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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ac 작성일  2018.10.23 07:19 조회수 1158 추천 0
제목
 에베레스트 올라 세븐 서밋 이룬 ‘한국 아줌마’ 이 연 숙 Yonsuk Suzanna Lee Derby   
 

휴먼 알피니스트

글: 신영철 편집이사

사진: 신영철 이연숙  

 

 

 

에베레스트 올라 세븐 서밋 이룬 ‘한국 아줌마’

이 연 숙 Yonsuk Suzanna Lee Derby  

 

 

2.jpg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만난 이연숙씨

 

2011_Mt._Everest_211.JPG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른 태극기

 

                                                                *************************

 

 발문: 올 봄 시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는 한국 등반대가 한 팀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한 상업등반대 텐트에 태극기가 걸려있다.  33명 고객 가운데 한국 여성이 있었기 때문. 한국계 미국인인 이연숙(52세)씨는 ‘세븐 서밋’의 마지막 관문을 남겨놓고 있었다.  

 

 " 남편은 스탠퍼드대에서 수학 석사를 우등 졸업했고 나도 석사 과정을 하고 싶었지만남편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어요. 펀드매니저로 근무하던 남편과 작은 펀드사를 사서 독립했고 우린 24시간 일하며 규모를 키우고 재산을 모아 일찍 은퇴했어요.  그러면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 했어요. 채웠어도 허기진 무언가가 있었지요.”

 

" 9살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 왔어요. 부모님은 영어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며 한국말을 못 쓰게 했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아요.……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지만 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어 아프리카로 여행간 적이 있어요. 그때 기창 밖으로 킬리만자로가 보았는데 사반나 평원에 우뚝 솟은 산과 만년설, 놀라운 풍경이었어요.”

 

 

                                                                                      ************************************* 

 

 2011년 5월, 봄 등반 시즌을 맞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창체, 눕체, 에베레스트 서릉에 포위되어 더는 앞으로 갈 수 없는 막다른 쿰부 빙하 끝.

산에 들면 산을 보지 못한다는 말처럼 고생 끝에 찾은 베이스캠프에선 에베레스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캠프는 여전히 붐비고 있었고 빙하 위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등반대들로 ‘천막도시’가 건설되어 있다.

나름대로 디자인된 형형색색 천막들과 오색 룽다가 하얀 산을 배경으로 캬라반 길에서 목격한 네팔 국화(國花) 랄리그라스처럼 무리 진 꽃처럼 피어나 있었다.

 

해발 5300미터 베이스캠프엔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였다.

스페인 후아니또 오이아르자발은 로체를 목표로 그의 파트너 가르시아와 들어왔다. 경이적인 기록인 에베레스트 21번 등정자 아파 셰르파는 2캠프에 있었다. 오은선의 경쟁자였던 스페인 에두르네 파사반이 반갑게 맞는다.그녀는 이미 에베레스트를 올랐지만 이번에는 무산소로 오르기 위해 낮 익은 방송팀과 함께 있었다.

모두 지난해 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만났던 사람들이다.

그 중 스페인 기자들이 반색하며 인터뷰를 요청한다. 필시 오은선 때문이리라. 그러나 제의를 거절했다. 이 먼 곳까지 온 내 일이 먼저였으니까.

 

캠프를 돌다보니 아쉬웠다. 해마다 한 두 팀 정도는 있었던 한국의 등반대가 이번에는 없었다.

이제 한국 산악인들에게 에베레스트는 매력을 잃은 것인가?  대규모 셰르파와 대원들이 루트 개척을 함께하는 이 산은 등반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일까?

그런 판단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지만 그런 시각이 상존하는 건 맞다. 그러나 한국이 아니더라도 에베레스트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갈수록 늘어만 가는 게 현실이다.

 

한국은 없지만 특이하게 일본 팀은 무려 다섯 팀이나 들어와 있다.  벨로루시, 아르메니아 등 낯선 나라들도 보였다. 모두 25개 팀이 왔다는데 그 숫자는 정확한 게 아니다. 

상업등반대 때문이다. 상업등반대에 속한 대원들이 자신의 국기를 라마제단에 줄줄이 걸어 놓았듯 한 팀 속에 여러 나라가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반가운 얼굴들과 새로운 등반가들 만나며 바쁘게 베이스캠프를 오르내릴 때였다. 베이스캠프에서 자며 긴 이야기 나누자는 스페인 팀의 호의가 있었으나 고소적응도 안된 상황에서 내려가려고 하는데, 놀랍게도 라마제단에 걸린 작은 태극기가 눈에 들어왔다.

