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 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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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기어려운/사실
작성자  산남자 작성일  2018.09.18 15:47 조회수 637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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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억 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바이러스  
 

1억 명의 사상자를 낳은 최악의 바이러스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비밀은 아직 풀리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18년 9월 세계 1차 대전의 총성이 서서히 멎어가던 그때 전에 없던 독감 바이러스가 영국령 제도를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참전 중인 군인과 민간인을 가릴 것 없이 병은 빠르게 퍼져나갔죠.

source : ⓒgetty image

영국의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총리도 독감을 앓았습니다. 연합군의 잇따른 승전보에 한창 고무돼 맨체스터에 방문한 로이드 조지 총리는 그날 저녁부터 갑자기 목이 따갑고 열이 나더니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그는 열흘 동안 맨체스터 시청 한편에 마련된 병상에 갇혀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신세로 지냈습니다. 너무 아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호흡기가 없으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죠. 


<맨체스터 가디언>을 비롯한 신문들은 총리의 병세가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다뤘습니다. 전쟁 중인 독일군이 이를 알고 대대적으로 선전 공세에 나설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로이드 조지 총리 옆에서 병시중을 든 이들의 말에 따르면 총리는 거의 사경을 헤맸던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55살이었던 로이드 조지 총리는 독감에서 간신히 회복돼 살아납니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운이 좋았던 건 아닙니다. 아직 항생제와 백신이 개발되기 전의 시대였습니다.


스페인 독감(Spanish Influenza, 대부분 언론을 엄격히 통제하고 검열하던 전시 상황에서 언론 검열 없이 상황을 자유롭게 보도할 수 있던 중립국 스페인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붙은 이름)으로 영국에서만 25만 명 가까운 사람이 죽었습니다. 끔찍한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군인들이 대부분 20~40대 젊은 남성이었다면 독감은 노약자나 어린이들부터 공략했습니다.

source : ⓒ미국 국립보건박물관

전 세계적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최근 집계에 따르면 1918년 봄부터 1919년 겨울 사이 세 차례 창궐한 전염병에 전 세계적으로 적게는 5천만 명, 많게는 1억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입니다. 100년 사이 세계 전체 인구가 늘어났기 때문에 지금으로 따지면 2억 명에서 많게는 4억 2,500만 명이 독감으로 죽은 셈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 어디서든 조류독감이 발견되면 곧바로 세계보건기구 상황실(war room)로 보고되고 신속하게 체계적인 방역과 격리 조치가 시작되지만, 100년 전에는 조기 경보 체계가 전혀 없었습니다. 


오히려 스페인의 국왕 알폰소 3세(Alfonso III)가 마드리드에서 독감에 걸렸다는 뉴스가 전해졌을 때 많은 사람이 농담이라고 생각하거나 이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린 걸 보면 사람들은 독감이 얼마나 무서운지 전혀 몰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소금물로 입안을 헹구고 열이 내릴 때까지 스스로 다른 사람을 만나지 말고 쉬라는 정도가 대책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마저도 빨리 전장에 군수품을 보내야 했던 공장 노동자들은 예외였습니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일한 결과 독감 바이러스는 빠르게 퍼졌습니다.

source : ⓒtvN

후천성 면역 결핍 증후군(HIV/Aids)을 비롯한 다른 유행병, 전염병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피해도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보다 아프리카, 아시아인들이 더 컸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스페인 독감에 걸린 환자의 치사율이 대략 2% 정도였지만, 무려 1,850만 명이 숨진 인도에서는 치사율이 6%나 됐고, 이집트에서는 치사율이 10%에 육박해 13만 8천 명이 스페인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독감 바이러스에 면역이 전혀 없는 고립된 도서 지역에서는 피해가 막심했는데 예를 들어 서사모아에서는 인구의 1/4이 몰살됐습니다. 아메리칸 사모아에서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던 것과 대조되는 결과입니다. 


왜 이렇게 유달리 급속도로 독감이 퍼졌는지 사망에 이르는 그 독특한 역학적 패턴은 오늘날까지도 과학자들이 그 수수께끼를 다 풀지 못했습니다. 


