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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관계 정신분석 2
작성자  simonshin 작성일  2018.08.06 13:07 조회수 319 추천 0
제목
 발제문 (이영희님): Shoot the messenger   
 

과목대인관계 정신분석

주제: Shoot the messenger

지도신현근/김양자 교수

발제자이영희님

교재:

Stern, D. B, & Hirsh, I (eds.) (2018). Further Developments in interpersonal psychoanalysis, 1980s-2010s: Evolving interest in the analyst’s subjectivity.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Shoot the messenger- 분석가의 해석의 대인관계적 측면 (1993)

Edgar A. Levenson

편집자의 프롤로그

 

Clara Thompson 1940년대와 1950년대의 초기 형태의 대인관계 정신분석학을 창조하기 위해 Harry Stack Sullivan 대인관계와 Berlin-trained 에리히 프롬의 정신분석학을 혼합했다. Thompson 이후  1세대 대인관계 저자들은  당시의주류 정신분석학이 인간의 삶을 이해했던 방식을 문제 삼았다그들은 초기의 충동(drive)  방어에서의 교류 사건과 패턴을 대체하는 새로운 해석안을 채택하였다하지만 그들은 치료적 조치는 환자가 얻은 해석적 이해에 따라 좌우된다는정신분석학의 기본 개념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프로이트적 대인관계주의자만큼이나 초기의 대인관계주의자에게도  사람의 인생에 대한 진실은 치유력 있는 동인(curative agent)이었다 이후의 세대특히 1970년대 1980년대의 Edgar Levenson Benjamin Wolstein 임상적 작업의 특성을 재개념화하고 이를 통해 현대적 형태의 대인관계 정신분석학을 제공해주었다. Erwin Singer, Edward Tauber, 그리고 특히 Harold Searles  여러 명의 다른 인사들도 이러한 견해에 기여했다하지만 Searles 다른 이들과 같은 지성  임상 사회의 일원이 아니었다따라서 다른 이들과는 달리 그는 이전 세대의 대인관계적 사고에 대한 영감 없이 이러한 견해에 도달했다.

이러한 저자들  Levenson 해석을 단순히 정보나 의사소통이 아니라 일종의 참여인 행동으로 재구성하는데 가장 한몫을 했다분석가의 측면에서 이러한 행동은 세상에 대한 자신만의 견해에서 나오는 것이며따라서 분석가는 분석가 자기만의이전에 존재했던 사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분석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유로 무의식적으로 환자에게 관여된다. Levenson 1970년대 초반부터 이러한 주장을 해왔다.

Levenson 그의 논문에서 이러한 원리에 대한 방법을 반복해서 모색한다그는 매번 이를 새롭게다른 방식으로다른문맥에서 재발견하기 때문에 그가 아무리 초기의 작품을  알고 있어도 독자는 Levenson 견해를 매번 마치 처음인 것처럼 발견하곤 한다. Greenberg Isaiah Berlin 용어로 여우라면 Levenson 고슴도치이다그는 하나를 알지만 매우 깊이 알아서 끊임없이 그것을 재발견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만약 Levenson 글을 몰랐고 “Shoot the messenger” 흥미를느낀다면그의 저서들을 읽어보아라그의 논문은 그의 저서 The Purloined Self(2016) Interpersonal Psychoanalysis and the Enigma of Consciousness(2017) 수록되어 있다. Levenson 작품은 모든 정신분석학적 문헌  가장 흥미롭고 재미있는   하나다그는 풍자적이고재미있으며 지식이 많고 문학적이다그는 작품의 독창성  영향력으로 2006Sigourney Award 수상하였다우리는 Hirsch Ianuzzi Levenson인터뷰Contemporary Psychoanalysis 출간 당시 인터뷰와 함께했던 Levenson 주장에 대한 수많은 논평그리고 Foehl Levenson 작품에 대한 논문을 추천한다.

Levenson 오늘날의 문헌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있으며 대인관계 정신분석학의 사랑 받는비공식적 아버지(pater familias).


 

Shoot the messenger- 분석가의 해석의 대인관계적 측면 (1993)

Edgar A. Levenson, MD

 

좋지 않은 소식을 전달하는 자들을 죽여버리는 습관이 있던 왕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정신분석학자들이 이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었다메신저는 메시지다. Crapanzano 인용하면,

메신저는 어디에  있는가그는 소망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그는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그는 가치충성적대감으로 가득  세상에 살고 있다. . . . 그는 메시지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번역하고 맥락화하고 이를 자세히 설명해야 하며 모든 과정을 정당화시켜야 한다그는 책임을 져야 한다메신저는 사회적으로 묘사된 per necessitatem 아니다.

