었다. 어쩌면 시작조차 못하고. 나는 단 한 번도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보지도 못하고 그와 헤어졌다. 그를 마지막 본 날도 역시, 나는 잠깐의 이별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고 믿었고 그때면 내 입에서는 사랑의 말들이 물결처럼 흘러나오리라 꿈꾸었다. 봄이 오면 꽃이 피듯 그렇게. 그러나 사랑의 봄은 절로 찾아오지 않았다. 우리는 내내 겨울을 살다, 반짝 내려앉는 햇살에 봄을 그려보다, 겨울로 끝이 났다.

롤랑 바르트는 그의 책 <사랑의 단상>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에 대해 말한다.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을 정확히 표현하기란 불가능하다. 젊은 베르테르가 로테의 초상화를 그릴 수 없었던 것처럼. 불투명성과 진부함 사이를 흔들거린다. 최초의, 천국 같은 언어이기에 다른 어떤 언어도 필요로 하지 않는 바로 그 관능의 언어에 우리는 이를 수 없다. 그러나 바르트는 허무함의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그는 "선언의 중요성"에 이르러, "무언가 알려지려면 말해야만 하고, 또 그것은 일단 말해진 이상 일시적이나마 진실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알랭 바디우는 <사랑예찬>에서 사랑의 선언에 우연을 운명으로 끌어들이는 힘을 부여한다. 사랑의 선언은 "단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길고 산만하며, 혼란스럽고 복잡하며, 선언되고 다시 선언되며, 그런 후에조차 여전히 다시 선언되도록 예정된 무엇"이 된다.

이제는 잘 알고 있다. 말을 하는 행위를 두고 미리 허무해져서는 안 되었다고. 낯선 이에게 달려가 말을 걸듯, 매번 낯설어지는 당신에게도 달려갔어야 했다고. 계속해서 말했어야 했다고. 사랑은 표현하는 만큼 힘을 얻는다. 주문처럼 자꾸 우리 사이를 떠돌아야 하는 것들, 사랑의 말들. 다가오는 소리마저 사랑의 주문처럼 들리는 계절이 오고 있다. 입을 열어 주문을 읊조린다. 봄이 온다. 사랑이 온다. 이제 달려가 인사를 건넬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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