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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60의 행복한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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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그림. 조각
작성자  빛과소리 작성일  2018.02.08 09:24 조회수 129 추천 0
제목
 대한민국 구한말 희귀 사진모음  
 

대한민국 구한말 희귀 사진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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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한말 황실, 왼쪽부터 영친왕.순종.고종.귀비엄씨.덕혜옹주.


이 사진은 한국 사진의 선각자이자 흥완군(대원군의 형)의 손자인 고 이해선(순종의 육촌 형제, 민영환의 사위)

선생의 유품에서 발견되었다.
출처 : 대한사진예술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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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궁(毓祥宮)

 

유상궁은 원래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를 봉사하는 사당이었다. 1908년에 저경궁 · 대빈궁 · 연우궁 ·

선희궁 · 경우궁이 합사되어 6궁으로 불렸으며, 1929년에 덕안궁이 경내로 옮겨와 7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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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우편엽서)  

 

이 사진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풍속 사진엽서다. 죄인들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엽서는 관광 기념용 사진엽서 가운데 한 장이며,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널리 유통되었던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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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소학독본


구한말 조선 왕실이 편찬한 계몽 교과서. 당시 조선 왕실은 개화를 적극 추진 부국강병을

최우선의 국가적 과제로 설정하였는데 이를 신민에게 알리기 위해 교과서류를 편찬하여 서구의 문물을

소개하고 부국강병의 당위성을 설파하였다

 

구 한말 (2)

 

경복궁과 육조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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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실학교 수업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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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에서 촬영한 풍속 사진. 회식(우편엽서)


‘조선 풍속’엽서에 실린 사진 중 상당수는 스튜디오에서 조선인 모델을 고용해 찍은 것으로 추측된다. 무대 배경에는

서구식 장식물이 등장하고 조선인 모델들은 촬영자의 의도에 맞게 연출되어 풍속 이미지로 팔려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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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문(동소문)과 성곽

 

서울 60리 둘레를 현무도의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져 호위하고 있는 한양의 도성은 애초 남산과

북악산을 제외하고는 흙으로 성곽을 쌓았다.
이것을 세종이 모두 돌로 쌓았으니, 연 인원 32만 2,400명이 동원되어 98일만에 완성을 보았다.

대규모 인력 동원을 통한 단기의 공사였다. 옛 법도대로 따르자면 성곽은 사각형 모양이

되어야 하겠지만 한양의 산세를 거스르지 않고 짓다보니 굽이굽이 산성이 되어 물결쳤다.


성곽의 기본 출입문은 동·서·남 ·북의 4대문이었으나, 이외에도 4소문과 그 밖의 여러 문이 있었다.

 4소문은 혜화문·창의문·소의문·광희문이다. 그 가운데 광희문은 수구문(水口門),

또는 시구문(屍口門 : 시체가 나가는 문)으로 불려졌다.


조선시대에 사람이 죽으면 그 시체는 반드시 서쪽은 서소문으로, 동쪽은 광희문으로 나가게 하고,

 다른 문으로는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시구문이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수구문이라는 명칭은 청계천이 수문 근처를 통해 성 밖으로 흘러나가고, 남산의 물이 광희문 부근을

통과하여 나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에서는 콜레라 등의 전염병이 유행하면 환자들을 광희문 밖에 내다 버리곤 하였다. 이에 시골 사람들은

“한양에 가거든 수구문 돌담의 돌가루를 긁어 오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광희문 밖 돌가루가

병마를 물리치는데  효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광희문이란 이름보다 수구문 또는 시구문이라 불렀다. 그리고 ‘못된 바람은 시구문으로 분다’는

말도 있었다. 또 다 죽게 된 사람을 ‘시구문 차례’라고 했으니, 양반은 물론 보통 사람도 이 문으로 드나드는

것을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구 한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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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숭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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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인왕산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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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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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대신 박영효, 윤치호

 


구 한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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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지문 문루와 탕춘대성, 홍지문과 탕춘대성은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연결하기 위하여 쌓은 것이다.

                                                     홍지문은 한성(漢城)의 북쪽에 있는 문이므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였으나, 숙종이 친필로

                                                                弘智門이라는 편액을 하사하여 달면서부터 이것이 공식적인 명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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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 조선말 대한제국때는 궁녀들도 정식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헌종비 명헌왕후 홍씨전에있던 조하서 상궁은 숙명여학교까지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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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범, 1882년에 박영효와 같이 일본에 가서 그 곳의 문물을 둘러보고

개화파가 되어 1894년 갑신 정변에 참가한다. 김홍집을 총리로 하는 내각의

법부대신을 거쳐 주미공사에 부임하지만 일찍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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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남대문) 입구 풍경

 


구 한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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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서울 소공동에 있는사진관

 

우리나라 초초의 사진관은 1907년 사진사 김규진과 박위진이 지금의

소공동인 석정동에 개업한 천연당사진관이다. 김규진은 당시 나이 40세로 고종의 시종출신이며 유명한 서화가 였다.

