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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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9.02.08 22:42 조회수 352 추천 0
제목
 무엇으로 사는가?(1:8-17)   
 
로마서 1장 8-17절 

어떤 유명한 식당 주인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기업을 물려받게 된 아들이 아버지의 임종을 앞두고 아버지에게 조언을 청했다. 
“아버지, 이제 떠나시기 전에 사업의 비결을 하나 가르쳐 주십시오.” 
그랬더니 죽어가던 아버지가 실낱같은 눈을 뜨고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얘야, 햄은 될 수 있는 대로 얇게 썰어라.” 
그가 평생 마음속에 생각하고 있던 것이 그것이었다. 

사람이 평소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일생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내 마음속으로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살고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 나도 모르는 잠재의식으로 굳어져서,  
어떤 경우에 불쑥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대화를 해보면, 대충 그 사람됨을 알 수가 있다. 
반말 잘하고, 남에게 거칠게 대하는 사람 치고 겸손한 사람이 드물다. 
이미 그 사람의 잠재의식 속에 교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겸손은 행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되는 것이다. 

“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다가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하는 찬송이,  
항상 우리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헛소리를 해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말을 하고, 
꿈을 꾸어도 주님을 만나는 꿈을 꾸어야 한다. 

일본에 어떤 할머니 한 분이 살고 있었는데, 별명이 ‘감사할머니’였다. 
누구를 만나던, 무엇을 하던, 어떤 경우를 당하던지,  
그 할머니의 입에서는 “감사합니다”하는 말이 나왔다.  
어떤 수요일 저녁에 수요 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자기 소방차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자기 집 쪽으로 달려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을 향해 달려가다가 보니, 
자기 집이 불이 나 활 활 타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그만 땅에 주저앉아서, 
‘아이구 우리 집에 불이 났네, 나무아미타불’ 하며 땅에 주저앉아버렸다. 
평소 밖으로 나타나는 할머니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그 할머니의 잠재의식 속에는 ‘나무아미타불’이 자리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바울의 소원은, 살아도 복음을 위해 살고, 죽어도 복음을 위해 죽는 것이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한다" 
고 고백했다.(빌1:20) 

여러분의 삶에서 무엇이 나타나기를 원하는가? 
돈을 많이 벌었다, 명예를 얻었다, 권력을 잡았다, 
이 모든 것들이 좋은 것들이기는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것들 때문에 믿음의 길에서 멀어졌다면, 
그것들은 오히려 유익한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은 말씀한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벧전 1:24-25)  

바울의 간절한 소망은 로마에 가는 것이었다.(롬1:10, 15) 
가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들과 함께 서로 받은 은혜를 나누고 믿음을 더 튼튼히 세워주고 싶었다. 
그들로 하여금 믿음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고 살도록 하고 싶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합당한 은사를 주셨다.  
성령은 하나이나 은사는 여러 가지이다. 
그러므로 남이 가진 은사가 귀한 것만큼 내게 있는 은사도 귀한 것이다. 
이것을 모르면 내게 주어진 은사는 하나도 활용하지 못 하고, 
밤낮 남이 가진 은사만 구하다가 일생 끝나고 마는 수가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시해서 하기 싫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할 수 없어서 못한다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성실하게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참 믿음이다. 

바울은 항상 복음의 빚 진자로 살았다. 
바울은 본문 14절에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 진 자라” 했다. 
바울은 복음 전할 의무가 자기에게 있음을 비유해서 빚진 자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이 의무는 마치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의무와 같은 것이다. 

아버지이기 때문에 섬기는 것이다.  
아버지가 내게 잘 해주시건 아니건, 그것과는 상관없이, 
그냥 아버지이기 때문에 존경하고 효도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그와 같은 것이다. 

어떤 사람이 세례 문답을 하는데, 목사님이 물었다. 
“왜 예수를 믿습니까?” 그랬더니 그 사람이 대답했다. “믿어야 하니까 믿지요.” 맞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아무 전제도 조건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순수한 믿음이다. 필요 때문에 믿고 조건 때문에 믿는 다면, 
그것은 이미 순수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은혜 받은 자가 누구인가? 그는 겸손한 자이다. 
섬기는 일에 앞장서는 사람이다.  
받을 권리는 없고, 
평생을 두고 갚아도 못다 갚을 은혜만 입고 산다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왜 내게 무엇을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하며 사는 것이 아니라, 
나로 하여금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시는 그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강한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다. 
복음을 전함으로 무슨 보상을 얻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빚을 진자는 당연히 갚아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고, 
다 갚았다고 공로패를 받는 것도 아니다. 
봉사하고, 전도하는 것,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고, 
봉사하고 전도했다고 자랑할 것도 없다. 공로패 받을 일은 더욱 아니다.

본문16절에서 바울은 복음은 능력 이라고 말하고 있다. 
어떤 능력인가? 성경은 말씀한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능력이라고. 
복음은 구원하는 능력이 있다.  
그래서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구원받았다는 것은 어떻게된 것을 의미하는가? 
어떤 속박에서 풀려나는 것을 말하기도 하고, 
질병이 낫는 것을 말하기도 하며, 
어떤 위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것은,
죄를 사함 받는 것이요, 사망으로부터 놓여나는 것이다. 
종말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요 복음의 능력이다. 
그러므로 이런 구원을 받은 사람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배후에서 역사 하시는데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다.(롬 8:38-39)

그리스도인은 이 능력으로 사는 사람들이다. 
이 능력 때문에 순교자가 생기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믿음으로 오늘의 평안을 누리며,  
복음을 믿음으로 내일의 소망 가운데 사는 사람이다. 

본문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다. 
누가 의인인가?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여김을 받은 자들이다.  
스스로는 절대로 의롭게 될 수 없다. 
스스로 의인된 자는 이 세상에 한사람도 없다.(롬3:10, 시14:3)  
용서받은 죄인이 있을 뿐이다. 용서받은 죄인이 의인이다.

이 용서받은 죄인이 무엇으로 사는가? 
믿음 때문에 오늘을 사는 것이고, 믿음 때문에 내일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이 주어진 것이다. 
그러니 그리스도인의 입에서는, 
믿음 때문에 살고, 믿음으로 산다는 고백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여러분은 마지막 때에 무슨 말을 하시기를 원하시는가? 
“나는 믿음 하나로 살았다, 믿음 때문에 살았다.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은 말씀한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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