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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에세이
작성자  kaac 작성일  2019.09.12 07:47 조회수 90 추천 0
제목
 K2 그리고 초록에 대한 단상, 신영철  
 


                              

  녹색파도 넘치는 유월의 산



  덕고산(1125m)을 가자는 말에 좋다는 응낙을 한 것은, 그 산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처음 들어 보는 덕고산이 사실 어디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는 끝이 보이지 않던 일에 지쳐갔으나, 얼추 마무리를 하던 시간이기도 했다.
  낮은 산이거나 높은 산 가릴 것 없이 무장무장 피워내어 한바탕 화르르 꽃 잔치를 벌렸던 봄날은 이미 갔다. 왔다 가는 봄도 모르고, 줄창 모니터를 바라보며 보낸 방안의 어둔 시간들. 분홍 진달래, 붉은 철쭉, 제 몸 불살라 핀 산 벚꽃이 언제 피었다 지었는가. 잃어버린 봄 산에 대한 아쉬움 때문에 쉽게 동의했을 것이다.

  덕고산은 강원도 횡성군 신대리에 있었다. 봉복사라는 절집으로 이르는 등산로에 첫발을 디디며, 무명의 산답게 때 묻지 않는 산이라는 걸 금방 알았다. 인근에 유명한 치악산이 있어 그랬을까. 주말이면 밀리는 등산객이 꼬리를 무는 그런 산이 아닌 건 분명했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우리뿐 한적했다.



  유월을 맞은 덕고산 오지랖 넓은 산자락은 온통 녹음이다. 활엽수가 많아 그렇겠으나 등산로는 녹색터널을 이루고 있다. 온 몸의 세포가 신이 나서 열리더니 정신도 말끔하게 깨어난다. 단순히 깨끗한 공기라서가 아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과학적 분석이라는 걸 그리 신봉하는 처지는 아니지만, 숲에 관한한 그 말을 믿는다. 나무에서 내뿜는 피톤치드, 테르판, 음이온 등이 인간에게 좋다는 말엔 딱히 반대할 명분이 없다. 우선 몸이 먼저 좋다는 반응을 보이니까 그렇다. 바람에 쓸리는 나뭇잎 소리가 흡사 나무들 숨소리처럼 들린다. 녹색은 생명의 색이며 구원의 색깔이라고 스스로 정의 한 적이 있었다. 그런 기특한 생각을 한 그때도, 지금처럼 유월이었으나, 장소는 아득한 서역 땅 카라코람 히말라야 발토르 빙하였다.

  카라코람 히말라야 발토르빙하

  K2로 상징되는 발토르 빙하는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를 자랑한다. 그렇듯 소위 히말라야에서 8000미터 이상의 고봉 4개가 이쪽에 몰려있다. 빙하에서 카라반을 시작하면 전진이거나, 후퇴냐 둘 중 하나만 선택 할 수 있는 곳이다. 하얀 히말라야 고봉들이 하늘을 찌르며 양쪽에서 시위하듯 어깨 걸고 있기 때문이다. 발토르 빙하만이 그 속살로 접근 할 수 있는 유일한 문이었다.




  네팔 히말라야도 역시 그렇다. 카라반은 히말라야 계곡 따라 이루어지는 거니까. 그렇지만 발토르 빙하와 네팔의 다른 점은 극명하게 나타난다. 네팔엔 골짜기 수목한계선까지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에서, 발토르와 전혀 다른 양상을 보여 준다.
  말 그대로 발토르 빙하 초입에 발품 신고를 하면, 그 앞으론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없다. 인간처럼 환경에 잘 적응하는 동물도 없다. 적자생존의 냉혹한 법칙에서 살아남아 번성한 걸보면 안다. 네팔은 장돌뱅이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올라온다. 그러나 발토르 트레킹은 사람이 거주하거나 한철 장사를 위하여 좌판 벌린 사람도 없다. 빙하는 말 그대로 빙하니까. 얼음에 나무가 뿌리를 내릴 수 없듯 이곳은 불모의 땅이다. 그러므로 먹을거리 잠 잘 장비, 모두 포터 등짐 지워 가야하는 길이다. 그런 곳에도 태양은 모질게 빛났고 나는 초록을, 그 나무들이 만들어 주던 그늘을 간절하게 원했었다.  