위 사진이 천연당 인지는 정확치 않으나 사진 풍경으로 보아 가능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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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운궁(덕수궁)

 

임진왜란 때 선조가 시어소(時御所)로 이용하다가 광해군이 즉위한 후 경운궁(慶運宮)이라 이름으로 궁의

이름을 얻는다. 광해군 이후에는 별궁으로 사용하다가
고종의 아관파천(1896) 이듬해 고종의 다시 궁궐로 쓰인다.
1904년 있었던 대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없어진다.
순종때는 궁궐로써 그 기능을 상실, 덕수궁(德壽宮)으로 이름이 바뀐다.
1905년 중명전에서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수난의 궁으로.
궁궐의 규모가 구한말에 비해 3분의 1도 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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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황제(1899)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시신이 홍농의 장지로 떠나기 전,  절에서 불공을 드리고

기념촬영한 사진으로 슬픔에 잠긴 고종의 표정이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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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사도세자를 추모 사당, 현재의 서울대학교 병원자리로 경모궁의 일부
 


구 한말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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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성 행궁, 전란 등 비상시 왕이 거처하기 위해 지은 행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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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훈장과 학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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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뒤에 보이는 다리가 수표교.

 

서울은 지형적으로 북쪽에 산이 발달되어 있기 때문에 도시 곳곳에 산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하천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 하천들은 도심을 흘러서 한강으로 흘러 들어갔다.
도성 안을 흐르는 하천들은 청계천을 비롯하여 중학천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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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 칙사로 조선을 방문한 이토 히로부미(왼쪽)와 한국 주재 일본군 사령관(오른쪽)
1905.11.29 경성역
 


구 한말(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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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 초지진 포대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조선 효종 7년(1656)에 구축한 요새이다.

1666년에 초지량영을 이곳으로 옮긴 뒤 ‘진’으로 승격되었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때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해서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1876)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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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인력거

1869년경에 일본인 다카야마 고스케(高山幸助) 등이 서양마차를 본떠 만들었으며, 한국에는 1894년(고종 31),

하나야마(花山)라는 일본인이 10대의 인력거를 수입해 들여와 영업을 함으로써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최초의 인력거꾼은 모두 일본인이었다가 점차 한국 사람으로 바뀌었다. 이로부터 인력거는 부산·평양·대구 등

지방도시에 급속히 보급되어 가마를 대신하는 중산층 이상의 교통수단으로 번성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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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感古堂, 현 안국동 덕성여고 자리)

조선 숙종의 비인 인현왕후 민씨가 폐서인이 된 후 거처하던 곳이다.

영조가 감고당 편액을 내렸고, 명성황후가 책봉되기 이전에 거처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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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대구의서문시장

서문시장의 장터역사는 조선 중기부터이다.
옛이름인 대구장은 원래 대구성 북문밖에 자리잡은
소규모의 장이던 것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물자조달 기능이 활발해 졌고 1669(현종10년)조우도로
분리되어 있던 경상도가 통합되어 경상감영 (현재 중앙공원 자리)이
설치되면서  대구의 경제적 위치와 더불어 성장했다.
대구장은 북문 밖에서 서문 밖(현재 동산파출소 자리)으로
이전했는데 평양,강경과 함께 전국 3대 시장에 꼽힐 만큼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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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 한성의 싸전거리 


구 한말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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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창덕궁(昌德宮)은 태종때 지어진 궁궐로 임진왜란 이후 대규모 중건 하였다.
유네스코 지정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으로 경복궁에 비해 조금 작은 궁궐로 인정전을 비롯해

선정전과 후원인 금원 등 다수의 전각이 잘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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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대장 (1890)

포도청은 1895년 경무청이 설치될 때까지 조선왕조의 경찰기관이다

 

1892 창경궁과 홍화문 

창경궁(昌慶宮)은 1484년(성종 15)때 지은 궁궐로 정전(正殿)인 명정전  을 비롯 많은 전각이 있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고
1616년(광해군 8)에 재건된 뒤에도 몇 차례의 화재를 겪었다.
지금 남아 있는 전각은 임난 후에 재건한 명정전과 창경궁의
정문인 홍화문 등 외전과, 1834년(순조 34) 다시 지은
숭문당·함인전·환경전·경춘전·통명전·양화당·집복헌·영춘헌 등의 내전이 있다.
1907년 순종이 덕수궁에서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자 일제가 동물원과 식물원을 조성하고
1910년(융희 4) 이름도 창경원(昌慶苑)으로 바꿨으나,
1983년 원래의 이름인 창경궁으로 복원되었다.

