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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에세이
작성자  kaac 작성일  2018.11.22 17:37 조회수 141 추천 0
제목
 수상한섬  
 
1. 섬인가 산인가

이곳은 무엇인가 느낌이 수상하다. 4월의 울릉도에 첫발을 디딘 느낌은 그랬다. 따지고 보면 수상쩍다는 눈치는 당연한 것이다. 울릉도는 섬島인가 아니면 산山인가. 울릉도는 섬이면서 동시에 산이었다. 아니, 산이면서 섬이 된다. 이 섬은 탄생부터 이상했다. 까마득한 옛날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더 오래 된 어느 날 일 것이다. 거칠 것 없는 망망대해 동해바다 가운데쯤에서, 갑자기 바다를 박차고 나온 산이 섬이 되었다. 

아득한 바다 가운데쯤에서 급히 솟구쳐 오르다 보니 바닷물에 닿은 울릉도의 허리는 온통 절벽이다. 허리라... 그 말도 맞는 것이 이 섬산의 최고봉인 984미터는 성인봉이 물 위쪽으로 튀어나온 높이를 말한다. 그러나 시퍼런 바다 밑으로 갈아 앉아 있는 허리 아래가, 바다 바닥에서 보면 더 높다. 그러므로 바다 속에서 보나 물 위에서 보나 울릉도는 산이 된다. 
지구별 땅 속 깊은 곳에 끓고 있는 용암이, 그 주체 할 수 없는 힘으로 터트려 버린 화산섬 혹은 산.

그렇게 원래 없었던 산이 바다 가운데 생겼다. 새끼도 하나 낳아 독도로 이름 붙였다. 한없이 시간이 흘렀다. 용암이 식고 나니 사람만 빼 놓고 해류에 밀린 온갖 동, 식물들이 청정 바람 속에 자라기 시작했다. 심해선 밖, 점 하나 같은 이 산은 그렇게 스스로 울창해져 갔고 신비로워 졌다. 

그러나 땅이라면 한 맻힌 우리 조상의 욕심이 어디 이런 곳을 그냥 둘까. 사람들이 이주하고 나라를 세웠다. 아예 독립국가를 세웠다. 우산국于山國이라는 나라다. 나라 이전에도 이름은 있었다. 우릉도芋陵島 혹은 무릉武陵이라는 이름이다. 갈 수 없는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따온 이름을 이 섬에 붙였던 것을 볼 때, 이 섬은 이미 예사스러운 산이 아니었다. 

그랬다. 나는 울릉도 섬을 찾아 온 것이 아니라 산을 찾아 모진 풍파 뚫고 배 멀미에 시달리며 이곳에 온 것이다. 여기 온 목적은 산꼭대기를 오르기 위해서다. 성스러운 봉우리라는 산의 꼭지점은 그래서 성인봉聖人峰이다. 예수나 석가 같은 분들... 붙일 성인을 만나는 통과의례는 가혹했다. 하긴 음풍농월 吟風弄月을 즐기는 미련한 중생이 만나자고 한들 쉽게 만나 줄 성인이 있겠는가. 

폭풍주의보로 출발부터 삐걱거리더니 오후 두 시가 되어서야 배가 난바다로 향했다. 날씨가 좋아질 것이며 폭풍주의보가 해제 될 것이라는 과학적 기상통보는 틀렸다. 오히려 조상의 지혜가 담긴 절기節氣가 정확했다. 오늘은 당연히 비가와야 하고 그래서 오늘의 이름이 곡우穀雨다. 봄비가 내려 백곡百穀이 윤택해 진다는 곡우가 지나면 이 봄이 끝나고 여름立夏이 시작 될 것이다.   

그러므로 당연히 비가 오락가락해야 했고, 그 만큼 울릉도 가는 길도 수상했다. 항구 찾아가는 길의 벚꽃은 가는 봄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하염없이 흩날리고, 대신 붉은 영산홍 꽃망울에 이슬 같은 물방울이 송이송이 맻혀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여객부두에는 위풍당당한 썬플라워호가 모진 바람 속에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개나리 하얀 벚꽃의 시절은 속절없이 가고 이제 여름의 선플라워 즉, 해바라기 계절이 온다는 말이겠다. 