프로이트가 그리스 신화의 전형적인 결정론에 몰두한 동안에는 그의 정신분석학은 의미의 무한성과 해석의 복수성(plurality) 기본 덕목인 랍비식 전통에 뿌리를 깊이 두고 있다지금도 현대의 모든 정신분석학적 해석 시스템은 너무많은 자유와 선택(시기중점해석의 발달 단계저항전이) 제공하여 우리의 메신저 치료사의 모든 해석적 제안은환자뿐만 아니라 치료사에게도 너무 많은 것을 드러내는 상당히 과잉 결정된 참여일  밖에 없다그리고  당황스러운 것은 환자가 보통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의 이러한 측면(환자가 치료사의 참여를 인지하고 있다는 )우리에게 이론적임상적 불편을 안겨준다.

치료사는 해석하는 도중 자기 스스로를 밝히고 환자는 치료사의 참여를 파악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모두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하다게다가 우리는 해석(정신내적 내용이나 전이) 환자와의 행동이기도 하다는데 동의하고 있다.내가 언급했듯이 관찰 가능한 포인트가 거의 무한대로 있고치료사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든 그것은 선택이며 따라서환자와의 행동(behavior with the patient)이기 때문이다. Wittgenstein 따르면 말은  행동이다그리고 치료사는 환자의 내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틀림없이 말한 것과 행한  간의 연관성이 있을 것이며이는 우리가 말한 것이 분석가와 환자 사이에 동시적으로 행해진다 아주 유용한 관찰을 이끌어 낸다이러하다면치료사에 대한 환자의 인식 전이를 단순히 순수한 왜곡으로 일축하거나저항에까지 이르게  환자의 일부에 대한 우연히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인식으로 조차도 일축할  없다우리는 분석의 진짜 작업(환자의 무의식적 환상) 진행하기 위해서는  이상 환자 측면의사건들을 즉석에서 다룰  없다하지만 그렇다면 무엇이 환자의 인식과 관계가 있을까 인식들은 어떻게 활용되는가?

무언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한다분석가들은 불안해하는 것에 대해 불안해지기 시작하고 대화의 언어는 해당 문제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시작한다. (Jacobs 이를 해석의 어법 장황해지고 모호해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Boesky Peltz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환자들은 분석가의 일부 행동을 경험한다이는 분석가에 대한 갈등과 환상의압력에 놓여 특정 방식의 행동을 인식하고자 하는 환자의 역동적 필요의 맥락에서 환자가  행동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환자가 비록 분석가에 대해 무언가를 인식한다 할지라도  인식은 부적절한 방식으로 감정적으로 가득 차게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했다그러나 물론 판단은 치료사가 하는 것이다그리고  판단은 환자가 부차적인 방식으로 처음의 정확한 인식에 악영향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참여가 포함된 재연(enactment) 인정한다면문제는 우리가 이에 대해 무엇을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이에 대한 반응으로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분석가 또는 감독관에게 가져가는 것부터환자의 주의를환기시켰던 행동(화나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는 ) 줄이고 치료  교정된 입장을 취하거나환자에게 참여를 고백한 분석적 과정(환자가 무의식적으로 동기부여 받은 왜곡에 대한 조사)” 방식에서  참여를 빼버리고환자의 정확성에 대한 판단을 중단하고 연구 대상으로서의 환자의 “정신적 현실 받아들이는  반응은 다양하다  마지막관점에서는 환자가 객관적으로 옳고 그른지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는다이러한 연속적 과정을 통해 비록 상당히 왜곡되어 있기는 하나 기본적이고 전형적인 패러다임이 유지된다치료사는 자아 방어  왜곡에 의해 암시되는 환자의 무의식적 내적 과정에 대한 해석을 통해 환자의 변화를 대리하는 사람이다.

