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http://club.koreadaily.com/mokyang
전체글보기 클럽방명록
 
  클럽정보
운영자 목동
공개 개설 2013.07.31
인기도 23122
회원 3명
다락방 
목동 생각 (12)
골방 
창세기 (5)
출애굽기 (5)
레위기 (10)
민수기 (13)
신명기 (1)
잠언 / 전도서 (2)
마태복음 (1)
누가복음 (3)
마가복음 (5)
요한복음 (1)
사도행전 (4)
로마서 (3)
고린도서 (2)
갈라디아서 (0)
계시록 (0)
사무엘 (0)
열왕기 (0)
사사기 (0)
사랑방 
추억의 노래 (0)
좋은글 모음 (0)
좋은 음악들 (3)
재밋는 유머 (1)
찬양방 
찬양 (7)
사진 영상방 
사진, 행사 (9)
설교 영상 (3)
성지 순례 (6)
논문(論文) 
행함으로 얻는 구원 (1)
하나님의 나라 (2)
교회목회의 직업화 (0)
추천링크
깊은산속 옹달샘
 
TODAY : 41명
TOTAL : 72896명
민수기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8.12.17 18:20 조회수 177 추천 0
제목
 향기로운 제사   
 
민수기 28장 1-8절. 

어떤 아버지가 아들을 늘 곁에 두고 사랑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잘 따랐습니다. 
아들이 점점 나이가 먹고 자라게 되면서부터, 
아버지와 가까이 있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는 일 년에 그저 한두 번 만나는 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오는 것은 한동안 쓸 수 있는 용돈을 받으러 오는 날입니다. 

아들은 그것으로 족했습니다. 
용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혼자서 지낼 수 있었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 좋았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몹시도 섭섭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사랑하는 아들을 매일 만나고 지낼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에 아들이 오면 아들에게 꼭 하루 동안 쓸 수 있는 용돈만 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화를 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되면서부터 아버지와 아들의 멀어졌던 관계가 회복되었고, 
철이 들게 된 아들은 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게 되어, 
늘 아버지 앞에서 떠나지 않고 아버지를 섬겼으며, 아버지는 잃었던 행복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사랑은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만나봐야 덕 되는 것 없지’ 하게 되면 이미 그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한분 한분을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할 수만 있으면 자주 만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영광 받으시기를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가시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광야생활 사십년 동안 그들을 ‘만나’로 먹이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양식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출16:4). 
절대로 하루치 이상을 거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인간의 마음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모든 것이 풍족하면 하나님을 더 잘 섬길 것 같으나 그렇게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이 이제 전 국민의 25 퍼센트가 크리리스챤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일제의 압박, 공산주의와의 투쟁, 그리고 6.25 전쟁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울부짖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려오는 말을 들어보면, 
교회의 출석률이 떨어지고, 교인의 숫자가 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의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모두가 인정하고 있는 이유는 나라가 잘살게 된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겼습니다. 
주말관광 프로그램을 각 여행사에서 개발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입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를 찾던 발길이 다른 곳을 찾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살게 되었으면, 
더욱 더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요 도리인데, 
그렇게 되지를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실 때에 너는 조심하여,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를 잊지 말라’(신6:11-12). 
사람들이 좀 잘 살게 되면 자기의 능력과 자기의 힘으로 그렇게 된 줄로 생각하는데, 
그래서는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일찍이 깨달은 아굴은,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잠30:8-9)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신8:17-18).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실 때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11). 
매일 매일 그날의 양식을 구하라고 하는 것은, 
매일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의지하고, 그를 힘입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제사(祭祀)에 관한 규례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제사’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제사’하면 우상숭배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사’의 본래 의미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날마다 제사를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바울도 로마서에서 말하기를,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롬12:1)’ 했습니다. 

이 제사는 신약시대에 와서 예배로 대치되었습니다. 
양을 잡아 드리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완성되었기에, 
더 이상 짐승을 잡아 드리는 제사가 필요 없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예배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성도들이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예배당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제사를 드릴 때에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고, 
제사장을 통해서 기도하고, 제사장을 통해서 사죄함을 받았습니다. 
제사의 의미가 여기 있습니다. 제사는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입니다. 

