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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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8.12.17 17:27 조회수 148 추천 0
제목
 말하는 당나귀  
 
말하는 당나귀 
성경 : 민수기 22장 21-34절. 

사람은 귀하게 지어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말합니다. 
영장이라는 말은 영적으로 어른이라는 말입니다. 
다른 어떤 동물보다도 영적으로 뛰어난 존재라는 것이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모든 사물을 육신의 눈으로만 볼 것이 아니고, 
때로는 신령한 눈을 열어서, 
겉 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속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겉에 나타나는 것만을 보아 가지고는, 
사물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을 가리켜서 통찰력이라고 합니다. 
사물을 제대로 보고 판단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때로 사람들이 한갖 미물인 짐승만도 못하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올바로 판단하지 못할 때, 듣게되는 말입니다. 
본문 말씀 가운데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발람이라고 하는 사람은, 
메소포타미아 지방 브돌이라고 하는 곳에 사는 점쟁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모압 왕 발락의 요청을 받았습니다. 

발락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 맞은편 모압 평지에 진을 치고 있는 것을 보고, 
번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의 힘으로서는 그들을 막을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당대에 유명한 복술가인 발람을 청해다가, 
이스라엘을 저주할 궁리를 한 것입니다(6절).

이스라엘이 어떤 민족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시고 하나님이 친히 인도하고 계시는 민족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한낱 점쟁이의 힘을 빌려서 물리쳐 보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술로 막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술을 쓰게 되면 오히려 자기가 그 사술에 묶이게 될 뿐입니다. 

모압 왕이 보낸 많은 예물을 가지고 찾아온 장로들을 자기 집에 묵게 한 발람은, 
그 밤에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결과는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모압 왕이 보낸 자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지도 말라고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틑날 아침에 모압왕 발락이 보낸 사신들을 돌려 보냈습니다. 

모압 왕은 두 번째 또 사람들을 발람에게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더 많은 예물을 함께 보냈습니다. 그리고 제안을 했습니다.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기만 해 주면, 
당신을 아주 존귀한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당신의 청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 줄 것입니다’(17절).  
발람은 다시 사신들을 자기 집에 묵게 하고서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 하실는지 알아 보리라”(19절). 
알아보기는 뭣을 또 알아본다는 말입니까? 

한 번 하나님의 뜻을 알았으면 그대로 할 것이지, 
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까? 
성경은 발람이 재물에 눈이 어두어진 거짓 선지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여,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후2:15).  
하나님의 뜻을 모름으로 잘못된 길로 가는 일이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굽은 길로 가는 일이 있습니다. 
십중 팔구는 욕심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탐심이 생기면 이미 그는 사단의 유혹에 꼬리를 잡히게 된 것입니다. 

이틑날 아침, 발람은 나귀를 타고 모압을 향해 길을 떠났습니다. 
일단 가고 보자는 것입니다. 아직 미련을 털지 못한 것입니다. 
모압 왕의 제안에 귀가 솔깃해 진 것입니다. 
혹 하나님이 조금만 틈을 주시면 대충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발락의 예물을 받을 생각입니다. 
여러분, 이러한 유혹이 여러분에게는 있지 않습니까? 
믿는 자라 할지라도 달콤한 유혹에는 마음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세상과 조금만 타협하면 쉽게 살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런 생각이 바로 여러분으로 하여금 발람의 길을 가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사욕을 위해 세상과 타협하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이러한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합니다. 
어떻게 이 유혹을 이겨 나갈 것입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5:16). 
성령께서 분명히 내 마음속에 말씀해 주시는 것이 있는데, 
욕심이 앞서서 그 말씀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육체의 욕심대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발람이 그랬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욕심을 따라 행하던 발람의 가는 길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타고 있는 나귀가 갑자기 가던 길을 벗어나서, 
길 옆에 있는 밭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발람은 화가 나서 나귀를 째찍으로 때렸습니다. 

