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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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19.06.28 10:11 조회수 275 추천 0
제목
 유쾌하게 되는 날(3:17-26)  
 
사도행전 3장 17-26절 

어떤 사람에게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불쑥 아버지 앞에 나타나서 말했습니다. 
“아버지, 어차피 언젠가는 제게 나누어주실 재산이면 지금 주세요. 
따로 나가서 그것 가지고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왜 그런지 젊은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부모 곁을 떠나서 살아 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정상일 수도 있습니다. 
철이 날만큼 되었는데도 허구한 날 부모 신세만 지려고 하는 것 보다는 나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아들이 재산을 나누어 받아 가지고 집을 나가서 살아보겠다는 말에,  
아버지의 마음이 그리 썩 좋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어련히 알아서 나누어 줄 터인데 
그 동안을 못 참아서 안달을 하는 아들이 괘씸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버지는 결국 둘째 아들에게 얼마만큼의 재산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이 아들은 곧 나누어 받은 재산을 가지고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그 재산을 가지고 허랑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얼마 못 가서 모두 날려 버리고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이 아들은 남의 집 머슴살이로 들어가서,  
그 집 돼지를 키우며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 지나게 되었습니다. 
그나마도 양껏 먹을 수가 없는 처량한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아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냥 집에 있었으면 이 고생 안해도 되는데, 내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가? 
이대로 있다가는 굶어 죽기 딱 알맞지 않는가?’ 그리고는 결심을 했습니다.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래서 지난 날 철없이 잘못한 것, 용서를 빌고, 
품꾼으로라도 받아 달라고 하자’ 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한편, 철없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 아버지는,  
고생 줄에 들어 있을 것이 뻔한 아들이 돌아올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정말로 돌아온다는 소식이 왔습니다. 
아버지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서 아들을 맞아 들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앞에 엎드려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돌아온 탕자를 위해서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눅15:11-23)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서 얼마동안 나름대로 즐겁게 살았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보니 너무 좋았습니다. 참 자유롭고 편안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점점 살기는 힘들어 졌고, 유쾌한 날들이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 잘못 된 것을 깨닫고 아버지 앞에 돌아와 회개하고 용서받으니,  
참 즐거움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참으로 유쾌한 날들이 거기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진 심령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회개하고 용서받을 때 참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유쾌하게 사는 것입니다. 

본문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에 베드로가 한, 두 번째 설교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의 죄를 지적합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 잘못을 회개하고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19절). 

회개는 왜 합니까?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왜 죄를 짓습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돈 많고 학벌 좋고 권세 있는 사람들이 모르긴 뭘 몰라서 죄를 짓느냐고 반문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그런 사람일지라도, 
죄의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엄중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임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범죄한 유대인들을 향해서,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여서 그리하였다”(17절)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바로 알았다면 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겠습니까? 
그런 줄 몰랐던 것입니다.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못 박는데 앞장섰던 가야바는 대 제사장이었습니다. 
유식한 사람입니다. 존경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를 없애 버리기를 주장하면서,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하다”(요18:14)는 어리석은 말을 했습니다. 
죄 없는 한 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평안할 수가 있습니까? 모르는 소리입니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자는 결코 평안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유대인들을 향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예수를 따르던 제자들 중에 그래도 제일 똑똑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되어지는 사람이 가룟인 유다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를 은 삼십 량을 받고, 로마 병정들에게 팔아 넘겼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는 나중에 이것을 후회하며 뽕나무에 목을 매어 죽고 말았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 유다의 영이 내려와서 예수님 앞에서 슬피 울며, 
왜 진작 사실을 말씀해 주시지 않았느냐(Why didnt you tell me?)고 부르짖었다고 합니다. 
죽은 다음에 다시 살아날 줄 알았으면 미쳤다고 그 짓을 했겠느냐는 것입니다. 
몰라서 그랬던 것입니다. 아니, 
예수께서 말씀을 하셨는데도 건성으로 듣고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깨닫지 못함으로 범죄 합니다. 유다는 자기 생각에 똑똑한 것 같았지만 실상은 어리석었던 것입니다. 

일생 자기 멋대로 살아 놓고 나서, 이럴 줄 알았으면 안 그러는 건데......하고 후회하는 인생, 
참으로 미련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간단한 공식을 못 깨달아서 죄 짓기를 밥 먹듯 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회개하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잘못을 아뢰고 회개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회개는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쌓아 놓으면 쌓아 놓을수록 회개하기가 힘들게 됩니다. 
나중에는 양심이 마비되어 죄가 죄인 줄도 모르게 되고 맙니다. 
어떤 세탁소에 단골손님이 있었습니다. 
한 번 오면, 와이셔츠를 한꺼번에 삼십 여장씩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하루에도 두어 번씩 와이셔츠를 갈아입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서 세탁소 주인은 깨달은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딱 한 번만 입고 벗어 놓은 옷이기 때문에 빨기가 쉽습니다. 
조그만 스팟이라도 있으면 금새 눈에 뜨입니다. 
웬만한 것은 그냥 물에 넣고 돌리기만 해고 깨끗하게 빨아 집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며칠씩 입어서 때가 찌든 옷을 가지고 옵니다. 
이것은 아무리 애를 써도 좀처럼 깨끗이 빨아 지지가 않습니다. 
웬만한 스팟 같은 것은 눈에 띄지도 않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속히 회개하고 고쳐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습관이 되어 고치기가 매우 힘들게 됩니다. 

‘유쾌하게 된다’ 는 말은, 
‘다시 숨을 불어 넣는다’, 다시 숨을 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창2:7) 
이것은 하나님의 첫 번째 창조 역사입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돌아오면 재창조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숨 쉬지 못하고 죽은 인생이 회개함으로 다시 숨을 쉬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유쾌하게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영적으로 자유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유쾌한 것입니다. 
본문 가운데 있는 ‘유쾌한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궁극적으로 유쾌하게 되는 날은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하심과 함께 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당하던 성도들의 고난이 신원(伸寃)받는 날인 것입니다. 
주께서 모든 성도들의 눈에서 눈물을 씻어 주시는 날인 것입니다. 
성도들은 바로 이 유쾌한 날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유쾌한 날을 이 세상에서 앞당겨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여 집니다. 쓸모없이 여겨지던 내가 참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내가 소망을 갖게 됩니다. 나빳던 인간관계가 좋아집니다. 
나만 귀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귀하게 여겨집니다. 
무섭기만 하던 하나님이 사랑으로 느껴집니다. 

내가 하는 일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내가 사나 죽으나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제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빌1:20-21) 하고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것을 위하여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용서함을 받아 유쾌한 심령으로 살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종을 세워 복 주시려고 너희에게 먼저 보내사,  
너희로 하여금 돌이켜 각각 그 악함을 버리게 하셨느니라.”(26절). 

회개하고 돌아오면 넘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이 약속을 믿고, 
이 유쾌함을 가지고 하루하루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유쾌한 삶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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