제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제사는 내가 하나님의 백성임과, 내게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행위입니다. 
나아가서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제물로 드려 지심으로 완성하신, 
영원한 제사의 모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어린 양 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심으로, 
그 피가 여러분의 죄를 사하여 주심을 믿고, 그 앞에 나아와 예배할 때, 
여러분의 죄가 사해질 것임을 미리 보여 주시기 위한 예식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제사, 즉 예배드리는 일에 대하여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요4:24). 
어떻게 드리는 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있는 자세로 드리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과,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하고, 그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며 예배하는 것,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감사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매 순간 순간의 감사함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 
알맹이는 없고 형식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르신다고 하는 감사함을 가지고 예배할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그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 궁정에 들어가야’(시100:4) 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겨야’(시100:2)하는 것입니다. 예배에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헌신함으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한 것처럼, 
산제사를 드리려면 내 몸이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제물로 쓰이는 것은 반드시 죽어야 합니다. 산채로는 제물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서 아직도 내가 살아 있어서는 온전한 제물일 수 없는 것입니다. 
고집도 혈기도, 명예도 권세도, 모두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살을 찢기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제물이 되셨습니다. 
No Cross, No Glory 입니다. 십자가 없이 영광이 없는 것입니다. 십자가 없이 은혜가 없습니다. 

시간을, 노력을, 건강을, 재능을, 물질을, 생명을 아낌없이 드리는 그것이 헌신이요,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예배입니다. 진정한 예배를 드리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한다는 것은, 항상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수양을 매일 둘씩 상번제(常燔祭)로 드리라’(민28:3)는 말씀이 있습니다. 
상번제라는 말은 영어로 ‘Continual burnt Offering’입니다. 계속해서 드리는 번제라는 말입니다. 매일 매일을 제사함으로 사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을 예배함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카 교인들을 권면하면서,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5:16-18)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항상 예배하는 삶입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 있음을 의식하고 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왜 은혜를 주시지 않겠습니까?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 
그리고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7:11). 
이 믿음 가지시고, 열심으로 하나님을 찾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할 때에, 거기에는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제물을 드리되, ‘흠 없는’것을 드려야합니다. 
흠이 없다는 것은, 순전한 것을 말합니다. 진실함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깨끗한 것을 뜻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은 깨끗하고 순전한 것을 진실된 마음으로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 가지고 갈 제물은, 내게 있는 가장 좋은 것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몸도 깨끗하게 하고, 옷도 제일 깨끗한 것으로 입고, 마음도 깨끗하게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있는 귀한 것, 내게 있는 가장 좋은 것, 그것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그것을 드릴 때, 
하나님은 그 제물을 기뻐 받으시는 것입니다. 물질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그 마음의 자세를 보시는 것입니다. 
내가 쓰고 남는 시간, 내가 쓰고 남은 물질, 내가 쓰고 남은 건강을 가지고, 
하나님께 드린다고 하면, 이미 그것은 ‘흠 있는 제물’입니다. 

선지자 말라기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흠 있는 제물을 드렸습니다. 
좋은 것은 모두 자기들이 가지고, 눈 먼 것, 저는 것, 병든 것을 골라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말1:8). 
사람도 기쁘게 하지 못할 것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사십년간 광야에서 양을 잡아 제사를 드렸는데도, 
하나님은 “너희가 언제 내게 제사를 드렸느냐?”(암5:25)하고 물으셨습니다. 

형식적으로 양은 잡아 드렸지만, 그 마음속에 진정한 감사가 없었다는 말씀입니다. 
예배에 감사가 없고, 예배에 진실이 빠지면, 그 예배를 하나님은 받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이, 매일 매일 감사함으로 충만해야 하는 것이며, 
늘 진실하게 살아야 할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올바로 예배하는 삶이요, 
하나님은 오늘도 그렇게 예배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요4:23)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일을 눈앞에 두고, 왜 제사 이야기를 다시 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가나안을 얻게 되는 것이, 그들의 힘 때문이 아님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올바로 예배하고, 
하나님 앞에 올바로 헌신하는 자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전12:13) 
이것이 확실해야 모든 것이 가능해 지고,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앞서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사를 드리는 것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예배하는 삶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하는 것보다, 내 하나님 전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다’(시84:10)고 고백한, 
시인의 고백이 우리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전글   남은 두 사람
다음글   우리와 동행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