 

1909년, 전주 - 신흥학교 수업 광경(위)과  안창호가 설립(1907년)한 평양대성학교 교사와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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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천변(川邊)마을 풍경

도성 안에만 172개의 다리가 있었다는 기록이 말하듯 서울은 작은개천이 많았다.

이런 개천의 물들은 청계천으로 흐름이 합쳐지고 종국에는 한강에 다다른다.

 

 

 

구한말(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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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1932)

영등포 중심가에는 일본인이 경영하는 자전차 상회가 밀집되어 있어 신흥

상권이 형성되어 번창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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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위에서 바라본 중앙청쪽 광경(1926)

북악산 밑에 총독부건물이 보인다. 일제는 1916년 경복궁앞에 한반도를 통치하는 총본산으로서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었다. 공사개시 10년 만인 1926년에 완공한 직후 찍은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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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1932)

청량리에도 일본인 상가 들이 많이 자리하고 있고 전차도 복선으로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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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고개, 충무로 입구에서 바라본 명동성당 이다,
일제치하 때,  충무로 입구는 서울의 가장 번화한 거리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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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네거리

죄수들이 쓰레기 손수레를 끌고 종로 상가거리의 어느 포목전 앞을 지나고 있다.

당시에도 죄수들은 노역에 동원되었다. 

 

 


 

구 한말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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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외출(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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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대 말 농촌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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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두 사람(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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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지게를 지고 있는 사람, 물통이 함석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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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계란 꾸러미, 뒤의 등나무 의자가 호사스럽다.(19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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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서울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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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 구경꾼들이 많은것으로 보아 활쏘기 경연대회 같다. (1900년 초)

 

독일 무관의 눈에 비친 100년전 조선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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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광화문 거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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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본 독일대사관 무관으로 근무한 헤르만 구스타프 테오도르 잔더(Hermann Gustav Theodor Sander.

1868-1945)가 함경북도 성진과 길주 지역의 조사를 위해 1906년 9월 16일에서 24일까지 묵었던

도쿄관이란 여관에서 일하던 조선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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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 3월, 전당포와 그 앞 노점에서 갓 수선 하는 모습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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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북한산으로 가는 여정의 첫 고개인 무악재를 사람들이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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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항의 모습이다.

위 사진들은 Hermann Gustav Theodor Sander(1868-1945)가 고용한 일본인 사진가 나카노가

촬영한 것으로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돼 있다. /연합

 

 

구 한말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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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이후 근대식교육을 받고있는 선비들의 모습(19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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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울에서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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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군 병사, 구 한말에 신식군대를 도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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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진달래 꽃으로 유명한 영변 약산의 풍경, 기암괴석과 노송이 잘 어우리는 명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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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들의 다양한 모습들, 색안경을 낀 이도 있고 남정네가 애도 보는 진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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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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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쏘기를 하는 여인들


구 한말(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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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가 다듬이질을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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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하천과 양 옆의 길이 시원스럽게 잘 정비되어 있다. 싸리나무 가지로 엮은 지게 바닺에 애를 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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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에 쟁기질을 하고 있다. 소 두 마리를 다루려면 상당한 기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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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초의 남대문 모습, 행인 중 자전거가 보이는게 특색이고 남대문 현판이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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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우물에서 물을 길은 소녀가 옹기인 물확을 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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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무당이 굿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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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기군의 모습, 1881년(고종 18) 5월 오군영(五軍營)으로부터 신체가 강건(强健)한 80명의 지원자를 특선(特選)하여

이들을 무위영(武衛營)에 소속케 하였는데 이것이 최초로 창설된 별기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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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한말 동네의 빨래터에서 아낙들이 빨래를 하고 있다. 하얀 무명옷들만 널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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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물로 만드는 가마솥은 깨지거나 밑이 쉬 닳는다. 솥을 수리하는 모습 


구 한말(13)

 

아래의 사진들은 근 백년 전의 한말사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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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의 농촌풍경, 모를 찌고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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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원흉이었던 이또오 히로부미(가운데)가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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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 조선을 방문한 영국여성을 호기심의 눈길로 쳐다 보고 있다. 

(아래 사진) 길거리에 자리한 당시의 여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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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에 찍은 민가(民家)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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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지게에 지고 운송하고 있는 일꾼들 


100년전의 남대문,동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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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성벽에서 성문 밖을 찍은 듯한 풍경이다. 사진을 찍는 것이 신기한지 아이들이 카메라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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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성벽위에 아이들이 올라와 있다. 전봇대와 전기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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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이 남대문에 올라가 담소하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길가는 행인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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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 안쪽의 풍경. 장이라도 섰는지 많은 사람들이 배추 같은 채소 지게를 내려 놓고 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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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남대문(숭례문) 일원의 모습이다. 

멀리 북한산이 보이고 초가와 기와집 그리고 성벽 또 아이들의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로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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