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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8.12.17 17:37 조회수 180 추천 0
제목
 비느하스의 질투   
 
민수기 25장 10-13절 

1940년 이후에 태어난 한국 사람들에게는, 
해방의 기쁨이라는 것이 그렇게 절실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해방을 그리워 할만큼 속박을 받아 본 일도 없고,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압박을 받아 본 일도 없기 때문입니다. 
해방의 기쁨은 착취를 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며, 
속박을 받아 본 사람만이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를 경험해 본 사람이 좌절을 딛고 일어섰을 때, 
그래서 다시 성공 했을 때 느끼는 감격은 참으로 클 것입니다. 
어려움이라고는 전혀 경험하지 못하고 순풍에 돗단 듯이 성공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그 성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잘 깨닫지 못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오늘의 삶가운데 있어서 여러분이 당하는 고난은,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값진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고생을 해 본 사람은 고생을 견디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생을 모르고 자란 사람은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견디지 못하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말씀했습니다. 
오늘의 고생이 내일의 행복의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용기를 잃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대한민국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침략을 당하고, 
근 사십년간 착취와 굴욕을 당하다가,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오랫동안 잃었던 자유를 되찾은 것입니다. 

그 때의 그 감격을, 그 시대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잃어버리고 빼았겼던 자유를 되찿기 위해서, 
수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려야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사람들은 조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동포를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의 피로 다시 찾은 자유입니다. 피 값을 지불하고 얻은 해방입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자유와 해방을 얻은 우리 조국의 오늘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진정 자유를 누립니까? 참으로 해방되었습니까? 
한쪽에서는 광복절 기념 행사를 하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화염병이 날고 있습니다. 
한 쪽에서는 평화의 기도를 드리고있는데, 다른 한 쪽에서는 전쟁의 공포가 있고, 
굶주림이 있고, 천재 지변으로 인한 고난이 있습니다. 
어디에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있다는 말입니까? 

이세상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지 못합니다. 
이 세상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해방을 맛볼 수 있게 하지 못합니다. 
정부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는 것 같아도 사실은 정부를 믿을 것이 못됩니다. 
미국의 공화당 대통령 후보인 Bob Dole은  그의 대통령 후보 출마 연설에서, 
그가 어린 시절에 그의 부모가 Bob Dole에게, 
‘하나님을 믿어야 된다. 정부를 믿어서는 않된다.  
그리고 켤코 이 두가지를 혼동해서는 않된다’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어디에 진정한 자유와 해방이 있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8:36).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요14:6). 진리를 알아야 참으로 자유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진리를 아는 것이요 그 것이 참으로 자유하게 되는 길입니다. 
진정한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죄에서의 자유입니다. 사망에서의 자유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값주고 얻은 자유입니다. 

예수께서는 ‘억눅린 자에게 자유함’(눅4:18)을 주시기 위해서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여러분의 죄를 도말(塗抹)해 주시고,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으시는 여러분은 이미 이 자유를 소유한 것입니다. 
이 자유를 풍성히 누리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사실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참 자유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자유한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믿음의 눈을 크게 뜨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 지방에 있을 때에, 모압 여자들과 음행에 빠졌습니다. 
처음에는 모압 여자들이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가지고 유혹했습니다. 
음식이나 같이 나누어 먹자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빠져 들어가서 그 여인들과 함께 우상에 절까지 하게 되고, 
드디어는 그 여인들과 음행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시작됩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가까이 하다 보면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한 번, ‘우상에게 절하지 말라’ 하셨으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정도는 하나님이 양해해 주시겠지’ 하고, 
자기 나름대로 울타리를 정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음식 한 번 얻어먹은 것이 그만 이렇게 발전되고 만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으로 어려운 지경에 빠졌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입어서, 
염병으로 이만 사천명이 죽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하나님의 진노를 그치게 하는 일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비느하스라는 사람입니다. 