  그늘이 없는 고덕산 들머리에선, 땡볕에 얼굴이 달아오를 정도로 태양의 폭력이 실감 났다. 그러나 곧 나타난 울창한 숲속에서는 그런 게 없다. 초록터널을 이룬 그늘 길이 이어졌고 발바닥에 닿는 대지의 감촉이 마치 폭신한 카펫을 밟고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 덕고산은 육산이 분명했다. 촘촘한 나뭇잎 사이를 뚫고 불어오는 바람에도 초록이 묻어 있는듯하다. 가파른 길이라 그렇겠지만 숨을 깊게 들여 마신다. 풀냄새, 흙냄새, 그리고 알 수 없는 숲의 향기가 허파를 부풀리더니, 머리끝까지 싱그러운 전율을 남겨둔 체 빠져 나간다.  정말이지 이런 느낌은 오르가즘이다. 마음과 몸이 합일되고 이성적 분별이나 감성적 감각까지, 자연과 하나가 되려는 몸의 반란. 숲이 충만한 자연의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말초신경이 살아 있음에 새삼스레 감사한 마음도 드는 것이다.

  초록은 생명의 색감이다

  발토르 빙하는 언 듯 보기엔 빙하가 아니었다. 여느 산길과 다름없어 보였다. 다만 표현할 길 없는 황량한 이미지와 자갈들이 모여 있는 퇴석지대였을 뿐이다. 그러나 그건 눈이 주는 게으름이고 그런 정보를 믿게 만드는 뇌의 착각이었다. 등산화로 자갈을 조금만 걷어내도 바로 만년빙하의 얼음덩어리들이다. 디디고 밟고 가는 빙하는 아득한 시간을 잉태하고 있는 것이다. 폭이 얼마나 될지 모르는 아득한 넓이의 얼음덩어리. 그 넓은 얼음덩어리 속엔 연극배우가 변장하듯, 개울이 흐르고 바윗돌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고인돌처럼 빙탑 머리에 앉은 바위가 있었다.

  발토르를 아우르는 그 황량함은, 식상한 수식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달이나 화성의 표면처럼 보였고 폭격 당한 폐허처럼도 보였다. 하늘을 찌르고 서있는 하얀 침봉의 위세와, 산 허리께쯤 햇볕에 노출 된 산자락의 황갈색이 주는 고독감. 가끔 무더기로 쏟아 내는 돌사태가 소리가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소음이었다. 죽음처럼 쓸쓸한 빙하엔 새들도 살지 않았다. 당연히 나무가, 녹색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게 정지 된 듯 혹은 죽어 있다고 생각했던 발토르 빙하는, 그러나 살아 있었다. 가늠할 수 없을 얼음덩어리들은 상부의 압력에 의하여 조금씩 아래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발토르는 살아 있는 생명처럼 그 얼굴을 바꾼다. 물론 인간의 조급한 시간이 아니라 자연의 느긋한 시간으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빙하를 거슬러 오르는 길은 주변 산에서 풍화되어 흘러내린 작은 암석 조각과 자갈로 쌓인 너덜지대를 운행하게 된다. 익숙하지 않은 길을 가는 건 고역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삭막한 자갈길. 자고 깨면, 그런 풍경 속을 걷는 것이 발토르 빙하에서의 일이다. 그 길을 가는 건 고행이 틀림없다. 어느 선지식처럼 고행 중 깨달음을 얻기 위한 구도의 길은 물론 아니다. 그러나 황량한 풍경보다 더 쓸쓸한 감정은  어디서 기인 된 것인가. 그 당시 이 주일이 넘도록 발토르 빙하를 오르내리며 그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홀연히 깨달았다. K2 베이스캠프를 돌아 다시 발토르 빙하를 내려 올 때였다. 나무도 풀도 아무 것도 없는 황량한 지대를 헤매다 사람 사는 곳으로 귀환하던 길이었다. 우르드까스라 불리는 야영지에서 먼 눈빛으로 빠유를 발견했을 때였다. 거기 섬처럼 초록색이 떠 있었다. 이틀은 더 가야 할 곳인데도 흐릿한 신기루처럼 보였던 초록에 감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리고 코가 매워졌던 이유는.   

  햇빛을 막으려 쓴 모자는 벗은 지 오래다. 초록 터널로 이어진 고덕산 오르는 길에서 모자는 군더더기였다. 푹신하지만 가파른 된비알을 올라서니 능선이다. 잠시 숨을 고른 후 걸음을 재촉한다. 일행보다 한참을 앞선 것은 힘자랑이 아니다. 이 초록 세상을 온전히 혼자 즐기고 싶은 거다. 그건 욕심이 아니다. 컴퓨터 모니터에 찌든 눈이 맑아지고, 밝아지고, 청량해지는 스스로의 치유를 위한 작은 바람이었다. 눈만 호강하는 게 아니다. 피로한 눈에 녹색이 비타민이라면 영혼에는 무엇이 될까. 능선 따라 휘휘 걷는 길은 물고기처럼 녹색 물결을 헤치며 가는 길이다. 초록 물결은 내 앞에서, 곁에서, 밀려가다 주름을 만들더니 가끔씩 치솟아 오른다.

