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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9.04.17 19:34 조회수 38 추천 0
제목
 자기 십자가를 지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 / 요한복음 19장 17-27절

십자가 목걸이 하고있는 연기자들이 많이 눈에 띈다. 
영국 여왕의 왕관에도 있고, 요즘 흔히 주고받는 공로패에도 있다. 
십자가는 본래 사람들이 처다 보기도 싫어하는 흉물스러운 것이었다. 
그것은 저주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나무로 만든 형틀이다. 
극악무도(極惡無道)한 죄인을 처형하기 위해서 쓰여지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죽어서 나무에 달렸다는 것은 
저주받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신명기 21장 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했다.  
우리나라에도 옛적에 그와 비슷한 형벌이 있었다. 
왕에게 대역죄를 진 사람은 참수해서 장대 끝에 높이 매달아 놓고,  
사람들로 하여금 볼 수 있게 했는데, 
그것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와 같은 죄를 짖지 말도록 
경고하는 의미가 있었다. 

예수께서 이런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저주받을 자로 여김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 저주의 상징이었던 십자가를 사람들은 왜 귀중히 여기고, 
몸에 간직하고 다니는 것일까? 
그것은 예수께서 저주의 십자가를, 
영광의 십자가, 승리의 십자가로 바꾸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세상이 생각하는 그런 저주나 형벌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다. 
본문 17절에, 예수께서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고 했다.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꼭 하셔야 되는 일을 하셨다는 것이다. 
비록 그것이 견디기 힘든 고난의 길이기는 하지만, 
그 일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묵묵히 십자가를 지신 것이고, 
예수께서 그 십자가를 지심으로 인해서 내 죄가 사해졌으며, 
예수께서 나무에 달리시고 채찍에 맞으심으로, 
영원히 죽을 내가 영원히 살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십자가는 저주받은 표가 아니라, 승리의 면류관인 것이다.  

십자가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자기 십자가고 다른 하나는 남의 십자가다. 
예수님에게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고, 나에게는 내 십자가가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내가 질 수 없다. 

복음성가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이제는 나도 지고,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만 따르리라''''는 구절이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이것은 넌센스다. 

그것은 예수님이 지셔야 할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진다는 말이 아니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신 죽으시는 십자가다.  
그 십자가를 내가 어떻게 감히 대신 지겠다고 할 수 있는가?  

예수께서 자기가 지셔야 할 십자가를 피하지 않고 지셨던 것처럼, 
나도 내게 주어진 십자가 피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고 가며,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다하겠다는 고백으로 부르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각자 자기 십자가가 있다. 
그 십자가만 질 수 있다. 
부모는 부모로서의 십자가가 있고 자녀는 자녀로서의 십자가가 따로 있다. 
남편의 십자가와 아내의 십자가가 다르다. 서로 대신할 수 없다. 

목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장로님이 하셔야 할 일이 있다. 
전도사가 해야할 일이 다르고, 교사가 해야 할 일이 다르다. 
서로 대신 한다고 바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내가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남의 십자가를 내가 질 수 있는가? 
성경에 보면 남의 십자가를 대신 진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바로 그 사람이다.(막15:21)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으로 올라가시는 그 시간에, 
그 곳을 지나가다가 억지로 예수께서 메고 가시던 십자가를 대신 메고 골고다로 올라갔다. 

그렇다고 구레네 시몬이 그 십자가로 인해서 무엇을 이루었는가? 
물론 예수님의 고통을 잠시 덜어드리기는 했다. 
억지로 해도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의 십자가를 내가 대신 질 수는 없다.  

예수님 앞에는, 
십자가 형틀에 달려서 살을 찢기고 피를 쏟으심으로, 
죄로 죽을 인간을 구원해야 하는 책임이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자기를 완전히 던지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이 책임을 다하신 것이다. 

오늘 내 앞에는 어떤 십자가가 있는가? 내가 해야 할 책임은 무엇인가?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꼭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어떤 것인가? 
부모로서, 자녀로서,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목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각각 어떤 책임이 있는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이다. 
만일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저야 할 내 십자가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운명하시기 전에,
그 어머니 마리아와 사랑하는 제자(요한)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다.
예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요한)를 가리키시면서,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씀하셨다.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이제 마리아에게 주어진 책임은 요한을 아들처럼 사랑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또, 
어머니 마리아를 가리키시면서 사랑하는 제자(요한)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7)  
이제는 이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는 것이 요한의 책임이라는 말씀이다. 

마리아와 요한에게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이 관계를 잘 유지하고 이 관계 속에서 서로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각자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피하려면 피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희생이 따른다. 
때로는 평생을 바쳐야 할 수도 있다. 
어디서 힘을 얻을까? 어떻게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가?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중간에 넘어진다. 

예수께서도 자기 앞에 놓여있는 십자가가 너무 힘든 것을 아셨다.  
그래서 피해보려 하셨다. 
그러나 기도하는 가운데 피할 수 없는 것임을 아셨고, 감당할 힘도 얻으셨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이 힘을 얻어야 한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성령의 은혜로 감당할 수가 있다. 
바울은 말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3). 

내게 주어진 십자가, 그것은 내가 저야 하는 것이고,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책임을 다할 때,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신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이든, 내가 해야 할 책임이 무엇이든, 
내가 감당할 능력 주시기를 간구할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하셨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8).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한다. 구하면 반드시 주신다. 
이 능력으로,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피하지 말고, 
맡겨진 책임을 기쁘게 감당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목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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