 

누구에게 물어도 한국 등반가는 없었는데 뜬금없이 태극기라니!

 

 

3캠프.jpg

                                                     쿰부 빙하를 배경으로 그녀의 텐트가 보인다

 

그 주인공을 찾아 나섰다. 국제산악가이드(International mountain Guides)팀 소속이었다.

약칭 IMG로 불리는 이 전문 상업등반대는 무려 33명의 고객과 함께 베이스캠프로 온 것. 취재 온 목적을 밝히고 태극기의 주인공을 찾으니 캠프 매니저인 듯한 사람이 불친절하게 맞는다. 아마 동 서양을 막론하고 산악관련 저널리스트들이 상업등반대를 비판적 시각으로 보는 풍토가 불편한 듯싶었다.

 

태극기 주인공이 만나고 싶다면 면담을 허락할 수 있으나, 당사자가 거절하면 캠프사이트에서 나가라고 말한다. 기분이 나빴으나 각국 국기 사이 걸어 놓은 작은 태극기 주인공을 꼭 만나고 싶었다. 그의 안내를 따라 수많은 개인 텐트 중 한곳에 도달했다. 텐트 안에서 매니저와 대화를 나누던 사람이 텐트 밖으로 나왔다.

여자? 까맣게 그을린 동양인 여자! 그것도 한국 여자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반전이다. 놀라기는 그 여자도 마찬가지. 그녀의 안내로 식당 텐트에서 커피를 마주 놓고 앉았다.

 

“한국에서 오신 등반가입니까?”

“아니, 재미교포입니다. 이름은 이연숙. 풀 네임은 연숙 수잔 리 더비(Yonsuk Suzanna Lee Derby) 에베레스트는 나에게 세븐 서밋의 마지막 봉이 됩니다.”

그녀는 또 한 번 사람을 놀라게 한다. 산악계 소식은 그럭저럭 정통하다고 생각했는데, 7대륙 최고봉 ‘세븐 서밋’을 추구하는 여자가 있었다니. 그것도 7대륙 최고봉 중 이 에베레스트가 마지막이라니. 이 아주머니, 참 대단하다 싶었다.

 

“실례지만 지금 몇 살입니까?”

“나이 많아요. 미국 나이로는 쉰하나. 한국 나이로는 쉰둘인데,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군요. 여기서 한국 사람을 만나다니. 그러나 인터뷰는 하고 싶지 않아요. 여태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까요. 공연히 삼가는 게 아니라 조용하게 시작했으니 조용히 끝내고 싶어요.”

까맣게 그을린 얼굴이 그간의 고생을 웅변했다. 대화를 나누며 처음에는 동족을 만나  반가움 넘치는 표정이더니 등반 이야기로 들어가자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아무래도 정 들지 못할 지독한 백색의 세계에서 외로웠던 것일까? 아니면 오랜만에 한국말로 대화를 할 수 있어 그럴까?

눈물은 전염이 잘 된다. 젖은 그녀의 눈을 보며 나 역시 코가 매워졌다.

 

이연숙씨가 인터뷰를 사양한다는 말엔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 말에 동의할 수는 없다. 직업의식이 아니라 그녀에게서 한국 아주머니의 놀라운 저력을 보는 것 같았으므로. 한국을 이 만큼 먹고 살만하게 만든 게 억척스런 아줌마 힘이라는 농담이 있다.

미국 시민권자이지만 그녀 역시 대문 입구에 태극기를 걸어 놓은 한국인 아줌마에 틀림없다.

 

“왜 우세요? 그렇게 힘들었나요? 한국 같으면 그 나이엔 찜질방이나 쇼핑을 즐길 텐데 히말라야라니요. 그것도 최고봉 에베레스트까지. 이런 사실은 한국의 아줌마들에게 귀감이 될 거고  자랑스러운 여성상이 될 거예요. 목표가 있는 인생은 아름답잖아요.”

인터뷰를 완강하게 거절할까 봐 늘어놓은 사설에, 그녀는 번진 눈물을 슬그머니 닦아 내며 웃었다. 자외선과 복사광에 까맣게 바뀐 얼굴에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도드라졌다.