나귀가 이번에는 포도원으로 가는 좁은 길로 들어가서, 
발람의 발이 담벽에 부딧쳐 발을 다쳤습니다. 
발람은 또 채찍으로 나귀를 때렸습니다. 
나귀는 이제 막다른 골목으로 들어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리고 있습니다. 
발람은 노해서,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습니다. 
이 때에 기막힌 사건이 생겼습니다. 

당나귀가 발람에게 당돌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였기에 나를 이같이 세 번을 때리느냐? 
내가 오늘날까지 네게 이렇게 하는 것을 보았느냐?’(28-30절). 무슨 말입니까? 
내가 평생 너를 순종하고 섬겼는데, 
오늘 이런 일이 있는 것은, 
기필코 까닭이 있음을 왜 깨닫지 못하는냐는 꾸지람입니다. 
짐승이 사람을 꾸짓고 있습니다. 발람의 우매함을 나귀가 깨우치는 말입니다.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바로 행하지 않을 때에, 
하나님은 나귀를 통해서 발람을 꾸짓고 계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앞길에 생각지 않았던 장애물이 있습니까? 
이상하게 일이 비틀어 집니까? 
이유도 없는데 앞길이 꽉 막히는 일이 생깁니까? 
멈춰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발람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신중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귀의 책망을 받고난 발람은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빼어 들고 나귀 앞에 서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제서야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발람이 모압으로 가지 않는 것임을 다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은 엎드려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어찌하여 네 나귀를 이같이 세 번 때렸느냐?  
네 길이 내 앞에 패역함으로 내가 너를 막으려고 왔더니, 
나귀가 나를 보고 세 번을 돌이켜 나를 피하였느니라.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32-33절). 무엇입니까? 

때로는 실패가, 좌절이, 절망이 오히려 발람의 나귀가 되어서, 
여러분을 살게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실패와 좌절과 절망을 통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을 떠나 패역한 길로 가는 것을 막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으로 하여금 패역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시는 것입니다. 
‘패역’이란 말은 ‘거꾸로 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패역입니다. 

발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니, 발람이 길을 막고 서있는 하나님의 사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당신이 나를 막으려고 길에 서신 줄을 내가 알지 못하였나이다.  
당신이 이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면 나는 돌아가겠나이다”(34절). 

돌아설 때는 단호하게 돌아서야 합니다. 
조금도 미련을 두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몰랐을 때에는 할 수 없다 하더라도, 알았으면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거기에 살 길이 있습니다. 
거기에 새로운 소망이 자리하고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를 반가이 맞아 주십니다. 
그 때가 언제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대로, 찾을 수 있을 때에 속히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6-7).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면 즉시 돌아서시기 바랍니다. 
사람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장로교 요리문답 제 1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다른 곳에 삶의 목적을 두려 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않으려 합니다. 
비록 알고는 있으나 하나님을 즐거워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만으로는 안됩니다. 
아무리 많이 알고 있어도, 
그것을 내게 적용하고 활용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도 믿고 떠느니라”(약2:19).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아는 것으로 그치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 말씀으로 즐거움을 삼아야 합니다. 그 말씀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 
말씀 밖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것은 발람의 모습입니다. 
떠나야 되는 것을 알면서도 떠나지 아니하려는 발람의 욕심이 있는 까닭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내 생각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말에 무게를 두는 것도 아닙니다. 세상 철학으로 사는 것도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가장 권위를 두고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롬8:9).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거역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할 바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산다고 말하면서 세상 욕심을 따라가는 것은, 
발람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마6:24)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일과 육체의 일을 함께 이룰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물을 바로 보려면 눈이 밝아져야 합니다. 통찰력이 있어야 합니다. 
통찰력은 눈앞의 일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이 통찰력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따르고 가까이 할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교훈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눈을 밝게 한다’(시19:8)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이 통찰력이 없으면 나귀도 볼 수 있는 것을 사람은 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신령한 눈과 신령한 귀를 열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보아도 알 수 없으며,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발람의 어그러진 길을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만물의 영장답게 신령한 눈을 바로 뜨고, 통찰력을 가지고,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바로 보아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세상이 가고있는 패역한 길로 가지 말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택한 백성을 옳은 길로 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나귀를 시켜서라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이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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