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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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9.02.23 17:06 조회수 391 추천 0
제목
 하나님을 아십니까?(1:18-23)  
 
하나님을 아십니까? / 로마서 1장 18-23절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칼 바르트는, 
"사람은 전적으로 타락했음으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고 했고,  
에밀 부룬너는, 
"사람이 타락하기는 했으나 하나님을 알만 한 것이 조금 남아 있다"고 했다. 
성경은 말씀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알지는 못하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있다."(19절) 

인간의 마음속에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있다. 
그것이 양심이요, 인간에게 주어진 이 양심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통로다. 
이 양심이 마비됨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되고, 
하나님과 올바른 교제를 가지지 못하며, 
더 나아가서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핑계일 뿐이다.(20절) 
스스로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다.(28절) 
어리석은 자들이 스스로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시 14:1)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신성이 만물에 분명히 보인다. 
사람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길 가다가 시계 하나를 주어 가지고,  
“이 시계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구나” 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 시계는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다. 
우주 만물을 보면 그 것들을 만드신 조물주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다. 
아무도 핑계할 수 없다.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품음같이 품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마 23:37) 

하나님은 돌아온 탕자를 긍휼히 여기신다. 
죽어야 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리실 만큼 사랑하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 
그것은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극치이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선지자 아보스를 통해 말씀하셨다.
"오직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하수 같이 흘릴지로다."(암 5:24)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은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신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비뚤어진 인격을 만든다. 

엄 부형 출 효자(嚴父兄 出孝子)라는 말이 있다.
엄한 무모 아래 효자가 난다는 말이다.
잘못 된 길을 가는데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은 올바른 사랑이 아니다. 
아버지는 공의로 징계하고 어머니는 사랑으로 위로하는 곳에 
올바른 교훈이 행해진다.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시다. 
진노는 사랑과 공의에 기인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진노하심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칼 브라이트는 
"지옥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의 지식으로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하나님이 없어야 하겠기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진노할 수 있으며,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지옥을 만드실 수가 있느냐고 항변한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한다. 
“하나님의 진노가......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18절) 
성경 말씀에 하나님이 진노하신다면 진노하시는 것이고, 
지옥이 있다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어떤 때에 누구에게 나타나는가?
능동적, 적극적으로 진리를 막는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나타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선택된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떠났을 때,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죄의 길로 가고 있을 때 나타난다.
하나님이 여로보암을 택하셔서 그를 존귀하게 하셨으나, 
여로보암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의 길로 갔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서 그 영광을 빼앗으셨다.(왕상 14:7-9)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자들에게 나타난다. 
철학자 니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했다. 
하나님이 살아 있으면 사람은 부자유해서 못산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인정하면 마음이 불안하다. 내가 죄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억지로라도 하나님이 없는 것으로 해야 마음이 평안한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 의식, 즉 신전의식(神前意識)이 없으면, 
공의를 떠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감사치 않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세상에 살수가 없다. 
그런데도 마치 내 재주로 사는 것처럼 산다. 
그러니 무슨 감사가 있겠는가? 감사하지 않으면 불평하게 된다. 
그 삶에 평안이 없다. 
불안과 공포는 감사하지 않음으로 주어지는 보상이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 우준(愚蠢)하게 되어자신을 의지한다.(22절) 
그 결과로는 우상을 따라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지혜는 죄로 오염된 지혜다. 
우상 숭배의 근본적인 동기는 자기 실현이다.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자기의 꿈과 이상을 실현시키려는 욕망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자기를 믿게 되고, 자기를 우상화하게 되며, 
그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자초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스스로 지혜로운 것 같으나, 어리석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리에 자기를 두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하는 것이다.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私生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히12:8)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 때에, 
잘 안되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인 줄을 알아야 한다. 

베드로가 설교할 때,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왔다.(행2:37) 
그러나 스데반이 설교했을 때, 
사람들은 이를 갈며 스데반을 돌로 처 죽였다.(행7:54-60) 

선택은 듣는 사람의 몫이다. 
사랑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며 살 것이다. 
공의의 하나님임을 알아서 경건한 삶을 위해 힘쓰고 살 것이다. 

때로 나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있더라도, 
오히려 사랑의 매를 인하여 
더욱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리고 살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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