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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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8.12.17 18:27 조회수 135 추천 0
제목
 건널건 건너야 한다  
 
민수기 32장 1-5절  

어느 저명한 내과 의사가, 중한 병에 걸려 신음하고 있는 한 어린아이를 고쳐 주었습니다. 
어린아이의 어머니는 그것이 너무도 고마워서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이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가진 것도 별로 없고......”하면서 품속에 손을 넣더니, 
예쁘게 수를 놓아 만든 손지갑을 꺼냈습니다. 
그리고는 그 손지갑을 의사 선생님에게 건네주며 말했습니다.  
“제가 가진 것이 이것밖에 없습니다. 
변변치 못한 것이지만 저의 성의로 알고 이것을 받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정성껏 준비한 것입니다”. 

의사는 매우 불쾌한 안색을 하고는, 
“의사라는 직업이 그렇게 값싼 직업이 아닙니다. 
그런 건 아주머니 친구에게나 주십시오.” 했습니다. 여인은 매우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곧 평정을 되찾고 의사에게 정중히 물었습니다. 
“치료비가 얼마나 됩니까?” 의사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했습니다. “40 파운드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들고 있던 손지갑을 열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을 전부 꺼냈습니다. 
세어 보니, 20 파운드짜리 수표 다섯 장이었습니다. 
여인은 그 중에서 두 장을 의사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여기 치료비 있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좇다가 보면 더 큰 것을 놓치는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평생을 이웃의 유익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을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도처에서 볼 수 있습니다. 가정 안에도 있고,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고 허다한 난관을 극복하며, 
오늘에 이른, 이스라엘 지파(支派)들 가운데도 그런 문제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입성을 눈앞에 두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열두 지파 중, 르우벤(Reuben) 지파와 갓(Gat) 지파가 
가나안에 들어가기도 전에 그들의 요구 조건을 들고 나온 것입니다. 

지난 날 하나님의 말씀대로 미디안과 전투를 해서 이겼습니다. 
그래서 얻은 땅인 야셀과 길르앗을 자기들에게 분배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가축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 땅을 눈여겨보았더니, 가축 먹이기에 아주 적합한 땅으로 보였습니다. 
그들은 모세 앞에 나아가서 말합니다.
“이 땅을 우리에게 주시고, 우리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민32:5).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요단은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입니다. 
약속의 땅이 그 강 건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넌다는 것은 전쟁을 치러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요단을 건너면 당장 눈앞에 거대하고 견고한 여리고 성이 앞길을 가로막고 서 있습니다. 
고난이 예상되는 길입니다. 
그래도 그 길을 가야만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요단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신 것이고, 
하나님이 친히 그들과 함께 가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출34:14)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저들이 어째서 요단을 건너려 하지 않고, 이곳에 머무르려 한 것일까요? 
애굽을 떠나 광야 생활 40년 동안 참으로 피곤한 삶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땅, 
그 땅만 있으면 딴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큰 힘 안들이고도 살 길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구태여 험한 길을 더 가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요단을 건넌다고 하는 것은, 전쟁을 각오해야 하는 일입니다. 
가나안 지방 여러 부족들이 순순히 자기들의 땅을 내어 줄 리가 없습니다. 
요단을 건너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은 고난의 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그만 편히 쉬고 싶었을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난을 싫어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쉬운 길을 가려 합니다. 
이 마음 때문에 때로는 사람들이 올바른 길을 가지 못하고, 
부정한 길, 불의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사기를 합니다. 횡령을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오히려 더 어렵게 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입니다. 
사단은 오늘도 믿는 자를 유혹하며 말합니다. ‘쉬운 길을 택하라.’ 

