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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창작글
작성자  windandi 작성일  2018.11.10 12:00 조회수 479 추천 0
제목
 소주  
 

                                                                소주


   소주는 나에게 술이 아니다. 음식이다. 소주가 단순한 술이었다면 수 십년간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마셨던 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점심시간이 끝나면 교실을 이동해서 자신에게 부족한 과목에 대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특별 수업 제도가 있었다. 입시 준비를 위한 특별 수업이었는데 나는 담임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이 시간을 틈타서 몰래 학교 뒷산으로 담치기를 하였다. 그곳에서 이미 입시를 포기한 학생들이나 불량한 친구들이랑 어울려 놀다가, 종례 시간이 될 때면 다시 담을 타고 돌아와 원래 반으로 복귀하곤 했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들과 라면땅 안주에 소주 마시는 걸 배웠다. 이렇게 시작된 나의 소주와의 잘못된 만남은 한때 내게 많은 상처를 줘서 심각하게 이별을 생각해 본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버리지 못하고 40년 세월 동안 일편단심 사랑하고 있다.

   내가 소주를 사랑하는 만큼 나는 소주를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나는 지금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오늘 저녁 소주 한 잔 할래요?”라는 말이다. 나는 소주 첫 잔을 마시는 것을 보고 당신이 얼마나 술꾼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진짜 술꾼이라면 절대로 소주 첫 잔을 마시기 전에 다른 안주를 먹지 않는다. 빈속에 소주가 목 천장을 타고 위벽으로 흘러들어가 흡수되며 느끼는 짜릿한 오르가즘을 즐기는 자라면 당신은 진정한 술꾼이다. 그 다음 당신이 집어 드는 모든 음식은 그대로 소주와 어울리는 최고의 안주가 되는 것이다. 기름이 자르르 도는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이나, 깻잎 위에 전어를 몇 점 올리고, 젓가락으로 쌈장 조금 뜨고 마늘 한 점을 올려놓고 먹는 이 세상 최고의 안주도, 소주 한 잔을 마시고 캬~하고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신음을 내고 먹어야 제 맛이다. 호화스런 안주만이 소주와 잘 어울리는 것은 아니다. 젊은 날에는 신 김치에 깍두기 한 접시, 짬뽕 국물 한 그릇 가지고도 소주를 일곱 병이나 때렸다. 또한 소주는 음식하고만 맛있게 어울리는 게 아니다. 당신이 소주를 몇 잔 마시면 못 생겼던 아가씨가 어느 새 묘하게 섹시해지며 당신을 유혹할 수 있고, 너무 빡빡해서 깨질 것 같은 비즈니스 거래도 상대방이랑 소주 몇 잔을 돌리다 보면 어느 새 호형호제하면서 부드럽게 풀릴 수 있는, 소주는 모든 어색한 분위기에 최고의 분위기 메이커이다

   사십 여 년 소주를 마시며 알게 된 많은 사람들과 소주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를 글로 쓴다면 웬만한 장편 소설로도 모자랄 것이다. 그러나 유난히 생각나는 한 분이 있다. 이 글의 서두에서 밝혔지만 나는 소주를 처음 배울 때 잘못 배워 한 동안 큰 고생을 하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어울려 안주도 없이 깡소주 마시는 것을 배워서 쉽게 취했고, 취한 후에는 주사를 부리고……지금 생각하면 매우 위험한 일들이 많았다. 술은 취하기 위해서 마시는 것이라고 잘 못 배웠던 것이다. 그런데 대학 2학년 초에 그런 잘못된 음주 습관을 바로 잡아준 내 인생의 큰 스승과도 같은 분을 만났다.

