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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0의 행복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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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것은 사람만이 꽃을 아름답게 바라볼수있기 때문이다
 
명언, 귀감글
작성자  빛과소리 작성일  2017.09.13 11:15 조회수 744 추천 0
제목
 유태인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53가지 지혜  
 

유태인의 자녀를 낳고 기르는 53가지 지혜
지은이: 루스 실로 지음
 
   

제1장. 지를 기른다  

1.남보다 뛰어나게 아니라 남과 다르게 기른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교육 어머니라고 할 수 있다.
영어의 Jewish Mother(유태인 어머니)란 말은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그중 하나가 자녀들에게 배움의 필요성을
지겹도록 강조하는 극성스런 어머니란 뜻이다.
그러므로 유태인들은 이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을 어머니로서의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 19장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너는 이같이 야곱 족속에게 이르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라.

야곱은 유태인의 조상이다.
하나님이 후세에 유태인의 일상생활의 기본이 되는
십계를 가르치라고 모세에게 명령한 이 성경 구절에서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처음에는 아주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나중에는 매우 엄하게 이 말을 되풀이했다는 사실이다.
이 일로 인해서 십계의 구상은 먼저 여성에게 전해졌고,
다음에 남성에게 주어진 것이라고 랍비(유태교의 율법사)들은 생각했다.
야곱의 집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부드럽고 여성적인 느낌이
감돌게 발음되는데, 이것으로도 짐짓 수긍이 간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먼저 듣게 된 여성은
그것을 가족들에게 전달할 의무를 지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유태인 어머니들은 여성이야말로 최초의 교육자이며,
자녀들을 가르치는 의무는 당연히 여성이 지닌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내가 본 바로는, 한국이나 일본을 비롯한 동양의 어머니들과
유태인 어머니들과는 약간의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이웃집 어린이가 피아노 레슨을 받는다거나
일류학교 진학을 지상목표로 삼는다고 해도
유태인 가정에서는 그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또한 남보다 뛰어나라, 남들을 앞질러라 하고
어린이들을 달달 들볶지도 않는다.
일류학교이든 이류학교이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나 일본의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대학은 어느

 대학에 가야만 된다는 식의 계획을 세우고 있으니,
참으로 딱한 엄마들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아인슈타인은 여덟 살 때까지 저능아였다는 사실을
유태인 어머니들은 잘 알고 있었다.
유태인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이론을 발견한 세계적인 물리학자이다.
그러나 네 살이 되도록 말을 못하자, 아인슈타인의 부모는
그를 저능아라고 체념했다고 한다.
그는 학교에 들어가서도 생각하는 것이나 머리 회전이 늦었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아서, 1학년 때 담임선생은
이 아이에게서는 어떤 지적 열매도 기대할 수 없다.는
신상기록을 남겼다.
또한 그가 학교에 계속해서 다닐 경우, 다른 학생에게 방해가 된다는
결론을 내리고 더 이상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으리만큼 아인슈타인은 저능아였다.

다른 아이와 다른 점, 즉 개성을 중요시한다.
내 여동생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늘
너는 츠바이슈타인이야!라는 칭찬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의 아인은 독일어로 l을 의미하고
츠바이는 2를 의미한다.
즉아인슈타인 다음으로 머리가 좋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의미의 농담이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들먹인 진짜 이유는,
커 가는 어린이에게는 저마다의 개성이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평가할 것이 아니라, 각자 타고난 개성에 따라
긴 안목으로 지켜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서이다.
이것이 바로 유태적인 교육을 하는 어머니들의 교육방법이기도 하다.
유태인 어머니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다른 집 아이들과 똑같이
뛰어놀고 함께 공부하며 행동하는 스테레오 타입(고정적인 틀)에
속해 있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른 어린이와는 어딘지 다른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성장하는 것이 좋은 장래를 약속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우열을 다투는 경우 승자는 언제나 소수에 지나지 않지만,
저마다 남과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다면 모든 인간은
서로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경하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아인슈타인은 담임 선생으로부터 저능아 취급을 받았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 다섯 살 때까지
유클리드, 뉴튼, 스피노자, 그리고 데카르트를 독파했다.