이러한 확고한 믿음을 포기할  우리는 “내가 환자의 현실의 중재자가 아니라면나는 누구인가분석가가 된다는 것은무엇인가환자가  경험의 중재자일  있다면 환자의 정의란 무엇인가?” 등의 질문을 하는 치료사들의 실존적 현기증에 시달릴  있다우리가 환자의 현실을 받아들인 다면 비판단적 상대주의로 전락하는 것인가환자를 피하게 해주는 합의에 의해 입증될  있는 외부 현실은 존재하는가환자의 실제 세상에 대한 구성과 환자의 구성에 대한 우리의 구성을 다루어야 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진실에 도달할  있을까 모든 것으로 인해 우리는 사회적 구성주의의 구덩이로 빠지게 된다.

하지만 구성주의는 전혀  이야기이다실제 우리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은 마치 그것이 환자를 치유하는  입증할 있는 현실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정신분석학적 방식의 변화, “환자(patient-hood)” 대한 우리 인식의 개념적 변화이다.우리는 모두경험적으로 진행되는  보일 뿐만 아니라 적절성에 대한 직관적 감각에  적합한 과정(다소  임의적이고 권위적이면서   민주적인 정신분석학) 변화를 향해 조금씩 망설이며 다가가고 있다정신분석학은 문화의 상위개념이 전혀 아니다세상이 변하면서 우리의 방식뿐만 아니라 질병과 치료에 대한 정의 또한 변화하고 있다그리고전형적인 정신분석학의 온정주의적 가정(아빠 또는 의사가 가장   거야!)  인기가 시들해졌다참으로환자를불우하고 위태로운 아이로 바라보는 현재의 모계 중심적 경향은  과정  환자에 대한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점으로 바뀔 것이다.

내가 언급했듯이 이것은 원인과 결과 간의 관계(우리가 무엇을 하는 지와 환자가 어떻게 대응하는 ) 과다하게 결정된 분야이며합리적인 분석가들이 그들이 하는 것이 진행될  그들이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명확하게 주장할 없는 분야이다따라서 많은 것들이 동시에 진행된다그것은 근접(contiguous) 영향의 분야이다하지만 정신분석가들은 상태 유지에 상당한 투자를 한다이론적인그리고 더욱 중요한 제도적 제휴(affiliations) 그들의 정체성을 규정하며우리 마음의 평화를 위해 변화는 고정적 방식의 제약 내에 배신(apostasies)으로 간주될  있는 급진적 일탈이 아닌향상으로서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누군가는  모든 것이 변하고 있기를 희망하지만급진적인 새로운 치료접근법 도입을 위해 대상-관계와 자기심리학 이론가들을 필요로 해왔던 변증론을 고려해보면 여전히 조직적 집단 내에 머물러 있다.

일례로 행동화 재연(enactment)” 개념을 살펴보자행동화는 원래 행동적 유출(behavioral leak)” 정의되었다.언급되지 않았던 것이 일어났고 따라서 분석되지 않았다일어났던 일은 분석될  없었다특히 치료사가 인식하지못한  행동이 발생했다면분석가 측면의 어떠한 행동은 행동화(acting-out)이다어떤 행동이 분석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취해졌다면 행동은 비록 우리 모두가 환자들은 우리와 새로운매우 유용한 경험을 했다고 가정함에도 불구하고보편적으로 분석가들이 비난하는 Alexander French 교정적 감정 경험 회피한 것이다분석가의 행동이  과정에 있어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피할  없게 되었을 우리는 치료의 척도(parameters)” 또는 행동화(acting-in)” 대해언급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전혀 나쁜 의견이 아닌 상냥하고용서할  있는심지어 유용한 것으로도 들렸다누군가는 재연이 훨씬 적은 오류를 범하며 다음 단계에 어떻게 이르게 되는지  수도 있을 것이다정의상 재연은 아마도환자의 일부 환상의 행동적 변형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누군가는 재연이 해석의 창을 제공해주길 바랄 것이다하지만 재연의 개념을 확대하여 참여를 포함시킨다면그리고 치료사의 지속적인 존재를 암시하고 특히 치료사가 전형적 역전이 또는 투사적-동일시 또는 투사적 -동일시 뿐만 아니라자신만의 존재삶의 경험으로부터 참여하는 것이라면 그땐 어떻게 되는 것일까기본적 패러다임이 이러한 상황에서 지켜지는지 틀림없이 의문이  것이다.  