독감에 붙은 이름과 달리 바이러스가 처음 스페인에서 발견돼 퍼지기 시작했다고 믿는 역학자들은 거의 없습니다. 대신 많은 역학자가 독감이 본격적으로 퍼지기 전인 1918년 여름 코펜하겐과 다른 북유럽 도시 몇 군데에서 감기가 돌았던 점을 지적합니다.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돌연변이를 일으켜 직접 사람에게 옮은 건지 아니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다른 가축 등 포유류에서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에게 옮은 건지 그 경로를 밝히는 일은 훨씬 더 복잡해 지금껏 누구도 명확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미국 캔자스를 바이러스의 진원으로 지목하는 과학자들도 있고 북부 프랑스나 중국을 꼽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올해 초 스페인 독감에 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로 손꼽히는 미국 국립 알레르기 전염병 연구소의 분자 병리학자 제프리 토벤버거(Jeffrey Taubenberger)를 새로 진행하는 팟캐스트 방송에서 인터뷰했습니다.


토벤버거 박사는 벌써 30년 넘게 스페인 독감을 연구해 온 이 분야의 석학으로 약 20년 전에는 1918년 미군 병영에서 스페인 독감으로 숨진 군인의 몸에서 병리 목적으로 떼어낸 견본 조직과 당시 알래스카 해변에 묻힌 이누이트 여성의 폐 조직*에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RNA 조각을 찾아 복구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누이트 여성의 시신은 알래스카의 동토층에 묻힌 덕분에 부패하지 않고 보존됐습니다. 


현대 과학의 분자 기술을 활용해 토벤버거 박사와 앤 리드(Anne Reid) 박사는 바이러스의 RNA 조각을 확대, 분석한 뒤 2005년 바이러스의 유전자 구조를 펴냈습니다. 그들이 찾아낸 결과는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역학자들은 (사람 사이에서) 독감이 유행하기 전이나 후에 개, 고양이, 말 등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가축이나 동물들에서도 유행성 독감이 같이 돈다고 믿어왔습니다. 또, 그렇게 돈 독감 바이러스에 돼지나 사람이 감염되면 독감이 유행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야생에도 감기 바이러스가 있지만, 그건 철새들 사이에서만 도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토벤버거 박사가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해봤더니 대부분 새에게서 발견되는 독감 유전자와 거의 똑같았던 겁니다. 토벤버거는 H1N1이라고 이름 붙인 독감 바이러스가 새들 사이에서 도는 바이러스와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도 1916~1918년 어느 시점에 새들에게서 직접 사람으로 전염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토벤버거의 발견은 곧 앞으로도 조류독감이 인수 공통 전염 바이러스로 변종되면 언제든지 유행성 독감이나 전염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결론이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동남아시아를 강타했던 H5N1 조류독감이나 중국에서 사람에게 옮아 두려움에 떨게 했던 H7N9 조류독감도 자칫 큰 전염병으로 커질 수 있었습니다.


토벤버거의 연구를 두고 왜 박물관에 있어야 할 옛날 역병의 망령을 불러냈느냐고 묻거나 독감 바이러스가 실험실에서 잘못 관리돼 바깥 사회에 퍼져 다시 유행병을 일으키거나 행여 테러 단체 손에 들어가면 어떡하냐고 우려하는 이도 있었습니다. 


그런 불상사를 막기 위해 토벤버거와 동료 과학자들은 냉동 보관된 바이러스를 연구한 전후에 매번 FBI의 검사를 받았고 서아프리카에 에볼라가 창궐했을 때 의료진이 입는 것 같은 전신 작업복과 두 겹의 장갑, 호흡기까지 달고 연구실을 출입해야 했습니다. 


또, 매번 홍채 인식을 거쳐야만 연구실을 드나들 수 있었죠. 토벤버거 박사는 “마치 일급 국가기밀을 다루는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백신을 개발하거나 치료법을 찾아내려면 연구와 실험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스페인 독감은 현대 독감 바이러스보다 무려 3만9천 배나 많은 바이러스 입자를 만들어내며 치명적인 위력을 드러냈습니다. 토벤버거 박사는 염증 반응을 확인했고 이를 근거로 쥐를 독감 바이러스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source : ⓒ영화 <감기>

그렇다고 해도 과학자들이 감기 바이러스를 물리칠 방법을 찾아내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너무나도 멉니다. 유행성 독감이나 전염병은 말할 것도 없고 계절 독감에 듣는 일반적인 백신을 개발하는 것도 아직 요원합니다.