“내 개인적인 행위가 한국 여성들에게 도움이 될까요? 그렇다면 태극기를 자랑스레 베이스캠프에 걸어 놓은 여자라고 써 주세요. 그러나 권하지는 못하겠네요. 고산등반은 너무 힘들어요.”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나는 그녀가 흘렸던 눈물이 복합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와 만나는 당일 아침, 3캠프에서 내려왔다고 말했다.

해발 7600미터에 위치한 제비둥지 3캠프가 어떤 곳인가. 모든 게 오그라지는 추위에서 불면의 밤을 꼬박세우고 그나마 오아시스 같은 베이스캠프로의 귀환. 정상을 앞두고 고소적응의 일환이라지만 그곳에서의 하룻밤이 너무 끔찍했던 것이다.

 

“올라갈 때는 컨디션이 좋았어요. 그러나 해가 지니까 너무 추웠어요. 숨도 막히고. 정상을 오르기 위한 모든 장비는 그곳에 있고 이제 올라가면 성공이든가 실패, 둘 중 하나겠지요.”

고소캠프를 넘나들다 그날 3캠프에서 하산한 연숙씨는 고소적응 훈련을 모두 마친 상태. 며칠 쉰 후 올라가면 그녀 말대로 영광이거나, 좌절 둘 중 하나일 터였다.

 

 

3.jpg

                                                                    그녀가 자신의 마스코트 초록거북이와 붉은 매듭을 보여주고 있다

 

 

“잠깐, 보여줄 게 있어요.”

자신의 텐트로 돌아 간 그녀가 두 가지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양손에 하나씩 든 건 초록 거북이 인형과 붉은 실로 만든 한국 노리개 매듭.

“거북이는 스스로 느리게 움직이라고 등반 중에 꼭 달고 다니는 거고요,  이 붉은 매듭은 행운을 준다는 할머니의 선물입니다.  이 두 가지를 등산복에 달고 다니면 왠지 마음이 든든해져요.”

 

그녀가 환하게 웃었다. 거북 인형과 매듭이 주술적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게 남이 볼 때 어떨지 모르나 그녀에게는 심각한 선택이었다. 그 나이에 취향이 소아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에게는 고려 대상이 아님이 분명했다. 한순간 잘못될 수 있는 게 에베레스트 등반 아닌가.

 

“언제 미국으로 이주했습니까? 한국말을 아주 잘 하시는데요.”

“제가 아홉 살 반 때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어요. 부모님은 영어에 빨리 익숙해져야 한다며 집에선 한국말을 못 쓰게 했지요. 그러나 한국에서 초등학교 다니던 기억은 절대 잊히지 않아요.  한국 조선호텔에서 1년 반 근무한 적이 있는데 금방 복원되더라고요.”

 

“언제부터 산을 올랐나요? 그리고 세븐 서밋이라는 목표를 세운 이유는요?”

“지금은 대학생이 되었지만 큰 아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어 둘이 아프리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 애가 고교 졸업시절이었습니다. 그때 기창 밖으로 킬리만자로가 보이는 겁니다. 사반나 평원에 우뚝 솟은 산과 만년설, 놀라운 풍경이었어요.”

 

풍경보다 그녀가 더 놀랄 상황이 벌어졌다. 곁에 앉았던 사람이, 그 정상을 올라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 말이 이연숙씨를 산으로 끌어당기는 운명적 촉매로 기능했다.

미국으로 돌아가 인터넷으로 킬리만자로 등반에 대하여 찾아보니, 거기엔 그녀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한 또 다른 시간과 세계가 숨어 있었다.

 

                                                  베이스캠프에 태극기를 걸어놓은 여자

 

 “그때 웹 서핑을 통해 세븐 서밋에 대해 알게 됐어요. 그런 정보를 스크랩할 때마다 내면에서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기분을 느꼈어요.  따지고 보면 초등학교 때 미국에 와 바쁜 이민 생활에 적응하며, 돈 벌고 결혼하여 아이들을 낳고  미국인이 되었으나 무엇인가 미진하고 쓸쓸한 마음은 늘 마음 한쪽에 있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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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6월  매킨리 정상

 

 쓸쓸하다는 말. 그래서 목숨까지도 담보하는 고산등반을 택했다? 어딘지 퍼즐이 잘 맞지 않는다. 지금 그녀는 갱년기를 말하는 지도 모른다. 여성으로 자손 생산이 끝나고 내분비 계통의 호르몬이 감소하는 때, 여성들은 심한 가슴앓이를 한다고 한다. 그것을 갱년기 증후군이라 한다던데.