30년전 논문의 개요서특히 The Fallacy of Understanding 분석가의 참여에 대한 나의 주장이 명확하게 묘사되어 있다.상위의 정신내적 입장에 대한 부담(baggage)없이 다른 패러다임(대인관계주의)으로 치료 과정에의 치료사의 존재라는측면이 검토되었을 지도 모른다대인관계주의 자체가 문제가 없고 자체적 한계를 부과하지 않거나 이게  나은 이론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다양한 관점에서 임상적 현상으로 모여들면서 우리가 아직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의미일 것이다우리 모두가 마침내 무의식으로 가는 지름길(Royal Road to the Unconscious)” Via Reggia 모여드는 것일까아니면 우리는 단순히 기로를 통과하는 것일까결국 이곳이 오이디푸스가 곤경에 빠졌던 부분이다!

물론 요즘은 대인관계 정신분석학은 그저 하나의 이론에 불과할 뿐이다지시문(rubric) 아래 포함된 입장은 다양하지만, 입장에 필수적인 것은 사람은 평생 동안 생존을 위한 기본적(물질적정서적필요와 만족감에 대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에 의존한다는 믿음이다영아와 유아는 Bruner 용어를 사용하자면 일생을 통해 자신의 방식을 “협상(negotiate)”하는 법을 배우며관계를 정리하고 보상을 극대화하며 유기(desertion), 방치 또는 공격의 위험을 최소화하려 한다생존에 대한 위험이  클수록 타인의 불안 수준을 읽고 그것을 조절하기 위한 환자의 능력은 더욱 강력해질 것이다이러한 초기의 경고 시스템은 Sullivan “자가시스템(self-system)”으로 칭한 것으로 자기(Self)와는 전혀 유사하지않다 이론은 가족을 통한 사회적문화적 경험의 맥락을 고려한다경험의 어느 측면은 발달 과정의 아이에 의해 희미하게 지각되지만 가족의 반대와 불안을 맞닥뜨린다타인의 불안은 전염적으로 경험되고 관계의 심각한 단절을 초래하기 때문에주체는 사건을 부주의하는(inattend)”(가령, Sullivan 용어를 활용하자면 거기 뭐가 있는지 아는 것을 모른  하기 위해 눈을 피하는 ) 배운다이는 인지(awareness) 너무 많은 불안을 야기해서 인식(perception) 영역에서 완전히 나와 버린 해리(dissociation)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다선택적 부주의의 경우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을 종종 막연하게 알기도 한다무언가 해야  것을 잊었다는 것을 막연히 기억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한편 해리(dissociation) 극심한 불안의 징후를 통해서만 인식 없이 표면화된다아마 무의식  전의식과 유사한 점이있을  있지만부주의  해리는 타인의 불안에 의해 야기되고 필요한 관계가 깨지지 않길 바라는 소망에 의해 동기부여 된다는 점이 크게 다르다이때 불안은 대인관계적이며 상관적이다무의식적 환상 또는 저절로 계속되는 정신내적영역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주의  해리는 이러한 운영적 이론의 목적에 따른 대인관계 경험의 후유증으로 간주된다.

이때 신경증적 환자는 중요한 제공자와의 관계를 위협시킬  있는 자신의 경험 일부를 축소시키고 부인한다세상에대한 인식은 의도적 부주의와 매우 고통스러운 해리인 맹점(blindspots)으로 가득하다이전과 현재의 경험 간의 관계특히 환자와 치료사와의 관계는 복잡하다.

어머니가 종종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어리석은 가짜 행동(pseudo-stupidity), 수동적-공격적 행위를 통해 매우 분열된 화를 표출했던 환자를 한번 생각해보자 환자는 “짜증 섞인(tantrumy)” 행동으로 반응했고 따라서 그는 보통 까다롭고시무룩한 아이로 간주되었다엄마에 대한 그의 분노를 입증하기 위해서 그는 그녀의 화를 인정해야  것이다여기에는 이중 위험이 따랐다첫째로 화가 나있는 부모가 중요한 양육자(caretaker)라는 (나머지 부모는 소외되어 있는 경우가 많음) 거의 사실이므로엄마의 화는 무서운 것이었고 보살핌을 잃을  있는 위험이 있었다 번째로엄마는화가  있는 사실을 알지 못했으며이에 대해 반박할 경우  아이가 아빠처럼 잘못 되었고 미쳤으며 감사할 줄도 모른다며 그를 제압할 것이다따라서 엄마의 분노에 대한 두려움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녀의 무지에 대한 끔직한 결과(아이의 경험  현실감 저하 또는 미혹화(mystification)) 인해 유기의 위험이 증가된다.