후일 그는 나는 강한 지식욕을 품고 있었다고
지난 일의 일들을 술회했으리만큼 속마음이 꽉 차 있었지만,
그 당시 그의 심증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약 그가 다른 어린이들과 똑같이 되기를 강요했더라면
그의 재능을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열세 살 난 딸아이가 있다.
그 아이는 어학에 특히 재능이 있어서 모국어인 히브리어는 물론이고
영어, 불어, 일어까지 자유롭게 구사한다.
나는 그 아이에게 늘 너는 어학에 재능이 있으니
통역관이 된다면 아주 좋겠구나하고 부추켜준다.
대신 너는 어학을 잘 하니까 수학도 잘 한다면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문제없겠지라는 식으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처럼 유태인 어머니들은 예외 없이, 다른 집 어린이와는
무엇인가 다른 자기 자녀만의 특성을 찾아서
그것을 신장시켜 주는데 전력투구한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히브리라는 말의 원래 뜻은
혼자서 다른 쪽에 선다이다.
자기만의 개성을 충분히 키워준다는 것은
유태인의 생활방법 전반에 걸친 원칙인 셈이다.

2.듣는 것보다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내성적인 어린이는 잘 배우지 못한다
동양의 어머니들은 대개 댁의 아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얌전하고 ]착한가요?라는 말로 칭찬하기 일쑤인데,
유태인들은 절대로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우리 집 아이들이 만약 그런 말을 듣게 된다면,
나는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얌전하다, 착하다.라는 말은 진취성이 없어
공부를 잘 할 수 없다라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유태인의 속담에 내성적인 어린이는 잘 배우지도 못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내성적인 아이는 공부를 잘 못할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수줍음을 잘 타서 남 앞에 나서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못하는
성격이라면 참다운 학문을 깊이 터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어린이는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서슴없이
닥치는 대로 질문하도록 길들여져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러시아 문제 연구가이고, 러시아혁명사의 권위자로 널리 알려진
폴란드 태생의 아이자크 도이처는 불과 열세 살에 랍비가 될 만큼
천재소년이었다.
그가 부모로부터 지겹도록 들어왔던 충고는,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하고 할말이 정해졌다면
똑바로 서서 큰 소리로 분명하게 말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랍비의 자격을 얻기 위하여, 겨우 열세 살의

어린 소년임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거리의 많은 군중 앞에서 장장 두 시간에 걸친
대 연설을 했다.
청중은 어린 소년의 말이지만 완전히 매혹되어 감동어린 표정으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조리 있는 연설을 들은 약 1백여 명의 랍비들이
논의한 결과 그는 랍비에 임명될 수 있었다.
유태인 사회에서 제일 존경받는 대상인 랍비가 되려면,
내성적이거나 얌전하기보다는 자신이 생각한 바를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 덕이자 절대적인 조건이다.
내가 동양사람과 이야기할 때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대화 도중에 곧바로 침묵이 찾아오는 일이다.
사실 나는 유태인으로서는 그다지 수다쟁이가 아닌데도
나 혼자만 계속 지껄이게 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나는 말에 의해서 배우는 것이 어려서부터 습관화되어 있기 때문에,
침묵이란 배우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라고밖에는 달리 생각되지 않는다.
그것은 지식에 대한 욕구의 결여라고 생각한다.
매사를 분명하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다.
남에게 나는 진정 배우고 싶다라는 사인을 보내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듣기만 한다면 앵무새가 될 뿐이다
나는 언젠가 어느 동양인 엄마에게 당신은 자녀가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무슨 말을 해서 보냈습니까? 하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러자 그 엄마는 즉석에서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돼요,라고 했지요"
이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참으로 무서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교실에서 하나같이 선생님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을 학생들의
모습이 떠올라 정말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런 수업방식은 어린이들로 하여금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그냥 일방통행식으로 듣게 할 뿐이고, 선생님의 말이라면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고 무조건 따르다 보면
독창성이 없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태인의 교육은 다르다.
유태인 엄마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의심나는 것은
주저하지 말고 물어봐야 돼요라고 일러서 보낸다.
어린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암기가 아니라 이해하는 능력이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문제를 내고 학생들은 그것을 풀면서,
의심나거나 모르는 점은 끝까지 질문하도록 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것이다.
유태인의 성전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가르침의 말이 있다.

교사는 혼자만 알고 떠들어대서는 안 된다.
만약에 학생이 잠자코 듣기만 한다면 많은 앵무새를 길러내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교사가 이야기하면 학생은 그것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건 교사와 학생 사이에 주고받는 말이
많이 오가게 된다면, 교육효과는 그만큼 커지기 마련이다.
내가 알고 있는 랍비 중 한 사람인 마빈 토케이어 씨는
<일본인과 유태인>이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이후 유태 붐을 타고
일본에서 명성을 떨치게 되어, 일본의 여러 지방에서 초청을 방아
강연을 하러 다녔다.
그런데 그는 그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가 열띤 강연을 끝내면 청중들은 박수만 쳤지,
누구 한 사람 강연한 내용에 대해 질문하지 않고
침묵일색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태인의 상식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유태인의 모임이라면 이런 초청강연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연자가 쩔쩔맬 정도의 질문이 사정없이 날아드는 것이
상식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강연 내용을 되풀이 질문함으로써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끈질긴 탐구욕인 만큼,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학습법이 아닐까?