물론 울릉도 기행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사계절 울릉도를 겪어 봤다. 그러나 이번 기행은 오래도록 기억 될 것이다. 등푸른 젊은 시절, 뽕짝 동백아가씨를 비아냥 섞인 건방 속에 들었다면 지금은 그 영탄조 가사가 절절하게 닿는 까닭이다. 과제물로 나왔기에 하품을 참아 가며 읽었던 장그르니에의 섬이 지금은 보석처럼 생각 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순전히 나이 탓이다. 그러나 한세월 살았다는 것으로 이번 울릉도 기행을 기억한다는 말은 아니다. 처절하리만큼 속내를 까발렸던 아름다운 음악들이 있었다. 물론 그 음악이 원초적 배 멀미에 토해 내는 집단 구토 신음이라도 그렇다. 

2. 속 깊은 합창

들어라. 지금부터 슬프고도 아름답고 기묘하면서도 괴괴한 울릉 괴담 그 이야기를 할 것이다. 

출발 할 때 기대에 찬 눈빛과 대중 앞에 뽐내던 현란한 옷차림과 화장, 젊잖음과 여유는 대체 모두 어디로 간 걸까?. 닭장 속에서 닭들이 집단으로 꼬꼬댁거리는 상상은 가지만, 오리가 집단으로 화음 맞추듯 꽥꽥거리는 걸 그려 낼 수 있다면, 딱- 그것이 830명이 탄 썬플라워 실내다. 오전 열시에 떠난다는 배가 폭풍에 묶여 오후 두시에 떠난 것까지는 좋았다. 초록은 동색이라, 해외로 간다는 기대로 그 많은 인파중 한 명도 얼굴을 찡그린 사람이 없었다.

방파제가 파도를 막고 있는 내항을 미끄러지듯 출항했을, 때 배가 안 뜨면 어쩌나 하는 불안은 이미 흘러가 버린 과거사가 되었다. 여기 저기 바닥의 카핏 위에서 술판이 벌어지고, 삼삼오오 화투를 치며 처음 보는 사람들...도 미소로 인사하는 등 여유 만만했었다. 여행은 영혼을 살찌운다는 금언은 차치 하더라도, 이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세상이라면 참 살만한 세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딱- 30분간이었다. 왁작지껄이 조용해진 것은 배가 방파제를 지나 난바다로 나갔을 때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실내가 조용해졌다.

그 정적을 뚫고 최초의 오리소리, 아니 으웩 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신호였다. 그 첫울음 소리가 대합창단의 장엄하고 속 깊은 합창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이었다. 여객선 3층 창 밖으로 주르르 파도가 넘어 다녔다. 롤링 핏칭... 말 그대로 썬플라워호는 트위스트를 추기 시작했다. 거대한 파도 꼭대기에 배가 올라가면 곤두박질 칠 때는 스쿠류를 멈추었다. 

그 출력, 탄력 그대로 내리 꽂히면 잠수함이 될 까봐 노련한 선장이 운전을 하는 가 보았다. 오리 합창 속에서도 그 엔진 소리를 감지한 사람이 그 사실을 곁 오리... 일러 준다. 엔진이 꺼졌어! 폭풍 속 항해가 불안하다는 증거였다. 그 말을 듣는 사람이 또 오리 독창을 한다.

이젠 여유고, 체면이고, 화장발이고, 남자고, 여자, 어른이고, 애도, 도덕도, 눈치도 없었다. 그런 점에서는 아주 공평했다. 가능한 바닥에 붙으려 멀쩡한 의자 놔두고 길게 널부러진 것은 속 울릉도라는 이름의 산 교육이었다. 울렁거리며 가야 나타나는 게 울릉도라는 말이 아닌가. 울릉도 트위스트를 추는 파도에 배는 파트너였고, 그 흔들림에 몸을 맞춰 애써 춤추지 않으면 다른 길이 있을까. 오리합창 곁 드리며.