   계엄령으로 휴교가 된 후에도 한동안 나는 습관적으로 학교에 나갔다. 그날도 교문은 굳게 닫히고 학교 축구 선수들이 항상 연습에 열중하였던 교내 운동장엔 탱크들이 집결되어 있는 암울한 모습을 보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을 돌렸다. 나는 전철을 타기 위해 제기동 전철역 부근 정류장에 내렸을 때 우연히 <학원 선생님 모집, 대학생 환영>이라는 낡은 2층 목조 건물의 현관에 붙은 벽보 광고를 보았다. 마침 여자 친구가 생겨 데이트하는데 항상 돈이 쪼들렸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학원은 2층에 있었는데 좁은 나무 계단을 한참 올라가 구석진 곳에 있었다. 그곳에서 연세가 꽤 들어 보이는 분(아마 지금의 내 나이 정도 되었을 것이다.)을 만났는데 그 분이 원장님이셨다. 뭐가 마음에 드셨는지 나는 그 자리에서 채용되었고 그날부터 바로 수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영어 수업을 맡았는데 학생들은 인근 시장 부근에 사는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로서 비싼 학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영세한 시장 상인들의 자녀들이 대부분이었다. 학원 또한 명색만 학원이지 학생들이 전부 합쳐서 열댓명 정도밖에 안 되는 매우 영세한 학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원장님은 내 아르바이트 비를 주는 데도 버겁게 보였고, 학생들은 아무리 가르쳐도 성적이 오를 것 같지 않은 학생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그곳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적은 돈이지만 처음으로 내가 일해서 돈을 번다는 뿌듯한 마음과 함께, 수업이 끝나고 원장님과 꼭 한 잔을 함께 하는 즐거움 때문이었다. 원장님은 수업이 끝나면 꼭 내게 황 선생, 수고 하셨어요. 어디 가서 한 잔 하고 갑시다.”라고 아들뻘인 내게 꼭 존댓말을 썼다. 그렇게 선생님은 따라간 곳은 버젓한 음식점이 아니었고 시장 뒷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음식점들이었다. 그러나 그곳의 음식들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훌륭하였다. 선생님은 꼭 그곳에 들려 여기는 무슨 음식이 유명한 집이라는 등 내게 꼭 설명을 해줬는데, 지금으로 보면 맛집 같은 곳들이었던 것이다. 첫 날 선생님과 함께 갔던 푸짐한 생선전과 함께 동태찌개가 얼큰하게 맛있었던 집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선생님은 내가 고개를 돌려 황급히 소주잔을 비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며 아니 무슨 술을 그리 급하게 마셔요? 안주도 먹지 않고.”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원장님은 내게 술은 안주와 함께 천천히 마시는 것이라고 그전까지 아무도 안 가르쳐 준 중요한 사실을 처음으로 가르쳐 주신 것이다.

