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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에세이
작성자  kaac 작성일  2019.05.22 13:17 조회수 104 추천 0
제목
 산을 목숨보다 사랑한 그녀들   
 

"산에 갈 수 있으면 뭐든 좋아"
안나푸르나 등반 직전 마지막 이별주 나눈 지현옥
"나는 알피니스트"라며 마냥 좋아하던 고미영
그들과 함께 나는 산에 오른다

배경미 · 세계산악연맹 아시아 상임이사
알프스 샤모니 마을에 짐을 풀고 2000m 봉우리로 반나절 트레킹을 다녀온 내게 위성전화가 걸려왔다. 네팔 다울라기리(8167m)를 막 등정하고 베이스캠프로 하산한 후배 고미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죽을 뻔했어요. 그래도 무사히 내려왔어요. 다음은 낭가파르밧이에요." 2009년 6월 11일이었다. 네팔 히말라야 8000m 고봉(高峰)들을 연속등반한 그녀는 8000m급 14좌(座) 완등을 위해 질주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달 후인 7월 11일 주말을 맞아 가벼운 산행을 위해 배낭을 싸던 나에게 자정 넘어 걸려온 전화는 청천벽력이었다. 고미영이 추락사했다는 전갈이었다. 머릿속은 하얘졌고,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사고대책에 뛰어들었다.

서울 잠실의 가족에게 사고소식을 전해야 했고, 시신이라도 찾아와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주한 파키스탄 대사관을 쫓아다니며 협조를 구했다. 동료 산악인들과 함께 빈소를 지키고 그녀의 고향인 전북 부안 시골집 근처 묘역에 안치할 때까지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고미영은 고산(高山) 등반에 입문하면서부터 입버릇처럼 "언니, 이제는 나를 알피니스트라고 불러주세요"라고 했었다. 그녀의 해맑은 웃음은 나에게는 공허한 하나의 산(山)이 되어 버렸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에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온 또 한 사람은 지현옥이었다. 대학 산악부 선배이기도 한 그녀는 1988년 봄 나와 함께 북미 최고봉인 맥킨리(6194m)봉에 여성대원으로 합류했고, 1993년에 한국 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후, 8000m 거봉(巨峯)인 가셔브룸 1봉과 2봉을 등정한 한국 여성산악계의 자존심이었다. 홀로 선구자의 길을 걷던 그녀 또한 1999년 안나푸르나 등반을 마지막으로 우리 곁을 떠나고 말았다. 고미영의 사고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이다.

안나푸르나로 떠나기 전날, 그녀는 내 사무실로 찾아와 함께 무교동에서 이별주를 나눴다. "산에만 갈 수 있다면 무엇이든 좋아. 모든 일은 산 다음이야. 이번에 돌아오면 연속등반도 생각해볼 거야." 쏟아내는 말마다 산에 대한 열정이 넘쳐 있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함께 나눈 마지막 대화이자 마지막 만찬이었다. 산에 대한 열정과 신념으로 무장한 지 선배의 모습은 결혼, 출산, 직장생활로 잠시 꿈을 접어둔 나에게는 희망이었다.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burbuck@chosun.com

세계에서 여성이 8000m급을 등정한 것은 1974년 마나슬루봉이 처음이었고, 24년 만인 1988년 칸첸중가 등정으로 여성의 힘으로 14좌 완등(完登)을 이뤄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1993년 에베레스트 등정을 시작으로, 2010년 안나푸르나 등정까지 17년 만에 14좌를 완등했다. 그 역사 속에 나의 선배인 지현옥과 후배인 고미영 같은 여성산악인들이 있다. 그들의 열정과 못다 한 인생은 여전히 내 안에 녹아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나에게 산은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안한 존재다. 1983년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면서 산이 좋아 동계·하계 장기산행을 나섰다. 머리를 훌쩍 넘기는 큰 배낭에 담긴 장비와 식량의 육중한 무게를 느끼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등산을 좀 더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어 3학년 때에는 주말마다 열리는 한국등산학교에 입교해 빡빡한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월요일 학교 첫 강의 때는 졸음과 싸우느라 전쟁을 치렀다.

왜 나는 그렇게 산에 매료됐을까. 숨이 턱까지 차올라 가슴이 터질 듯하게 힘든 오르막도 있지만 그 뒤에는 항상 숨을 고를 수 있는 평지도, 쉬면서 걸을 수 있는 내리막도 있다는 것을, 그 반복이 바로 인생의 모습이라는 것을 어슴푸레 짐작할 수 있었다. 암벽과 빙벽 등반을 통해 자연스레 집중력이 길러지고, 건강은 덤으로 따라왔다. 산은 내 인생의 스승이다.

산에 대한 열정은 1988년 국내 처음으로 여성들로만 구성된 한국 여성맥킨리원정대의 막내 대원으로 나를 인도했고, 이 등반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귀국 후 나는 산악연맹에 관여하면서 20여년을 등산관련 서적 발행과 국제교류에 힘썼다. 산에서 세상을 보게 됐고, 산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을 실현할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나는 결혼도 산악인과 했고, 신혼여행도 해외 고산으로 떠났다. 첫 아이를 출산한 뒤에도 가정과 산을 병행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해마다 남편과 해외 원정등반을 시도했다.

이제 산은 자연스러운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가정과 산, 사업으로 3등분 된 나의 삶이

여성이기 때문에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산에서 얻은 근성은 나를 키우고 지탱하는 묵직한 힘이다. 나는 만나는 여성들에게 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함께 걷자고 권한다. 여성의 에너지는 각자의 삶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 큰 반향이 되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 에너지가 산을 통해 얻는 것이라면 마르지 않는 샘처럼 무궁무진할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9/06/201109060244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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