또한 환자가 성적 무력(sexual impotence) 대한 치료를 시작했다고 가정해보자치료 과정에서 그는 엄마에게 경험했던 것과 동일하게 그의 아내에게서 무력한 분노를 발견한다이것은 왜곡인가그렇다고  수도 있겠지만그는 실제로엄마에게 의존했던 것만큼 그의 아내에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다그녀는 그의 엄마도 아니다그렇다면 그가 어린 시절의 경험을 훈습(work through)” 그는 훨씬 침착하게 그녀를 다룰  있을 것이며 따라서 그의 아내도 훨씬 수용적일  있게  것이다사실 아내는 그의 엄마와 매우 유사할  있다 경우 환자는 그녀를 떠나거나그녀가 변화하도록 하는 그녀를 다루는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한다보통 치료적 연구에서 이러한 시점의 경우치료사와의 관계에서 재연(enactment) 발생한다환자는 치료사와의 교착상태를 유발시킬  있지만역할을 뒤바꿔본다치료사는 아이의 역할에서 수동적-공격성 분노 앞에 무력해진 자신을 발견한다해결을 위해서 치료사는 자신이  말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줄  있어야  것이다 환자와 함께 환자가 해결할  없다고 생각하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재연할  있어야 한다.

환자가 자신이 어린 시절의 경험을 왜곡하여 현재로 가져왔다는 전형적인 깨달음을 얻고서 치료를 그만둔다면그는 변화하여 자신의 아내에게 친절한 법을 배우고 자신의 분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다 -  엄청난 정신분석학적 해결안일 필요는 없다다음 단계로 나아갈 경우그는 아내에게 분노를 느낄 것이다수많은  부모들은 이러한 상처받은자격(entitlement) 상태에서 얼어붙은  보인다이러한 중요한 단계를 지나기 위해서비난에서 책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해석적 능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기호학적 유능함이라 불렀던 - 유능함(sense of competence) 얻어야 한다 대인관계적 섬세함에 대한 인지력 강화 번째로는 타인이 변화할  있도록 타인에게 접근하고 영향을주거나 타인을 변화시킬  있는 능력.

나는 신경증적 발달에 대한 대인관계적 근거를 설명하기 위해 상기 시나리오를 구성했다대인관계적 측면에서 전이/역전이에 해당하는 것은 무엇일까치료사를 참여관찰자로 간주한다면영향력의 중심은 치료사 또는 환자로부터 이들과같은 위치에 있는 대인관계적 영역으로 이동한다.

예를 들어여성 환자가 피학대적(masochistic) 환상과 피학대적 전이를 가지고 있을 그녀는 최소한 남자 치료사그리고 추측하건대 많은 여성 치료사들에게서 가학적 역전이를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물론 그녀가 남성성과 힘으로치료사의 문제를 이용해왔다는 것에 우리 모두 동의할 것이다그녀의 문제를 피학대와 연관시키기 위해 그렇게 해야한다고 생각한다면치료사는 그녀의 상호작용에 대해 인식(“정신적 현실”) 권리를 인정하겠지만 갈등의 원동력을 그녀에게 해석하려  것이다그는 통제력을 되찾으려 하지 않을까환자에게 그녀가 피학대적이라고 말한다면 당신은가학적이지 않을까?

분석가에 관한 오래된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누가 가학 성애자(sadist)인가피학대 성애자(masochist)에게 친절한사람자가-치료(self-therapy) 또는 자신의 분석가에게 호소를 통해 자신의 가학피학증(sado-masochism) 없애버리는것으로는 피학대 성애증의 사람을 성공적으로 치료할  없다결점이 전혀 없어서 환자의 가차없는 평가를 만족시킬 있는 분석가는 없다조금 가혹하게는 들리겠지만 해석이 들을만한 가치가 있다고 환자에게 고백할  있는 분석가도 없다가학성을 느낀다고 인정하지만 그것이 투사적-동일시(정신분석학자 버전인 “악마가 나를 그렇게 만들었어!”)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을 피할  있는 분석가도 없다이는 환자에 대한 입증(validation) 아니라 그저  탓일 뿐이다.그럼 이제 남은 것은가학성은 환자를 만나기 이전에 자신만의 경험에서 나온 자기만의 것이라는 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이는 모든 사람의 죄에 대한 고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가학피학적 권력투쟁의 재구성에 불과할 뿐이다.