비록 어렵고 힘들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광야에 나가 금식하시며 기도하시던 예수께서도 이 유혹을 받으셨습니다.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마4:3). 
예수님의 마음속에는 굶주리는 동족들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것을 쉽게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가지신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는 것은 쉬운 일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4:4). 
아무리 좋아도,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 아니면 취할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쉬워도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면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들이 요단을 건너지 않기를 바라며, 
‘우리가 만일 당신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하고 말합니다. 
은혜를 입은 것은 시인(是認)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어려운 길 가지 않도록 여기서 살게 해 달라는 말입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더욱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가야 할 것입니다. 
은혜를 입었으면 더욱 더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은혜를 입었는데 무엇이 두려워서 요단을 못 건너겠다는 것입니까? 
은혜를 입은 자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시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한참 기도하다가 보니, 예수님의 얼굴이 변하여 해같이 빛나고, 
옷이 변하여 빛같이 희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씀을 나누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세상에, 여기가 바로 천국이구나! 하고, 예수님께 요청합니다.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습니다.”(마17:4) 
그 때에 구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왔습니다.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마17:5). 
은혜를 받은 자는 더욱 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의 권면처럼,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롬12:2)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이 가기를 원하시는 가나안으로 갈 생각은 하지 않고, 여기 머무르겠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다른 형제들은 이제 곧 가나안 여러 부족들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형제들은 고난을 당할지라도 자기들은 편해야 되겠다는 생각입니다. 
십자가의 정신과는 너무도 먼 거리에 있습니다. 

그들이 모세에게 말합니다. “이 땅을 산업으로 주시고......”. 
그들의 마음속에 안목의 정욕이 있었습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가축이 많았는데, 이미 싸워서 빼앗은 땅을 보니 목축에 적당한 땅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 봐야 이보다 더 좋은 땅이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때로는 가진 것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보지 못하는 수가 있습니다. 
지혜가 막히면 멀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것만 보기 십상입니다. 
저들이 원한 땅, 야셀과 길르앗은 지리적으로 볼 때, 훌륭한 목초지이며, 곡창 지대입니다. 
그러나 그 땅은 우상 숭배와 죄악이 가득한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들의 눈에는 죄와 우상은 보이지 아니하고, 우거진 목초만 보였습니다. 
가축이 많은 까닭이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의 문제였던 것입니다. 

저들은 멀리 있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지 못하고, 가까운데 있는 평안함만 보았습니다. 
그들이 받아야 할 땅은 야셀과 길르앗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이었습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육신의 눈에 좋게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영의 눈을 떠서 영적인 풍요함을 볼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건너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 아브라함과 롯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 정든 땅 하란을 떠날 때, 
의지할 곳 없는 조카 롯을 데리고 떠났습니다. 성실하게 잘 돌보았습니다. 
롯도 꽤 많은 재산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양떼도 많았습니다. 
도저히 함께 살수 없을 만큼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창13:9) 
롯이 언덕 위에서 요단 들판을 내려다보니 참 좋았습니다. 
온 땅에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았으며,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거기 가면 보나마나 평안하게 잘 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롯은 보따리를 싸가지고 소돔 땅으로 떠났습니다. 한동안 즐기고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은 죄악이 심히 중한 땅이었고, 하나님이 멸하시기로 작정하신 땅이었습니다. 
결국은 모든 재산 다 잃고, 아내도 잃고, 불의한 자손을 후세에 남기고 말았습니다. 
안목의 정욕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이생의 자랑을 향하여 가는 길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보여준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이 가난한 자의 것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마5:8) 
성경은,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요일2:15)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일 뿐이요,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것들은 모두 지나가되,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만이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요일2:17) 
그들은 또 말합니다. “우리로 요단을 건너지 않게 하소서.” 
요단을 건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단을 건넌다는 것은 단순히 강(江)을 하나 건넌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거를 청산하는 것입니다. 죄의 길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덧입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 세상의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난날을 청산해야 새로운 소망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죄에서 떠나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죽지 않고는 다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건너라고 명하신 요단을 건너지 않겠다는 것은, 
지난날에 매여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죄악과 함께 하던 지난날에 미련을 두는 것입니다. 
영원한 나라보다는 ‘이 세상’에 더 집착하는 모습입니다. 
더 좋은 것을 잡으려면 이미 손에 잡고 있는 것을 놓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버리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습니다. 
비록 가는 길이 고난의 길일지라도, 예비 된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건너가야 합니다. 
그래야 축복된 땅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건너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사는 길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불신의 강을 건너서, 믿음의 땅으로 오라 하십니다. 
주저하지 말고 이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는 것이, 
예비 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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