 

“글쎄요 그것인지는 모르나 내 삶은 무엇인가, 어쩌다보니 오십이 넘었는데 과연 그 동안 내가 잘 살아 온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에 봉착한 것이죠. 답이 나오더군요. 돈 때문에 평생 일을 해왔지만 스스로 선택해 내가 좋아 하는 일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는. 그래서 이번에는 내 의지로 산을 선택한 거예요.”

“상업등반대는 돈이 많이 드는데, 에베레스트만 하더라도 분담금 65,000불에 개인 경비까지  70.000불 정도는 들 텐데요. 남편이 도움을 주나요?”

“아뇨. 그 정도 지출은 내가 해요. 나는 남편과 헤지펀드를 운영하다 은퇴했어요.”

 

헤지펀드라? 한국에서 해지펀드는 돈 놓고 돈 먹는 투기세력이라는 평을 듣는 위험한 게임이라는 인식이 있다. 2008년 외환위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은 자본주의 꽃이라고도 불리는 고단위 투자 기법으로 보는 게 맞다.

 

“스티븐 더비라고, 오빠 친구인 백인과 결혼했어요. 신랑은 스탠퍼드대에서 수학 석사를 1등으로 졸업했고요. 나도 석사 과정을 하고 싶었지만 남편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어요. 남편이 펀드 매니저로 근무하다  작은 펀드 회사를 사서 독립했는데 함께 일을 했죠. 부부합동으로 24시간 일했고 점차 규모가 커지고 재산이 쌓이자 그만 은퇴를 한 거죠, 그러면 행복해야 할 텐데 그렇지 못 했어요. 채웠어도 허기진 무언가가 있었지요.”

 

성공한 후 은퇴했다는 백만장자가 외롭다는 말이 생경하다.

그녀는 원래 운동을 좋아했다. 마라톤 같은 격렬한 운동으로 몸을 혹사시켜도 무언가 미진했다. 그럴 즈음 만난 산은 그녀에게 구원이었다. 산으로 필이 꽂히자 수소문하여 동네 인근 실내 암장을 찾았다. 

어렵게 찾은 암장에서 백인 코치로부터 개인지도를 받기 시작했다. 암,빙벽 기술도 배우고 팔 힘과 악력을 위해 바벨도 들었다.

산악 모임에 참여해 산도 오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6일을 몸만들기에 쏟아 부었다. 자신의 꿈으로 설정한 세븐 서밋을 위하여.

 

 

2008_Aconcagua_049.JPG

 

                                                                                             2008년 Aconcagua 에서

 

 

 그렇게 훈련을 해온 그녀는 5년 안에 세븐 서밋을 마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06년 산에 대한 첫 사랑을 눈뜨게 했던 킬리만자로를 올랐고,  2007년엔 엘부르즈 주봉인 서봉을 올랐다. 2008년엔 엘부르즈 서봉을 오르고 아콩카구아를 오른다.  2009년엔 남극 빈슨매시프와 오세아니아 최고봉 칼스텐츠를 오른다.

2010년엔 매킨리를 올라 에베레스트를 남겨 둔 상황에서 세계 6위봉 초오유를 오르다 실패했다.

 

“그렇게 세븐 서밋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동안 언론이 그냥 두지 않았을 텐데요.”

“유명해지는 걸 원치 않았어요. 늘 혼자 움직였고 조용히 등반만 했습니다. 공연히 번거로우면 등반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그리고 스폰서는 나서지도 않았지만 찾지도 않았어요. 내 목적은 조용히 내 계획을 완성시키는 것이었으니까요.”

 

시간이 많이 흘렀다. 베이스캠프에서 자고 가라는 외국 산우들의 배려를 거절한 건 밤새 고소증에 시달릴 공포 때문이었다. 그건 분명했다. 바삐 올라왔으니까. 그래서 로부체로 내려가야 했다. 그곳도 해발 4900미터지만 베이스캠프보다는 400미터가 낮다.

“내 명함에 이메일 주소가 있으니 성공하면 연락 주세요. 그리고 산은 다시 오면 되니까 절대 무리하지 말고요. 행운을 빕니다.” 