역설적으로해결책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letting go)”으로부터 나올  있다적어도  경험 분석가가 단순히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는 경우 매정하게 환자를 탓하던 것이 갑자기 관대해질  있으며 치료사에게 재량과 개인적 한계가허용된다아마도 치료사에게 자신이 인지하지 못한 사건들을 소개하는 정도까지는환자들은 자신들의 관찰에 대한 치료사의 솔직함에 의해 속박이 풀린다고 생각한다감정이 격하고 달래기 힘든 환자들은 이때 치료사에게서 관찰된 단점(shortcomings) 대해 상당히 관대해질  있다가령환자의 관찰이 (단순히 환자의 “정신적 현실 아니라정확하고가치가 있는 참여라고 인정될 경우  결점들을 부인하거나 환자 탓으로 돌리지(투사적 -동일시않는 다면 말이다환자들이 당신이 변화하기를 요구하는  보다는 당신이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경험을 입증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게다가 치료사를 돌본다는  – 단점을 용서하고 다소  완벽한 상황에서 선의를 유지하는  아마도초월(transcendence) 행위일 것이며현대의 정신분석학에 의해 널리 알려진 “me-first”라는 자기 몰두(self-absorption) 대한 해결책일 것이다.

하지만 이는 치료사 측면에서의 특정 비방어(non-defensiveness) 요구된다누군가 면밀히 관찰할 경우환자는 치료사를 포함한 자기 인생의 사람들에 대해 종종 날카롭게 지각적 관찰을 하고  분석가의 주의를 이끌고 이전의 상호작용을 간과해버리는 파괴적이고 부적절한 행동이 뒤따른다환자는 힘과 입증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그때 손을 들게 된다피학대적 입장에 대한 적대적 굴복은 놀라운 타협안이다이것은 자신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권위자에게힘을 주고 게다가 치료사로부터의 실제 분노 발생 가능성을 제거한다물론 치료사는 피학대 성애증에 대해 분노하기시작할지도 모르지만그때 우리는 보통 그것을 정확하고 위협적인 관찰자로서의 환자에 대한 진짜 반응이 아닌 치료사의 문제로 간주해버린다다시 말하자면 나는 환자들이 자신의 경험에 대한 미혹화를 생존에 대한 대가로 받아들인다고생각한다그리고 그들이 마음을 바꿀 정도로 편안하게 느끼기 위해서는 치료에서의 상당한 탐색과정(working-through) 필요하다.

특히 전이의 미혹화에 초점을 맞춘  다른 예를 언급해보겠다. Greenson 치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자신이Greenson 찬성하는 것을 얘기하면  앓는 소리를 내고 Greenson 찬성하지 않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하면 침묵의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주목했다는 사실을 알려준  남성 환자에 대한 보고를 했다환자는 결과에 따라 자신의 코멘트를 조정했다. Greenson 이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솔직히 놀라웠다환자는 자신을 상당히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그래서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 환자에게 그가 옳다고 인정했다하지만 그때 Greenson 환자에게 그가  그렇게순종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이는 처음에는 환자의 관찰을 인정하고 다음에 그것을 환자의 문제와 완전히 분리시키는 일반적인 중간적 입장(mid-position) 일치한다. Greenson 물었다. “ 자신을 그런 복종적 역할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또는 “ 마치 내가 권위주의적인 것처럼 나를 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그것이 문제였다만약 환자가 이렇게 말한다면? “그러면 안되나요당신은 자신이 무슨 신호를 보내고 있는지 몰랐잖아요그리고그것을 당신이 인지하지 못했다면 내가 그것을 알아차리거나 저항할 경우 당신은 당황할 것이라고 추측할 만하지요당신이 그것을 알았다면 그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을 거에요정말 내가 두려운 것은 당신이 합리적이라 생각하고합리적으로 행동하지만 그것은 당신이 인식하지 못한  더욱 심해질 것이며 나는 입증할 기회도 없이 처벌받거나 불행해지겠지요당신의 경험을 보호하기 위해  경험은 왜곡되고 혼란스러워  거에요