  곧 나타날 것 같은 정상은 대 여섯 개의 봉우리를 넘어도 나타나지 않는다. 그게 뭐 대수랴. 능선이라 힘도 들지 않고 초록 물결에 떠밀려 가고 있는데. 바람은 그 초록 파도를 일렁이게 하더니, 어디선가 휘파람새의 네 박자 울음을 싣고 온다. 나도 휘휘 휘파람 새 흉내를 내 본다. 사람이 다닌 등산로는 뚜렷했으나 어디쯤 걷고 있는지 표시판 하나 없다. 다시 초록 파도 꼭지점에서 쉰다. 물을 마시며 문득 하늘을 본다. 켜켜이 초록 잎들이 햇빛을 가리고 있다. 아기 손 닮은 초록 단풍 잎. 벙어리장갑 낀 손처럼 둥근 물푸레 나뭇잎. 그 입새 틈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햇빛은 반지르르 윤이 나는 초록 잎에 튕겨 눈부신 포말을 만들어 내고 있다.

  숲에 가려 주위 조망이 되지 않다가, 복음처럼 사위가 터지는 곳에선 발을 멈춘다. 보라! 구비쳐 흐르는 능선마다 진초록 옅은 녹음과 여린 연두색으로 흐르는 거대한 파도를. 제철을 맞아 신명난 초목들의 향연이고 물결이었다.
  드디어 덕고산 정상이다. 정상도 역시 초록 잎들로 막혀 있었다. 가뭇하게 이어지는 산맥을 볼 수 없어 불만이다. 그러나 유월의 덕고산은 초록바다였고 녹색파도였다. 그리고 막막한 녹색 바다에 잠긴 채, 나는 쏴아쏴아- 해조음처럼 들리는 바람 소리를 들었다.

  비또리오 셀라(VITTORIO SELLA)의 사진

  K2로 가기 위하여 발토르 빙하에 들어섰을 때는 녹색의 절절함을 의식하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 붙박이처럼 기억하고 있는 녹색을, 내 뇌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을 테니까. 그러나 먼 길 돌아 되돌아오는 길은 달랐다. 불과 이주일 만에 녹색에 대한 생각이 달라 진 것이다. 작열하는 햇볕을 견디며 채석장처럼 바위와 잡석으로 이루어진 황갈색 색감 속에서, 그저 자고 깨면 걷는 무의식 속이었다.  

  발토르 빙하는 가장 깊숙한 곳에 은밀히 K2를 숨겨 놓았다. 일주일을 걸어 콩고르디아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그때서야 통과의례를 끝낸 나에게, 숨어있던 K2는 비로소 알현할 기회를 주었다.
  나는 빙퇴석 더미에 앉은 채 뚫어져라 그 산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충격이었다. 완전히 독립된 봉우리처럼 홀로 우뚝 솟아 하늘을 꿰뚫고 있던 날카로운 삼각형의 산과 그 꼭지점. 어쩌면 그건 산이 아니고 신(神)이었다. 이 산의 별명 그대로 하늘의 군주였다. 내가 퍼질러 앉은 곳이 해발 오천 미터 가까운 곳이고 공기가 희박하여 그랬을까. K2는 비현실적으로 높았고 아득했으며, 여태 걸어오며 무섭게 치솟았던 주변의 산이 얼마나 작았던 것인가를 웅변하고 있었다.

  브로드피크 베이스캠프를 거쳐 K2베이스캠프에 며칠 머물다 다시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 올 때, 먼빛으로 만난 빠유의 초록색은 눈물이었다. 해발 3500미터에 위치한 그곳은 눈 아래 보였다. 불모의 땅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이 황량한 곳에서 유일하게 나무들이 살아 있고, 계곡에 맑은 물이 흘렀다는 생각에 목도 메였다.

  지금은 파키스탄 정부가 엄하게 금지하고 있다지만, 그 당시 빠유는 포터들이 이곳에서 음식을 만들기 위하여 나무를 베었다. 이곳 위로는 나무나 잡목이 없기에 불을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올라 갈 때는 무심코 본 그 행위는, 그곳에 도착했을 때도 계속 되었다. 나는 포터의 그 칼질에 심한 고통을 느꼈다. 우람한 나무를 깎아내는 칼질이 내 몸을 파고드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올라 갈 때와 내려 갈 때의 마음가짐이 이렇게 달라진 걸 보며 나는 스스로 놀랐었다.