그녀는 룽다가 펄럭이는 라마제단 앞까지 배웅을 나왔다.

베이스캠프에는 옅은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송곳 같은 푸모리와 날카로운 눕체 연봉, 그리고 에베레스트 서릉과 얼음폭포 아이스폴 상단엔 햇빛 잔상이 아직 남아 있었다.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거북아, 우리 포기하진 말자

 

 귀국하여 바쁜 일상에 부대끼며 그녀를 잊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영문 이메일이 한통 들어와 있었다. 이연숙 그녀였다. 정상에 섰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메일을 읽으며 ‘독한 여자, 독한 아줌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각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꿈을 완성시킨 성취감 때문일까 태평양 건너 전해오는 목소리는 생기가 넘쳤다.

 

“축하합니다. 걱정 많이 했어요. 정상에 연숙씨 마스코트 거북이도 함께 올랐나요?”

거북이 이야기가 무의식 중 먼저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요. 거북이 덕을 많이 봤어요. 얼마나 춥고 바람이 세던지 정말 힘들었어요.”

“언제, 누구와 정상에 섰지요?”

“5월 13일 오전 5시 45분이었습니다. 내 앞에 정상을 오른 사람은 두 명이 있었어요. 제가 세 번째로 오른 것입니다. 정상에서 그 태극기를 펼쳐 들었고요.”

그녀는 12일 오후 9시에 사우스콜 4캠프를 떠났으니 밤새 에베레스트 동남릉을 올라 8시간 45분이 걸렸다는 말이다. 대단한 속도다.

“한명은 탈락하고 5명의 대원들과 5명의 셰르파가 각각 조를 이루어 등반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동료보다 나의 출발은 30여분 늦었어요. 출발하기 전 산소통에 레귤레이터를 결합시키려니 맞지 않는 거예요. 얼음이 나사에 끼었는지 안 맞더군요. 돌로 산소통을 두드리며 겨우 조립시켰어요. 그리고 앞선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 나선 거지요.”

 

오전 1시 15분에 헤드램프를 켠 채 발코니 왼쪽을 통과했다. 티베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살인적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함께하는 거북이처럼 끊임없이 올랐다.

“가장 어려웠던 구간은 남봉을 거칠 때였습니다.

고정로프는 눈 속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고 표식기도 없는데 양 옆은 깎아지른 벼랑이고… 힐러리 스텝은 오히려 쉬웠습니다.”

설상가상으로 눈보라가 시작되었다. 고정로프가 눈에 파묻힌 나이프 릿지에 몰아친 추위와 모진 강풍은 살아 경험하는 지옥처럼 멈출지 몰랐다.

 

“몸을 굽히고 스틱에 의지한 채 자주 쉬어야했어요. 내가 미쳤지 내가 미쳤지.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겁니다. 몸 아프고 죽도록 힘들고. 실제 죽을지도 모르는 이런 일을 왜 하는가. 후회도 들었고요.”

연숙씨 앞에는 호주사람, 멕시코 사람 한명이 있었다. 그녀는 늦게 출발했음에도 또 유일한 여성이었음에도 5명중 3번째로 정상을 밟았다.

 

“정상엔 우리 팀밖에 없었어요. 어찌나 바람이 세게 부는지 사진 찍고 바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감격이고 뭐고 없었어요. 한 5분 머물었나요? 정말 굉장한 바람이었습니다. 과연 에베레스트였어요. 직접 부딪쳐 보니까 실감났습니다. 티베트 쪽에서 부는 제트기류에 정신이 없을 정도였어요. 영하 30도는 넘었습니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때마다 거북이를 쓰다듬었어요. 천천히, 천천히, 그러나 거북아, 우리 포기하진 말자고요.”

 

그녀는 등반 과정을 리얼하게 설명했다. 8000미터 위에서 미친 사람처럼 홀로 중얼거리는 모습이 그려진다.

당연하게 하산도 쉽지 않았다. 그녀의 오른쪽 눈에는 이미 설맹이 왔다. 시야가 뿌옇게 보이고 눈물만 줄줄 흘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료 한명은 양쪽 눈 모두 설맹이 걸렸다. 셰르파 3명이 그를 돕기 위해 전담으로 배치되었다.