물론 가끔 경계선(borderlines) 환자가 그러긴 하지만 예의 바른 환자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환자들은 그러한 반응에매우 만족해하며환자 자신들의 탓도 아니며 자신들이 책임질 필요도 없는 치료사의 인식의 한계에 놀랍게도 관대해질것이다만약 환자가 불안해할 경우 내가  세션 이외의 곳에서 무언가에 대해 화가 나거나 속상해한다면 또는 피로해하거나 기분이 좋지 않다면 그냥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나는 매우 비난 당하거나 나로 인해 환자가 그만둘것이라 예상했었다환자는 안도하는  보였고 평소와 같이 즐거워하며 자신의 문제로 돌아왔다고백하건대 나의 매우 예의 바른 환자들(다루기 가장 어려운) 배려를 표현했다는 것에 약간 화가 났었다.

Hoffman 언급했듯이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환자는 틀림없이 “분석가 경험의 해석자 되었다그들이 서로 그들 공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동전에는 양면이 있다고 믿는다면환자가 당신에게 당신이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었다는것을 인정할 근거가 있다반면 환자를 의식적으로 정신내적 문제와 결부시키려 한다면환자의 왜곡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기 위해 그것들을 인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자신의 문제로 악영향을 주는 것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 알기 어렵다.

나는 진실한 상호관계에는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고 생각한다환자가 파악한 것을 인정함으로써 대화를 이끌어  있을 만큼 그렇게 불안해 하지 않는다는 것이 밝혀진다 가지 간단한 예로 분석가의 사무실이 있는 거리에 서있는 꿈을 꾸었다는 환자를 생각해보자끔찍하게도 그는 증기롤러가 무방비 상태의 회색 머리의  남자를 향해 후진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다그는 불길한 예감에 깨어난다분석가는 남은 일수연상 등에 대해 질문했다마지막으로 그는 온화하게 물었다. “당신은 그것이 나라고 생각하나요?” 순간 환자가 마지막 세션에서 경험했던잊고 있었던 짜증에 대한 수많은 연상이 시작되었다물론 당혹스럽게도 명백한 것이다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해석이 환자의 해리된 분노를 불러일으켰나하지만 꿈은 너무 뻔하게도 명백하다이는 마치 환자가 꿈을 이야기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번 들어봐요만약 당신이 내가 당신에게 매우 화가 나있다는  명백한 암시를 알아차린다면 나는 당신이 그것을 용인할  있고 그것에 의해 너무 찌들어 있지도 않다는 것을   있겠죠그리고 나는 그것을 털어놓을  있을 거에요그리고 당신이 차라리 되는대로 내버려  만큼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면나는  분노가 증기롤러도 아니고 재앙도 아니라며 안심할  있을 거에요그리고 나중에 당신이 해석하게 하면서 다시 인식하지 않아도 되겠죠.” 나는  분노는 부주의한(inattended)”것이며특히 이전 세션에서 무엇이 분노의 순간을 야기했는지에 대해 질문할  분석가의해석이 아닌 분석가의 참여가 요구되는 것이라고 본다.

 의미는 변화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치료사도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치료는 상호 과정이되고환자는 분석가의 경험의 해석자일 뿐만 아니라 치료사의 치료 협력자이다나는 이러한 언급이 불러일으킬 반응이 무엇인지 상상할  있다나는 우리가 함께 하기 이전에 내가 당신을 치유할 거에요!”라며 나에게 계속 심하게 화를냈던 매우 비판적이고 까다로운 환자를 기억한다매번 내가 아무리 열심히 이를  물어도 나는 분노로 가득 찼었다결국 나는 분석가가 아니었나 내가 그녀를 치료해야만 했고 그녀를 치료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스스로에게 질문한 후에야 우리는 타협에 이르렀다그녀가 나를 치료하려 하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를 치료하려  없다이것은 치료 과정을 상당히 편해지게 했다.