<탈무드>가 가르치는 두 가지 학습법을 보자.
< 탈무드>에 유태인의 탐구욕에 대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이야기가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두 나그네가 있었다.
두 사람은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길을 걷다가 외딴집을 찾아냈다.
그 집안은 텅텅 비어 있었는데, 다행히 높은 천정에
과일이 들어 있는 바구니가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손을 뻗어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그러자 한 사나이가 벌컥 화를 내면서 집에서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런데 남은 한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꼼짝하기 싫을 만큼 허기진 상태였지만 그는 그 바구니를 보고
이는 누군가가 매달아 놓은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는
힘을 내어 집안을 샅샅이 뒤져서 사다리를 찾아냈다.
그러고는 사다리로 올라가서 과일이 든 바구니를 내려 맛있게 먹었다.

유태인이라면 언제나 후자의 방법을 모범으로 삼는다.
뭔가 잘못되었을 경우, 자신의 눈앞에 있는 물건에 가만히 손만 내밀 뿐
그것 외에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 짓은 절대로 사절한다.
말하자면 유태인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과일을 손에 넣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을 경우,
사다리를 찾아 한 칸씩 타고 올라가 기어코 과일을 손에 넣듯이,
한 가지씩 질문을 하면서 문제를 풀어가는 태도를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배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유태인이 많은 것을 발명하고 항상 지적인 개척자의 지위를
지켜온 비결은, 오랜 옛날부터 이런 방법으로 교육받아 왔고
도전적인 질문을 그치지 않는 자세를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렇게 노력함으로써 자신의 독자적인 지의 체계화를 서서히 이룩하고,
그것이 곧 위대한 업적으로 연결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포인트이다.
유태인이 많은 것을 발명하고 항상 지적인 개척자의 지위를
지켜온 비결은, 옛날부터 도전적인 질문을 그치지 않는 자세를
몸에 익혀왔기 때문이다.


3.머리를 써서 일하라

머리가 좋아지도록 만들어진 교육환경
사람들은 대체로 유태인은 머리가 좋다고 믿고 있는 것 같다.
사실 미국에서 아이비 리그(동부지역 명문대학군)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하버드, 예일, 칼럼비아, 프린스턴 등의 일류 대학교수진의 30%가
유태인이라고 한다.
또 1905년부터 1973년까지의 노벨상 수상자 310명 중 유태인이
43명으로, 전체 수상자의 10% 이상이 유태인이거나 유태계라고 한다.
물론 이런 사실들이 곧 유태인은 선천적으로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지능의 우열은 결코 인종과 민족에 따라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사실은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즉 유태인은 어려서부터, 유태인답게 살아가려면
몸을 움직이기보다는 머리를 써서, 즉 두뇌의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일해야만 된다고 항상 배워왔다는 사실이다.
또 유태인이 어려서부터 받아온 학교나 가정교육 시스템은
머리 쓰는 일에 알맞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유태인에게는 아주 자연스런 일로 인식되어졌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생활 환경 모두가 머리 쓰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 결과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은 통계로 나타났다고 생각된다.
그렇다고 해서 유태인이 육체노동을 천대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동시에 두 초등학교를 다닌 마빈 토케이어 씨의 경우를 예를 들어보자.
1936년 뉴욕에서 태어난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동시에 두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침 여덟 시부터 오후 다섯 시까지는 미국 초등학교에 다니고,
이곳에서 수업이 끝나면 버스로 40분이나 걸리는
다른 학교로 달려가야 했다.
그는 그 학교에서 네 시간 동안 히브리어를 사용하며
유태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두 학교를 다닌 습관은 대학에 진학해서도 변하지 않았다.
오전 아홉 시부터 오후 여섯 시 반까지는 미국인들의 학교에 다녔고,
그 수업이 끝나면 다시 유태대학인 예시버 대학엘 다녔던 것이다.
그리하여 토케이어 씨는 힘은 들었지만
동시에 두 개의 대학 학위를 받게 되었다.
이 밖에도 그는 스포츠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는데,
특히 야구를 아주 잘해 대학팀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의 이런 뛰어난 소질을 발견한 어느 프로 야구팀에서는
그를 스카우트하려고 했다.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달리 손가락 모양이 특이해서 직구를 던질 때도
자연스럽게 공이 처져서 아무리 잘 치는 타자라도 여간해서는
홈런을 칠 수 없는 변형 구질의 소유자였다.
그는 프로 야구단의 입단 교섭에 마음이 쏠려
아버지와 상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아버지는, 야구도 좋지만 그것은
네게 적당한 일