아무래도 청소가 깨끗이 된 카핏이 수상했다. 과거에 얼마나 많은 오리들이 눈앞의 합창처럼 토사물을 쏟아 내었을까. 그러나 그런 잔머리 분석이 맞는다 하더라도 본능 적으로 바닥에 붙어야 했다. 오리 떼는 손에 손마다 토사물 봉투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화장실은 이미 상황 끝나 버린 지 오래였다. 많기도 해라... 올린 머리에 화사하게 웃던 어느 투피스 고운 여자는 빵빵하게 채워진 봉투를 움켜 쥔 채 아예 복도에 누워 버렸다. 승무원이 애걸 복걸 통로를 비워 달래도 돌아오는 답은 오리 독창일 뿐이었다. 방송이 나왔다. 오리들이 합창을 멈추었다. 파도가 높아 되돌아간다라는 복음이 전해지도록. 아니면 이 아수라판에서도 시간이 꽤 흘렀으니 울릉도 도착을 알리는 희소식은 아닐까. 3시간이면 간다는 쾌속선이니까. 

앗! 혹시 구명정을 입어라라는 최후 통첩일지도 몰라. 그러나 방송이 끝나자 오리들은 더욱 힘찬 합창으로 발악을 했다.
파도가 높아 제 속력을 못 내므로 연안을 따라 항해하는 중이고, 예정시간을 넘겨 오후 7시쯤에 울릉도에 도착 한다는 말이었다. 운행 시간 3시간 정도면, 죽지 않고 땅을 밟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가 우르릉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오리 음악회 시간이 배로 늘어 난 것이다. 같이 해외로 튀자고 꼬신 인간... 저주를 퍼 붙고 이 파도에 배를 띄운 해운회사 욕을 해도 울릉도 트위스트는 멈출 줄 몰랐다. 
그때 왜 나는 뜬 금 없이 피논의 돼지 생각이 났을까. 우리는 왜, 무엇으로 사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의 느낌이 그런 생각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때였다. 울릉 괴담이 나온 것은. 
늦어진 배편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보내자고 옥산서원을 갔었다. 초록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실적 묘사를 한 수채화 속을 거닐며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서원에서는 운 좋게 사학자 한 명을 만나 품위 있는 문답을 하고 옥산서원의 히스토리를 들었다. 

국보 40호 정혜사지 13층 석탑과 독락당을 거쳐 출출한 배를 채울 겸 포항제철이 자랑하는 영일대 중국관으로 갔다. 힐튼호텔에서 위탁받아 경영한다는 중국관 음식은 깔끔했다. 반주로 곁드린 고량주에, 속은 창 밖 붉은 영산홍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때까지가 우아한 선남 선녀의 수직 신분 상승이었다.    

식당 매니저... 배가 뜨는 가를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예정대로 뜬다는 거였다. 그래서 배를 탄 것이고 오리 합창이 시작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아직 여유가 있었는지 한 인간이 괴담을 한다. 

"오바이트 할 때 이를 악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신분 상승의 구체적 성과물인 특급호텔 고급음식이 도로 나오는 것을 방지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빨 사이로 국물만 토해 내고 건더기는 다시 먹어야 한다. 그래야 밥값 내준 도반... 미안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그때까지 겨우 참던 사람이 입 큰오리가 되었다. 물론 그 괴담을 한 인간도 얼마 못가 결국 오리 팀에 끼었지만. 올라가면 추락한다는 말대로 급격한 신분 하락이었다. 

3. 세 가지 바다

폭풍이 지난 땅에도 샘은 솟는다는 말이 있듯, 잠수함이 되지 않은 썬플라워호는 우리를 7시쯤 울릉도 도동항에 내려 주었다. 울릉산의 허리, 도동 땅을 밟을 때의 느낌은 아주 각별했다. 전등불이 환한 주차장엔 산악 도반인 토박이 후배가 봉고를 가지고 마중 나와 있었다. 그는 바다가 고요하면 절대 배 멀미는 없다고 했다. 독도 박물관 학예사가 토요일임에도 5시까지 기다리다 지쳐 돌아갔다고 말한다. 