치료는 단지 환상을 되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식과 의절된 자아를 되찾기 위해기회가 필요한 환자를 풍요롭게 한다.그러기 위해서는 그러한 과정이 일어나게 해줄 누군가와의 대화가 필요하다 누군가는 불안의 정도가 낮아서 환자가도움을 구하고 자신의 정확한 인지 능력을 재발견하여 파괴의 공포 없이 타인과의 관계를 맺을  있도록 해준다이는안아주는 환경(holding milieu)” 또는 환상을 되찾거나 심지어  성장시키기 위한 안전한 공간을 허용하는 것과는 다르다다시 말하자면자신의 인식에 의존하여 살아갈  없는 세상에서 풍요로움과 복잡성으로  기능을 하기는 불가능하다정글에서 귀도 멀고 눈이 머는 것과 비슷하다모두를 믿을  있으며모두가 caretaking   있고필요한 것은기본적 신뢰 되찾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완전한 바보만이 치료를 그만  것이다분석가에게 아마 선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렇게 위안이 되지 않는다환자는 치료사조차도 자신에 관한 무언가에 대해  모를  있을 거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신뢰는 발달하면서 야기되는 기호학적 능력이다이것은 치료에서의 좋은 경험 이후 나타나는 예수 공현축일(epiphany) 아니다필요한 것은 환자가 세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자신의 방식을 타인과 협상할 능력을 부여 받는 것이다 이론에 따르면 환자들은 수정되어야 하는 유아적 왜곡과 비합리적 기대로 인해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격분하고 실망한 상태라   있을 것이다하지만 나는 그들의 유아증(infantilism) 왜곡은그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것이라고 생각한다아마도 그들은 너무 의기소침해 있거나 너무 위험에 처해있어 그들의 경험에 맞설  없을 것이다.

환자들이  그렇게 믿어서가 아니라공포상태의 절망적인 의존으로부터 치료사의 주의를  데로 돌리기 위해 자신의경험(과거현재또는 치료사와의 경험) 대한 충격적이고왜곡적인 유아적 인식을 얼마나 자주 치료사에게 표현하는지가 놀랍다부모의 실패와 위법행위를 밝혀내기 위해 환자와 동맹을 맺고 있다고 생각하는 치료사들은 그들이 가족의“rubber fence” 관해 환자에게 이야기 하는 아웃사이더이며 환자가 치료사로부터 자신의 삶을 보호하고 있다는 것을망각하곤 한다우리는 환자와 업무적 동맹을 수립할  있길 바란다하지만 신경증적 체계와 치료는 근본적으로 적대적 관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요약하자면우리는 고전적 진실을 전달하는 해석에서 행동으로서의 해석으로 이동했다해석은 환자치료사그리고치료사의 환자와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가 된다치료사는  치료사가 되었는지어떠한 개인적 욕구를 충족시켰는지 자신만의 인생 경험에서부터 시작하여 계속해서 참여한다이러한 존재는 필연적으로 낮은 정도부터 매우 높은 정도까지 항상 불안의 기층을 안고 있다모든 반응은 치료사의 세계관으로부터 나오는 참여이다나는 환자가 치료사를 불안하게 만드는 무언가에 대해 가장 많이 접하는 순간에 가장 많이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여느 곳과 다를  없이 지속적인 상호 교류라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불안이 생겨나고 방어적 작용(부인왜곡분노거리 두기지나친 지식화(over-intellectualization), 행동화(acting-out)) 양측 모두에 발생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일부 환자의 경우 이러한 상황은 극적이고 압박적인 교류의 양상을 취하지만그러한 극적임 보다는 매우 조용하게,알아채지 못하게 진행되는 교류가 치료에  중요하다전혀 문제가 없어서 표면적으로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무엇이든 하려는 의지가 있기 때문에 절대 향상되지 않는 환자들도 있다치료를 함에 있어 태만의 (sins of omission)범함의 (sin of commission) 보다 훨씬 보편적이고 효과적이다.

1968 Racker 따르면 ‘분석적 상황의 신화에서 진실에 대한  번째 왜곡은 분석이 아픈 사람과 건강한 사람 간의 교류라는 것이다만약 그러하다면그리고 우리가 치료 과정의 민주화가 옳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정신 없이 빠져들어 환자와 자유롭게 교류하지 않는 것인가 가지 이유가 있다 번째 이유는  과정을 가능할  있게 하는 제한(restraint) 안전성이다치료사들은 자신들이  환자보다  건강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보호해야 하는 역할 때문에 치료사로서의 기능을 한다 번째 이유로환자만의 자원(resources) 발견하기 위해 - 환자가 항상 알고 있었던 것을 되찾기 위해 - 환자에게 공간과 시간을 허용해야 한다결국 환자는 우리로부터 세상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배우지 않는다.환자는 세상을 다루기 위해 우리를 다루는 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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