사실 스페인 독감이 정확히 어느 시점에 어느 장소에서 인간에게 옮았는지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있습니다. 유전자 지도로 보면 북아메리카에 머무는 철새와 가장 가깝긴 하지만, 토벤버거 박사는 스미스소니안(Smithsonian) 연구소의 수많은 조류 데이터베이스를 다 뒤지고도 1918년 이전에 부검한 새의 기록이나 표본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1918년 초 유럽 등의 전쟁터로 파병하는 미군 집결지인 캔자스주의 한 육군 부대 근처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옮았다는 설명이 있습니다. 분명 1918년 3월 캔자스 포트 라일리의 캠프 펀스톤 육군 부대에서는 유행성 독감과 같은 병이 돌았습니다. 이어 미국 동부 연안을 따라 독감이 퍼졌고 대서양을 건너 미군을 프랑스까지 실어 나른 수송선에서도 감기가 퍼졌습니다. 하지만 토벤버거 박사가 확인한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 가운데 가장 일찍 발견된 것은 1918년 5월입니다. 그 이전에 발생한 독감은 스페인 독감이 아니라 계절 독감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어느 쪽으로도 이를 입증할 방법은 없습니다.

영국 바이러스학자 존 옥스퍼드(John Oxford)는 오래 전부터 미군이 아닌 영국군이 스페인 독감의 진원지라고 주장해왔습니다. 당시 파리 교외 볼로뉴라는 지역에 영국군 10만 명이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에타플(Étaples) 캠프에서 스페인 독감이 시작됐다는 겁니다. 솜강 어귀에 있는 에타플은 철새의 이동 경로 바로 근처에 있었습니다. 수많은 철새에 사람들이 기르는 닭과 돼지 등 가축도 많았고 부대 안의 병사들은 환기도 잘 안 되는 야전 막사에 빽빽이 모여 있었습니다. 또한, 에타플 캠프 내 야전 병원에는 화생방 공격 등으로 오염된 전장에서 폐가 손상돼 입원 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있었습니다.


1917년 겨울 에타플에 머물던 영국군 수백 명이 감기 증상을 보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겨울에만 156명이 감기로 숨졌습니다. 당시 감기로 전사한 군인의 시신을 부검했을 때 기도에서 누런 고름이 잔뜩 흘러나왔기 때문에 이 증상을 ‘화농성 기관지염(purulent bronchitis)’이라고 불렸습니다. 의무병 가운데는 이 고름이 화학 가스 무기 포스진(phosgene) 공격으로 폐가 손상됐기 때문에 생겼다고 생각했습니다. 


심장에 산소가 부족해져 입술과 귀, 볼이 검푸르게 변하는 치아노제(cyanosis)도 주요 증상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스페인 독감에 걸렸다가 폐렴까지 걸리게 된 환자들에게서 치아노제 증상이 특히 두드러졌습니다. 의사들은 1919년 ‘랜쳇(Lancet)’에 낸 임상 보고서에서 화농성 기관지염과 치아노제를 일으키는 원인이 사실상 하나라고 썼습니다.

또한, 똑같이 스페인 독감에서 시작된 폐렴이더라도 어떤 때는 초기 병의 진척이 매우 빠르고 손상되는 폐 부위가 매우 국지적인 반면, 어떤 때는 기관지 폐렴과 비슷하게 폐 전체가 붓고 출혈이 일어나는 건지도 아직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독감 바이러스가 과다 면역 반응의 하나인 사이토카인 폭풍(cytokine storm)을 일으켰기 때문이라는 병리학자도 있고 항생제가 개발되기 전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던 박테리아가 폐를 망가뜨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설명도 정설로 인정받지는 못했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궁금증을 자아내는 질문은 역시 스페인 독감이 왜 유독 상대적으로 더 건강해야 할 젊은 성인에게 더 치명적이었느냐는 것일 겁니다. 시간이 흘러 수많은 가설이 나왔지만, 명확한 답이 될 만한 것은 아직 없습니다. 일단 당시 나이가 든 이들이 어렸을 때 스페인 독감의 H1N1 바이러스와 비슷한 유전 형질을 지닌 유행성 독감 바이러스에 노출된 적이 있어서 면역이 있었을 거란 설명이 있습니다. 반대로 1918년 당시 28살 이상이었던 성인들, 그러니까 태어나서 처음 접한 유행성 독감이 1890년의 러시아 독감(Russian flu)이었던 이들은 제대로 된 면역이 없었다는 겁니다. 러시아 독감은 H3 바이러스로 스페인 독감과 유전자 배열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러시아 독감에 면역이 있었어도 스페인 독감에는 소용이 없었을 거라는 겁니다. 아니면 1918년에 나타나는 눈에 띄게 높은 치사율은 지금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당시 젊은이들에게 가해진 어떤 환경적인 요인이나 스트레스 요인 탓일 수 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답을 찾아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스페인 독감과 비슷한 유전 형질의 독감 바이러스가 여전히 사람과 돼지 등에게 아직도 남아 독감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돌연변이가 돼 더 큰 피해를 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과 정확히 똑같은 바이러스도 100년 동안 살아남아 그대로 있고 일부 바이러스는 1968년 홍콩 독감 바이러스를 만나 변종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9년 돼지 독감(swine flu)이라고도 불렸던 신종플루 때 H1N1 기본 형질은 유지하면서도 조금 다른 바이러스가 돼 창궐하기도 했습니다. 토벤버거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1918년 유행한 독감은 실로 모든 유행성 독감의 기원이라 부를 만하다. 그때 처음 성공적으로 인간에게 침투한 조류독감 형태의 바이러스가 변종이 되고 합성돼 더욱 강해지면서 100년을 거뜬히 버텨냈기 때문이다.