 

“내 파트너 다와 셰르파에게 나는 혼자 내려 갈 테니 그 사람을 도우라고 했어요. 그런데 힘들었는지 다와는 자신만 생각하는 모습이었어요. 얼마나 화가 나던지. 되게 뭐라고 해서 합류시켰지만 그 역시 힘이 소진되었다는 반증이지요.”

정상을 오른 대가로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죽은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등반을 포기하고 싶었던 생각이 간절했어요. 세븐 서밋의 마지막이기에 성공하고 내려가고 싶은 욕심과 싸움을 한 거지요. 힘이 들 때마다 아이들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 모르핀 맞은 것처럼 힘이 솟더군요.”

 

그녀도 어쩔 수 없는 엄마다. 독한 엄마는 한국 여성 중 9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되었다.  김순주, 지현옥, 이오순, 오은선, 곽정혜, 고미영, 김영미 그 다음이다. 그중 둘은 산에서 젊은 삶을 접었다.

세븐 서밋은 오은선, 김영미 다음인 3번째.  미국에서는 아마 처음인지 모른다. 그런 사실을 알려줬다.

 

                                         한국 여성 중 9번째 EV 등정, 3번째 세븐 서밋 등정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4캠프에 내려와 두 시간 정도 물마시며 쉬다가, 내쳐 2캠프로 내려왔어요. 도착하니 오후 5시경이었는데 그때서야 이제 내 프로젝트가 끝났다는 걸 실감하게 되더라고요.”

그곳에만 내려와도 살 것 같았다. 등반 내내 불었던 강풍도 잦아들고 추위도 한결 덜 했으니까. 산소도 위쪽 보다 많아 숨쉬기도 편했다. 그보다 좋은 것은 이미 2캠프는 베이스캠프와 마찬가지로 많은 음식과 안락한 텐트그리고 그것을 요리할 스텝들이 있었다.  

“아직 고소긴 해도 8000미터 위와 비교하면 천국 같은 곳이지요. 제가 만든 꿈을 드디어 이루고 이 고행이 끝났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그 희열과 성취감. 치열하게 산다는 것은 이런 삶일 것이다. 가치 있는 삶은 재산이나 명예가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자기를 극복하는 과정과 살아 있음을 절절하게 확인한 시간. 그래서 극한일수록 그 성취감의 밀도가 높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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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당신에게 어떤 존재입니까?”

“산을 오르는 게 바로 인생 아닌가요? 문명화된 현대에서 삶의 무게는 살수록 무거워지지만  산은 오를수록 자신이 가벼워지는 걸 느낍니다. 또 산은 나 같은 여자의 푸념을 대꾸 없이 그저 받아 주잖아요. 그렇게 산을 오르면 삶의 무게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런 것도 산을 찾는 이유가 되는 걸까요?”

 

묻는 건 나였는데 오히려 그녀가 물었는데,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그 말은 확실하게 할 수 있다.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까.

 

그녀는 베이스캠프로 내려와 페리체까지 걸어 헬리콥터를 타고 카트만두로 내려왔다.

“한국 식당이 15개가 있던데 그 중 두 개는 북한 식당이더군요. 한국음식 먹으러 식당 순례를 했죠. 14킬로그램 정도 살이 빠졌으니까요.”

한국 음식도 먹고 싶었지만 그보다 한국말이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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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들과 함께

 

 

“아들들이 엄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나요?”

“그럼요. 큰 아들은 저러다 말겠지. 한 두개 오르다 힘들면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계획대로 에베레스트까지 끝내고 나니까 자랑스럽나 봐요. 그런데 6학년 막내는 아직 철이 없어 그런지 ‘당연히 해 낼 줄 알았어. 엄마는 고집이 있으니까’ 그러는 거예요. 분명한 건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 알았다는 점입니다. 하하.”

 

그녀는 6월 2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웃음엔 아들 자랑이, 더 깊은 사랑이 묻어 있었다. 밝은 목소리, 넘치는 생기. 그럴 것이다. 세븐 서밋을 끝내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일 테니까. 또 폭풍설 몰아치는 에베레스트에서 끔찍한 기억은 곧 그리움으로 순치될 것이다.

전송 사진으로 보내 온 뉴저지의 저택. 안온한 집으로의 무사귀환은, 독했던 엄마 웃음으로 한동안 넘칠 것이다. 안주인 엄마의 헤픈 웃음이 가족 모두에게 전염될 거라는 행복한 그림이 머리속에 떠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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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는 뉴욕과 가까운 코네디컷 그리니치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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