우상을 따라가고, 음행에 빠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입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염병을 앓고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회막 문앞에 몰려와서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며 울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므리라고 하는 청년이, 
그런 것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이 회중이 보는 가운데,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자기 장막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침 제사장 아론의 증손자인 비느하스가 이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분노가 치솟아, 창을 들고 따라 들어가서 두 사람을 창으로 찔러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민 25:11).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출20:5).  
그래서 자기의 백성들이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래 서 말씀하셨습니다.
‘우상들을 만들지 말라. 그리고 그것들에게 절하지도 말라’(출20:4-5).  
‘질투한다’는 말은 인간의 욕심에 따라 시샘하고 투기한다는 뜻도 있지만, 
사랑하는 이를 향한 열심, 또는 죄에 대한 분노 등을 의미하기도 하는 말입니다. 

비느하스가 질투한 것은 자기의 유익을 위한 질투가 아니었습니다. 죄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고 있는데, 
더 이상 그 죄를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죄를 제거해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죄입니다. 
이 죄를 제거해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여리고 성을 함락하고, 
다음에 아이 성을 처들어 갔다가 실패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아간이라는 사람이 욕심에 눈이 어두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전리품을 감춘데 있었습니다. 
아간을 제거하고야 그들은 아이 성을 쳐서 이길 수 있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위한 질투가 강했던 사랍입니다.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골리앗이 하나님을 능욕하는 것을 보고도, 
그 위세가 무서워서 아무도 감히 그를 대적해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때에 소년 다윗이 담대하게 나섰습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골리앗에 대해 말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 올랐습니다. 
‘너는 칼과 창을 의지하고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쉽게 말하자면, 저 죽을 줄 모르고 나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다윗의,하나님을 위한 질투심을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이와 같은 하나님을 위한 질투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귀히 여기십니다 그런 사람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내 욕심을 채우려는 데서 출발한 질투는, 
나와 남을 모두 어렵게 하고, 세상을 어지럽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해서 짙투할 때, 나에게 능력을 주시고 , 세상에는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하나님을 위한 질투가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비느하스를 향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에게 나의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민25:12-13). 
이 하나님의 약속은 말씀대로 지켜저서, 
이 때부터 시작하여 이스라엘이 로마에게 멸망할 때까지, 
비느하스의 가문에서 대 제사장이 나왔습니다. 

질투할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영원한 평안의 약속이 있습니다. 
사랑하지 않고는 질투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질투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손해보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할 수 있는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질투하고, 하나님을 위해 열심을 내는 자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참 평안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와 참 평안은 주님과 동행할 때에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주께서 십자가에서 여러분을 대신해 능욕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찢김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바울은 세상의 눈으로 보기에 참으로 자유하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 같히고, 수없이 매를 맞고, 몸도 불편한데다가 마땅히 머물 곳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놀라운 고백을 남겼습니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나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이것이 참으로 자유한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해방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곧 주님과 함께라면 아무 염려도 없습니다. 
그야 말로 사망의 골짜기에서도 할렐루야! 찬송을 부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자유함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해방을 맛보고 사시기 바랍니다. 

영화 ‘Ben Hur’ 중에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벤허의 어머니는 문둥병이 걸렸습니다. 
예수라는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사람을 만나는 사람마다 평안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여인도 예수를 먼 빛으로나마 한 번 보고 죽으려고 군중들의 뒤를 따랐습니다. 
부정한 몸임으로 앞에 나설 수도 없었습니다. 
조그만 바위굴 속에서 얼굴만 내어밀고 되어지는 광경을 주목합니다. 
드디어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손과 발에 못을 쾅, 쾅, 박습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 여인의 가슴 속에서는 심한 아픔이 느껴졌습니다. 

한없는 눈물이 흘렀습니다. 
자기가 죽을 병에 걸려 있는 것도 잊은채, 
죄인을 위해 고통 당하시는 예수의 사랑이 너무나도 감사해서, 울고 또 울었습니다. 
그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메고 쓰러지면서, 
비탈길을 올라 갈 때에도 예수의 얼굴에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는 순간에도 죄인들을 용서해주시기를 아버지께 구했습니다. 
그 광경을보면서 한참 울다가 보니 자기의 몸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그 주님의 사랑이, 그 주님의 희생이, 그 여인을 낫게 한 것입니다. 
그 주님의 용서와 사랑이 오늘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되게 하신 것입니다. 
비느하스의 하나님을 향한 질투가 이스라엘에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했습니다. 
여러분을 향하신 주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저 내셨습니다. 
불의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질투가 있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평안과 자유함을, 
영원토록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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