내 죄가 아니다. 독한 통과 의례를 요구한 하늘 탓이다. 울릉산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다. 마음이 설레이는 탓인지 배 멀미가 거짓말처럼 없어진 것인지 부지런하게도 아침 5시 30분에 깨운다. 착한 비님은 그때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문밖을 나서니 공기가 더 없이 청량하다. 본격적으로 산행에 나섰다. 가파른 대원사 코스로 입산을 했다. 문경에서 온 산들모임의 많은 사람들이 앞서고 있었다.  

좋은 글을 읽은 기억이 났고 그가 문경사람 임을 기억해 냈다. 다리 쉼을 할 때 그에 대하여 물어 보았더니 큰 배낭을 메고 있는 사람이 그라고 했다. 서로 글로만 인사를 한 처지지만 산이라는 화두 하나로도 반가운 해후였다. 다리 쉼을 할 때 그가 따라준 마가목주 한잔의 향기가 싱그롭다. 

등산로에는 동백꽃이 제철이었고 지천이었다. 제 몴을 다한 꽃은 대궁 채 떨어져 붉은 혈흔 같이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봉오리도 많다. 한철 살다 갈 세상을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실눈 뜨고 살며시 내다보는 모습이 보기 좋다. 그 눈뜸과 낙화는 한동안 계속 될 것이다. 꽃 그늘에서 보이는 신록이 청정하다. 정말 초록은 꽃보다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그 자체가 생명이라는 생각을 한다. 

고도를 올리며 언 듯 바다가 보인다. 어제의 광란은 본 면목이 아니라는 듯 고요한 바다다. 비님이 오지 않고 날씨가 좋으면 일망무제 질펀한 바다가 보일 터였다. 해발 500미터쯤 오르니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원래 눈이 많은 고장이지만 올 겨울엔 유난히 눈이 많았다고 했다. 그 눈이 녹지 않아 흡사 히말라야 빙하처럼 길게 드리워져 있다. 작은 크레바스도 있다.

눈 아래엔 연초록 세상이더니 이곳은 설국이다. 봄과 겨울이 공존하는 세상이다. 그러나 오는 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눈 사이로 새순이 움트고 있다. 초록이 꽃보다 이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나는 꽃을 여성의 생식기로 본다. 수태를 위하여 연지 곤지 찍고, 꿀벌이며 나비들을 유혹하는 꽃의 발칙한 도발. 깊숙이 꿀을 숨겨 놓고 사냥꾼들... 최선의 노력을 끌어내는 어미로서의 꽃이다.  
비가 오락가락 하는데도 부지런한 벌 한 마리가 동백꽃을 기웃거린다.

벌은 다른 말로 벌래다. 벌래 만도 못한 인간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아니, 벌래 만도 못한 것이 인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기원 후 3세기에 알렉산드리아에서 살았던 그리스의 수학자 파푸스라는 사람이 그런 인간이다. 그가 쓴 수학집성數學集成)이라는 글에 꿀벌의 집에 관한 이야기 라는 대목이 있다. 

"꿀벌은 천국으로부터 꿀이라는 신들의 음식 일부를 얻어서 인류... 날라다 준다. 이처럼 귀한 꿀을  저장하기에 알맞은 집을 벌들은 만들었다. 이 그릇은 불순물이 끼지 못하도록, 서로 빈틈없이 연이어 있는 형태를 지녀야 한다. 그런데 동일한 점을 둘러싼 공간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 도형은 정삼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정육각형의 세 가지 밖에는 없다. 꿀벌들은 본능적으로 최대의 각(꼭지점)을 가진 정육각형을 택했지만, 이 형태는 다른 둘보다 훨씬 많은 꿀을 채울 수가 있다."

벌이 꿀을 저장하면서 살아가는 벌집을 살펴보면 정육각형이다. 왜 하필이면 정육각형의 도형을 선택하였을까?.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라는 수사를 뒤로하더라도 벌집 흉내를 낸 것이 첨단 기술의 집합인 비행기 날개 제조법이다. 그만큼 구조학적으로 안전하고 표면적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 한 발 더 나가 공동체 생활을 하는 유기적, 사회적 형태를 엿 볼 수도 있다. 사람보다 더 오래 전 생겨 난 이런 곤충들을 벌래라고 무시 할 것인가.