유행병의 가장 속수무책으로 당한 존재는 아마 어린이였을 겁니다. 스페인 독감을 이겨낸 생존자 가운데 한 명인 아다 다윈(Ada Darwin)은 2005년 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11월 17일 일요일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머리가 정말이지 깨질 듯이 아파서 어머니께 동생 노라가 계속 재잘재잘 떠들지 좀 못하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이어 아다의 어머니 제인 베리(Jane Berry)와 갓난아기였던 여동생 에디스(Edith), 남동생 오스틴(Austin, 당시 2살), 노엘(Noel, 당시 4살)이 모두 독감에 걸렸습니다. 온 가족이 병에 시름시름 앓자 가족을 보살피러 할머니가 집에 왔지만, 그때는 이미 아다의 어머니는 온몸이 검푸르게 변해버린 뒤로 예후가 좋지 않았습니다. (치아노제 증상으로 추정) 다음날인 11월 20일 어머니는 34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고 사흘 뒤 동생 노엘이 숨졌습니다.


다윈이 육군 병원에서 일하던 아버지 프레데릭 베리(Frederick Berry)도 숨졌다는 걸 알게 된 것은 25일의 일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나이는 38살이었습니다. 아버지는 휴전 이후 부상병들의 치료를 돕고자 살포드에 있는 육군 병원에서 일해왔습니다. 환자로부터 독감 바이러스에 옮았을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11월 29일 아버지의 장례식은 어머니, 그리고 동생 노엘과 함께 육군장으로 치러졌고 시신은 맨체스터의 묘지에 묻혔습니다. 아다 다윈은 아직도 부모님과 동생의 관이 자신이 다니던 초등학교 앞을 지나던 장면을 94살이던 인터뷰 당시에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내 머릿속에는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선명하게 남아있다. 타조 깃털로 만든 장식을 단 검은색 말들이 앞장서고 이어 영국 국기로 덮은 아버지의 관을 총 든 군인들이 호위하고 가고 있었다. 어머니의 관은 커다란 유리로 된 영구차에 실려 있었고 노엘의 관은 운전석 아래 있었다. 할머니가 내게 엄마는 예수님 곁으로 갔으니 걱정 말라고 말씀해주셨지만, 나는 ‘예수님 곁에는 이미 사람들이 많이 있을 텐데 왜 우리 엄마를 데리고 가는지, 난 엄마가 보고 싶은데’라는 생각만 했다.

젊은 부모 가운데 희생자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다윈과 같은 사연을 지닌 이들도 정말 많습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는 스페인 독감으로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이 2~3천 명이나 된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런던에서는 1918년 9월부터 12월 사이에만 1만 6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습니다. 이듬해까지 스페인 독감이 맹위를 떨치며 1919년은 영국이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사망률이 출생률보다 높은 해로 기록됩니다. 


그 후로 100년이 지났습니다. 스페인 독감을 직접 경험했던 사람 가운데 아직 살아있는 이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맨체스터 보건국장 제임스 니벤의 표현을 빌리면 “워낙 죽는 사람이 많아서 관을 맞춰 짜기도 어려웠고 묘지 도굴꾼들이 도굴할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100년 전 겨울 나타난 바이러스는 엄혹했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스페인 독감 발발 100년을 맞은 지금 다윈과 같은 생존자들을 더 찾아 이야기를 모으고 연구를 계속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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