  시간은, 발로르 빙하를 흐르던, 차고 투명한 시냇물처럼 꾸준히 제 갈 길을 갔다. 초록에 대한 각성을 한 그때로부터 벌써 이십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 긴 세월 속에서 가끔 발토르 빙하 생각이 나곤 했다. 그 황량함. 그 원시성. 그리고 하얀 침봉들과 침묵의 세계. 얼마나 인간이 왜소하고 앎이 작은 것인가, 말없이 묻던 백색 산들의 파노라마.

  어느 날 인사동에서 사진전이 열렸다. 길이 육 미터가 넘는 발토르 빙하 사진이었다. 이탈리아 산악인이며 사진가인 비또리오 셀라(1859-1943)의 사진이었고 촬영 된지 백년이 지났다고 했다. 아직 필름이 발명되기 전이라 감광 유리판으로 찍은 것이었다. 빙하를 아우르는 산들의 높이도 측량되기 전이고, 지도에도 공백으로 처리되었던 때였다. 그 사진 앞에서 내 기억은 온전히 되살아났다. 비또리오 셀라는 왜 그곳을 갔을까. 지금처럼 비행기도 없던 시절, 오지중의 오지인 그곳을 왜, 어째서 갔으며 발토르 빙하를 찍었을까.

  상상력 동원한 어느 풍경화에서도 이토록 웅혼하고 장엄한 묘사를 보지 못했다. 백 년 전 모습이나 내 기억 속에 살아 있는 풍경이 똑 같았다. 사진은 나를 빨아드리고 있었고, 내 눈이 가지고 있는 광각을 넘어선 풍경 앞에서 소름이 돋았다. 흑백 사진 앞에서 진저리 친 것은 종교적 경외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 발토르 빙하를 걷던 기억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사진 속 발토르는 나를 부르고 있었고, 고개 끄덕이며 나는 그곳으로 갈 거라는 다짐을 했다.  


  지금이 그 시간이다. 그때처럼 유월이니까. 긴 싸움도 끝나고 애써 그 시간들을 견디어 온 나에게 내가 보너스를 줄 때니까. 가서 세월을 못 견뎌, 나이를 먹은 내 눈에 변하지 않았을 그곳 풍경을 담아 와야 한다.

  행복은 발아래 있다

  고덕산 정상에서 하산 길은 스스로 신이 났다. 어쩌다 그나마 희미한 등산로를 잃어 버렸는데 그건 문제가 아니었다. 내려가는 길 주변엔 산딸기가 지천이었다. 얼마나 따먹었는지 아마 입술이 붉어졌을 것이다. 다시 길을 찾아 내려오다 보니 이번에 산뽕나무에 오디가 까맣게 달려 있다. 횡재를 한 것이다. 산딸기 때문에 붉어진 입이, 이젠 짙은 청색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아무렴 어떨까. 얼마만의 이런 호사를 하는 것인가. 내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 오디는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휘파람 휘휘 불며 내려오는 길 곁엔, 홍싸리 꽃이 그 가볍고 작은 분홍 꽃을 피웠다. 그 꽃을 바라보다가 공연히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산비탈을 망초 꽃이 하얗게 점령하고 있다. 망초 꽃은 잡초다. 농부들이 땀 쏟으며 캐어 내야 하는 잡초다. 퇴비를 주고 가꾸어도 시들거리는 작물에 비해 잡초의 생명력은 얼마나 힘이 센가. 누가 이런 아름다운 자연의 피조물에게 잡초라 이름 했는지 묻고 싶었다.



  하산이 끝날 즈음 큰 계곡을 만났다. 커다란 소에 폭포가 우렁차다. 주위를 둘러  보아도 아무도 없다. 배낭만 벗은 채 그대로 풍덩 뛰어들었다. 폭주 기관차처럼 달려온 뜨거운 몸에 금새 소름이 돋는다. 행복은 분명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발아래 있고, 등짐에 있으며 생각 속에 있다. 소에 담긴 물색도 주변의 녹색을 담고 있다. 하루 종일 함께 했던 녹색이 흐물거렸던 의식을 깨어나게 한 것일까. 스스로 묻고 답하며 홀로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물에서 나와 다시 하산 길로 접어들었을 때, 이번엔 다래 덩굴이 보인다. 덩굴엔 물고기 알만한 다래가 여기저기 쪼르르 달려있다. 발토르 빙하에 녹색 점처럼 찍혀 있는 빠유를 보고 돌아 올 가을엔, 요 다래가 제법 자라 호두 알 만큼 커져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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