비 긋기를 기다리는 동백꽃 그늘에서 문득 한 생각이 떠오른다. 
그렇게 사회적 생활을 하는 지혜로운 벌보다 더 지혜로운 것이 식물이다. 꽃이다. 바삐 날개 짓을 하느라 에너지를 소비하는 곤충을, 제 멋대로 부려먹는 식물은 또 뭔가. 한자리에 붙박이처럼 서 있으면서도 온갖 곤충들을 이용해 수태를 하는 꽃. 혹은 나무들. 식물이 동물을 부리는 놀라운 사실을 새삼 본다.

마치 사람이 근친 결혼을 회피하는 것처럼 꽃들도 자신의 꽃가루로 수정되는 것을 거부한다. 미국 코넬 대학의 June Nasrallah 박사의 말이다. 치열한 생존 경쟁에 불리한 열성유전자가 짝지어질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동물이든 식물이든 근친교배는 유해한 것이다. 그러므로 향기로, 색으로, 꿀로 유혹하는 방법을 써서 한자리에 있으면서 근친교배를 피하는 꽃의 슬기.

꽃이 한철 피어 바라는 것은 수태受胎다. 임신이 되면 미련 없이 아름다운 꽃잎을 떨군다. 화무십일홍 花無十日紅의 비밀이다. 그 결과치가 열매고 새끼다. 끝없이 자기 복제를 하는 사실적 윤회다. 누가 감히 식물을 열등하다고 말하는가. 어느 현자 있어 식물은 감성이 없고,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가.

어자피 산행은 일행이 많거나 적거나 홀로다. 손잡고 걸어가기에는 가파른 길이기에 혼자다. 그런 산은 생각 할 시간을 준다. 그런 쓸데없는 상념 속에 다리품을 판다. 눈 깊은 길을 헤쳐 가다 보니 끝이 있었고 성인봉 정상에 이르렀다. 갑자기 정상을 오르겠다는 생각이 없어진다. 꼭 정상에 올라야 된다는 절박한 이유가 없는 바에 사, 그냥 정상을 바라 봐도 좋을 듯 싶다. 일행들이 빨리 올라와 증명사진을 찍자고 재촉한다. 애써 사양했다. 성인의 정수리를 어찌 감히 중생이 밟느냐고 너스레를 떨며 손사래를 쳤다. 정작 속셈은 다른데 있었다. 

다음에 다시 오리라. 다시 한번 배 멀미에 시달리더라도 한 사흘 죽치며 생각을 다듬을 것이다. 정상을 오르면 다시 온다는 스스로의 약속이 희석 될 소지가 많다. 정상을 미련처럼 남겨 둘 이유가 거기 있다.
가파른 울릉산이 갖기엔 거짓말 같은 너른 나리분지로 내려 온 후, 토종 산나물에 동동주로 하산주를 마셨다. 나리분지는 여린 초록빛 세상이었다. 알 수 없는 세상 속이었다. 자꾸 마셔도 그래도 알 수 없는 갈증은 풀리지 않는다. 

돌아오는 뱃길은 고요한 바다 덕에 멀미도 없었다. 배 안에서 문경 땅 악우岳友 김규천씨와 마주 앉았다. 이미 그는 반쯤 취한 상태였다. 그 역시 채워도 목마른 그 무엇 때문이었을까. 씻지도 않은 울릉도 산나물을 안주로 그와 맑은 소주를 나눴다.

4월, 울릉산은 세 가지 바다가 있다. 
성인봉이 허리를 담고 시시각각, 초록으로, 연두빛으로, 급기야 검푸름으로 변하는 질펀한 동해바다가 첫 번째다. 또 하나는 경외 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역사役事를 보고, 더듬으며 한 생각에 빠지는 상념의 바다이다. 마지막은 무슨 바다일까. 윤회를 거듭했고 하고 있는,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앙증맞은 연초록 빛 수상한 숲바다가 그것이다.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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