이라고 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두 학교에 다녔을 만큼 머리 쓰는 일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선천적으로 특이한 황금 손가락을 가진
그였지만 빈틈없는 두뇌 교육과정을 밟아온 그에게 프로 야구선수라는
직업은 아무래도 적합치 않다고 그의 부친은 판단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프로 야구팀의 유혹을 뿌리치고 랍비의 길을 택했다고 한다.
머리를 써라
이는 어느 유태인 어린이건 간에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항시 듣는 말이다.
또한 유태인 엄마들은 어린이를 꾸짖고 때릴 일이 있으면
뺨을 때릴 망정 절대로 머리는 때리지 않는다고 한다.
뇌가 상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일 게다.
그러므로 유태인의 머리가 좋은 것은 선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머리를 잘 쓰는 방법을 어릴 적부터 훈련해 왔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환경 아래서라면 누구나 지적 수준이 높은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라
그런데 똑같이 머리를 쓰는 방법이지만, 직접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과
지식을 터득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후자 쪽이 훨씬 더 효율적인 방법임을 의심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유태인의 속담에 물고기를 한 마리 준다면 하루밖에 살지 못하지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면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고기를 지식이란 말과 바꿔놓고 본다면
이 속담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치는 것만이 우리 어른들의 임무는 아니다.
그와 더불어 배우는 방법까지도 가르쳐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과 일본의 부모들은 대부분 어떤 일정한 양의 지식을
학생들 머리 속에 넣어주고, 어떻게든 시험에 통과하는 능력을
불어넣어 주기를 요구한다.
즉 대부분의 부모들은 상급학교에 입학시키는 일에만
관심을 쏟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방식은 어떻게 물고기를 잡을 것인지는 가르치지 않고,
당장에 먹을 한 마리의 물고기를 나눠주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어리석은 짓이다.
그보다는 지식의 체계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흡수하느냐 하는
방법을 가르치게 되면, 학생들은 그것을 다른 일에도
적절히 활용함으로써 학문에 대한 흥미를 배가시킬 수 있을 것이다.
동양의 학

교 교육에는 문외한인 나의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유태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제출시킬 경우,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그 수집된 자료들을 적절히 종합, 분석, 정리해서
자신의 머리로 리포트를 작성하게끔 이끌어준다.
그리고 리포트의 평가 기준은 그 내용이 아니라,
자료를 다룬 솜씨가 중요 포인트가 된다.
이렇게 유태 아이들은 최대한 머리를 활용하는 환경 속에서
길러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포인트!
물고기를 한 마리 준다면 하루밖에 살지 못하지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한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

4.지혜가 뒤지는 사람은 매사에 뒤진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의지할 것은 오직 지혜뿐이다.
유태인의 격언 중에,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 살아남고 싶다면
먹는 것으로도, 마시는 것으로도, 춤을 추는 것으로도,
또는 일하는 것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오직 지혜를 가져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유태인은 그야말로 온갖 박해를 받으며
생존해 왔다.
그런 유태인에게 만약 지혜가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 지를
상상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예를 들면 중세 유럽 시대의 유태인은 토지의 소유를 금지당했고,
직능별 조합인 길드에마저 가입할 수 없었다.
유태인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오직 의사나 상인뿐이었다고 한다.
고등교육을 받고 의사가 되어 편히 살거나,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는 지혜를 터득해서
온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장사를 하는 길밖에 없었다는 말이다.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성전 <탈무드>에는 유태인의 유일한 재산은 지혜라는 점을
시사해주는 우화가 몇 가지 있다.
그 중 한 가지를 들어보자.

거부들만 타고 있는 배에 랍비 한 사람이 편승하고 있었다.
부자들이 서로의 재산을 비교하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랍비가 말했다.
"가장 유복한 사람은 바로 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여기서는 보여드릴 수가 없군요."
그로부터 얼마 후, 해적의 습격을 받게 되어
부자들은 가지고 있던 재물을 모조리 빼앗기고 말았다.
마침내 배가 항구에 도착하자, 그는 학생들을 모아 학교를 만들었다.
그러곤 단번에 거부가 되었다.
함께 배를 타고 왔던 부자들은 이미 빈털터리 거지가 되어 있었는데,
그제야 비로소 랍비가 한 말의 참뜻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지혜가 뒤지는 사람은 매사에 뒤진다라는 속담처럼,
지혜를 갖지 못한 자의 부는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지혜 있는 자 모든 것을 갖춘 자이다.
다음의 이야기는 단순한 우화가 아니다.
유태인은 지혜를 갖기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거침없이 버리기 때문이다.