   선생님은 심하지는 않지만 다리를 조금 저셨다.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안 했지만 술이 조금 들어가면 조금씩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셨다. 평생 공무원만 하다가 은퇴하셨는데 뒤늦게 얻은 딸 때문에 팔자에 없는 훈장질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모님이 딸을 낳고 얼마 안 가 돌아가셔서 원장님은 그 늦둥이 딸을 업고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젖동냥을 하다시피해서 키웠다고 한다. 그 늦둥이 딸 영숙이는(아주 흔한 이름이지만 아직도 기억한다.) 학원에서 칠판을 닦고 교실 청소를 하는 등 급사 역할을 하는 동시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수업도 들었는데 그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나는 그녀가 유난히 말이 없고 사소한 일에도 얼굴을 자주 붉히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학생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날 학원에 나오니 영숙이가 모기 소리 같은 소리로 오늘은 원장님이 아프셔서 못 나오셔서 학원을 내게 부탁하셨다고 전한다. 수업이 끝나고 아무래도 걱정이 되었고, 마침 몇몇 학생들에게 학원비 받은 것도 있어 전해드리려고, 영숙이에게 병문안을 가게 앞장서라고 했더니 왠지 영숙이가 삐쭉거린다. 마지못해 하는 영숙이를 앞장 세워 홍릉 시장 골목길을 지나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어느 순간 영숙이는 내가 쫒아오지 못하기라도 바라는 듯 잰걸음으로 달려가다시피 갔지만 워낙 걸음이 빠른 나를 떨어뜨리지는 못했다. 나는 항상 그녀 뒤에 바짝 다가서 갔다. 그런데 골목을 지나 언덕을 오르고 판자집이 즐비한 산동네에 이르자 나는 비로소 왜 영숙이가 집에 가자는데 삐쭉거렸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영숙이는 초라한 자신의 집을 내게 보여주는 게 창피했던 것이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를 돌려보고자 나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사적으로 말을 걸었다. “영숙이는 대학은 어디를 생각하고 있니?” 영숙이는 내 말을 못 들었는지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다시 물어볼 까 하는 찰나에 그녀가 말했다. “사실은 대학은 포기했어요. 집안 형편 상…….여름방학 때부터 학교 취업반에 나갈 거에요.” 나는 영숙이가 사립은 아니지만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꽤 이름 있는 여자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학교에서도 성적이 우수한 편인 걸 잘 알고 있었는데 대학을 포기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그녀는 학원에서 몇 명 안 되는 입시준비반 학생들과 함께 입시공부를 하지 않았던가? 나는 순간 영숙이를 포함한 학원생들에게 대학 진학에의 열망을 고취시키고자, 대학 생활의 낭만(사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음에도 불구하고)에 대해서 거짓말을 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뭐라고 말을 할까 머뭇거리는 순간 영숙이가 나를 돌아보며 정색을 하고 말했다.

   “제가 대학 포기했다는 거 아빠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아빠도 몰라요.”

   원장 선생님은 다행히 과로에 따른 감기 몸살 정도로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직접 찾아온 것에 매우 미안해 하셨고 그 보다도 초라한 행색을 내게 보인 것에 조금 자존심이 상하신 듯, 바쁘신데 왜 선생님을 여기까지 끌고 왔냐고 영숙이만 나무라셨다. 그 어색한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려고 엉겁결에 사실은 선생님과 한 잔 생각이 나서 왔는데 오늘 선생님을 보니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라고 말했는데 다행히 이 말이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원장 선생님은 그제서야 겸연쩍게 웃으며 나는 괜찮은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그해 여름은 내 기억엔 유난히 더웠다. 아마 거리 곳곳에 총검을 들고 늘어선 군인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심한 매미는 학생들이 떠난 캠퍼스에서 신나게 여름을 노래하였고, 계엄령 하에서도 철없는 청춘은 정신없이 바빴다. 나는 주중에는 열심히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주말이면 새로 만난 여자 친구와 데이트하기에 바빴다. 소주도 열심히 마셨다. 주중에는 학원이 끝나고 원장 선생님과 함께 마셨고, 주말에는 여자 친구와 또는 친구들과 함께 마셨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소주를 마실 때 꼭 안주빨을 세운다는 점이다. 친구들도 달라진 내 음주태도를 좋아했다. 술만 취하면 나오는 주사가 더 이상 없었으니까. 이 시절 나는 어쩌면 시절과 어울리지 않게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한 여름 잠깐 스치는 바람 같은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해 7월 말 계엄당국이 느닷없이 과외를 전면 금지시켜 학원은 폐쇄되었고, 나는 여자 친구로부터 갑작스럽게 그만 만나자는 편지를 받았다. 졸지에 나는 주 중에도, 주말에도 갈 곳이 없어져 한동안 집안에서 빈둥거렸다. 그러나 한 가지 변함없는 것은 소주는 그래도 줄기차게 마셨다는 점이다.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혼자 소주를 마실 때도 돈이 있을 때는 포장마차에 가서 꼼장어 안주라도 시켜서 먹거나, 돈이 없을 때는 냉장고를 뒤져 두부라도 꺼내 신 김치에 싸서 먹을지언정 절대 깡소주를 마시지 않았다는 점이다. 드디어 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다. 휴교령이 해제되어 나는 다시 학교에 나가 친구들을 만났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두운 기억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친구들과 어울려 부지런히 소주를 마셨다. 그렇게 내 인생에 엉망진창이었던 80년대도 갔다. 그리고 젊음도 함께 갔다. 그 후로도 세월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학원에 한 번도 찾아간 적이 없다. 젊음이란 돌이켜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잘 이해가 안 되는 무모한 열정과 같다. 항상 세월이 흐른 후 그 무모한 열정들에 사로 잡혀 정말 소중한 인연들이 속절없이 스쳐 지나갔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다.