19세기 초 유럽에 살고 있던 유태인들 사이에
미국으로의 이민운동이 일어났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독일 바바리아 지방 바이에르스 돌프촌에
파니셀리란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자녀들을 부자유스런 생활환경에서 탈출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 보내고 싶어했다.
그래서 그 기초작업으로 장님인 조세프를
대학에 진학시키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직공생활을 하고 있던 남편 데비드는
그럴 만한 돈이 없다며 반대했다.
하는 수 없이 파니는 그 동안 남모르게 모아두었던 돈을 털어
아직 열 살밖에 안 된 조세프를 에드란켄 대학에 입학시켰다.
대학에서 그는 그리스어, 영어, 프랑스어를 익힌 결과
이미 알고 있던 독일어, 히브리어 등 6개 국어에 능통하게 되었다.
조세프는 졸업 후 17세가 되던 해에 약속의 땅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때 그의 주머니 안에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미국 지폐 1백 달러가 전부였다.
조세프는 그 후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뉴욕에
J&W 셀리그먼 컴퍼니란 은행을 설립하고
어학 실력을 마음껏 발휘, 국제 금융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고,
이민을 꿈꾸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셀리그먼 산(Mount Seligman)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그의 모친 파니가 교육이라는, 즉 어학이라는

지혜를 터득케 해서 조세프를 신대륙에 보낸 결과였다.
이렇듯 유태인들은 지혜가 뒤지는 사람은 매사에 뒤진다라는
속담과 지혜 있는 자 모든 것을 갖춘 자라는 격언을 굳게 믿고,
어린이들을 그렇게 되도록 교육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포인트!
이 세상에서 진정 살아남고 싶다면 먹는 것으로도, 마시는 것으로도,
춤을 추는 것으로도, 또는 일하는 것으로도 불가능할 것이다.
오직 지혜를 가져야만 살아 남을 수 있다.

5.배움은 벌꿀처럼 달다
동양식 교육은 즐거움을 못 느끼게 한다.
어린이가 공부하기를 싫어하는 책임의 태반은
어른인 부모에게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학교나 유치원은 다니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당연히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되고,
의무인 만큼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것이 공부이고,
또한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공부를 좋아할 까닭이 없는 것이다.
공부하는 것이 싫다고 고개를 저으면,
어른들은 대개 공부를 안 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강요만 한다.
이렇게 되면 어린이는 더욱 공부가 싫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 유태인의 눈에는 이런 일들이 이상하게 보여진다.
왜냐하면, 유태인들은 본디 인간에게 있어서 배운다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기 위해 지혜를 터득하는 것이
즐겁지 않을 까닭이 없지 않은가.
한국과 일본에서는 대개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의무교육으로 하고 있는데,
그 부모들이 이 의무란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
여기서의 의무는, 부모가 어린이를 교육받게 할 의무인지는 몰라도,
어린

이가 좋은 성적을 올릴 의무는 아닌 것이다.

배움이란 꿀처럼 달고 맛있는 것이란 사실을 깨닫도록 한다.
유태 초등학교에서는 공부란 꿀처럼 달고 맛있는 것이란 사실을
어린이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교육시킨다.
이스라엘서는 초등학교 신입생이 선생님과 처음 만나는 등교 첫날,
공부란 달콤한 꿀과 같다는 사실을 어린이들에게 가르쳐준다.
선생님은 1학년 학생들 앞에서 히브리어의 알파벳 22자를
벌꿀이 묻은 손가락으로 써나간다.
그러곤 이제부터 너희들이 배우는 것은
모두 여기 쓴 22자에서 출발하게 되며,
더구나 그것은 벌꿀처럼 달고 맛있는 것이다라고 가르친다.
또 신입생 모두에게 케이크를 주는 학교도 있다.
흰 설탕이 덮인 맛있는 케이크 위에는
히브리어 알파벳이 역시 설탕으로 씌어져 있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에게 이끌려 설탕의 알파벳을 손가락으로
더듬어가면서 단맛을 빨게 된다.
이 역시 배움이란 꿀처럼 달다라는 사실을 가르치는 좋은 방법이다.
외국에 있는 유태인 학교 입학식 때에는 알파벳 대신
유태민족의 상징인 다윗의 별을 그린 케이크를 나누어준다.
그리고 학생들은 별을 그린 손가락을 빨아가면서
배움에 대한 기대감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포인트!
아이로 하여금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것이 공부이고,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하는 곳이 학교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하려면,
배움이 달콤한 꿈과 같다는 지혜를 터득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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