   아주 가끔 그 시절 원장 선생님의 말씀이 귓전을 울릴 때가 있다.

   “황 선생, 소주 마실 때 꼭 안주랑 같이 먹어요. 내 술을 마신지 40여년이 되었는데, 그때 나랑 술 함께 마신 친구들 중에서 안주 잘 안 먹고 깡소주 마신 친구들은 지금 다 죽었어요.”

  내가 매일 소주를 마시고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원장 선생님 덕분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내 생명의 은인 같은 분이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대학을 포기했다는 걸 아빠에게 이야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던 영숙이도 가끔 생각난다. 그런데 한 가지 내가 정말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당시 영숙이가 불과 나랑 2~3 살 차이에 불과했다는 걸 그땐 왜 몰랐을까 하는 점이다.

 

 

 

 

 

 

 

 
 
inves&red (2018.11.10 14:01)  신고
windandi님!
오늘 저녁 소주 한잔 하실래요?
토요미에서....^^레드^^
windandi (2018.11.12 08:15)  신고
아~안타깝습니다. 토욜 저녁 한 달전부터 약속된 중요한 모임이 있어서 못 갔습니다. 연말에는 참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역시 좋은 것은 불현듯 한 잔 할래요? 해서 마시는 게 좋겠죠. 한 잔 하기로 하죠.^^
misty_blue (2018.11.13 01:29)  신고
windandi 님~
오랫만에 닉네임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바로 크릭하고 단숨에 글을 읽었습니다
..
우리들의 그 시대엔 참 자유를 갈망하고 반항도 많이 하고
소주와 막걸리를 많이도 마셨죠..대학로마다 서로들 엉겨
소리 지르며 우리들의 그리고 우리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던
그때의 열정은 다 어디로 갔는지..
전 소주를 잘 아니 거의 마시지는 않치만 친구들과 선배들이
무던히도 마셔대던 그 자리엔 꼭!! 끼어(ㅎ~) 있었죠
지금도 아니 앞으로도 아마도 영원히 그때를 그리워 합니다
그리고 그리워 할것입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조국애를 부르짖던 젊음과 열정을..
windandi (2018.11.13 07:42)  신고
그래요. 젊은 날, 힘들었던 시대상황 속에서 방황했고...어서 빨리 젊음이 끝났으면 좋겠다고...다시는 그 시절로 가고 싶지 않았는데 글을 쓰면 붓끝은 꼭 그 시절로 돌아가요.
타임 머신 타고 그 시절로 돌아가서 브루님이랑 시국에 관해 열띤 토론을 하며 막걸리 한 잔 하고 싶습니다.^^
misty_blue (2018.11.15 23:51)  신고
windandi 님~
정말 타임머신타고 그 시절로 가고 싶어지네요
그때 그걸 했더라면 하고 후회했던 것들 다 하고싶어요~~
젊은과 열정 ..그리고 사랑을 다시 열심히 하고싶고
공부도 정말 열심히 하고싶고..windandi 님과 막걸리 소주 마시며
시국과 문학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하며 토론하고싶네요
정말 ...그랬음 좋겠네요
즐거웠던 날보다 힘들고 방황했던 시절이 그리운건?
미련과 아쉬움이 남어서이겠죠..그래도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같은 시대에 있었음에 행복하고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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