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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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20.04.10 09:35 조회수 210 추천 0
제목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일곱 말씀(요19:30)  
 
성경본문:요한복음 19장 30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첫번째 말씀- 
아버지여,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 함이니이다.(눅23:34) 

다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서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그렇게 생각처럼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고, 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 대해서는 미운 마음이 싹트기 쉽다. 

1).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고통 가운데 내어 주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는 그 가운데서 아버지여! 하고 부르셨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고통 가운데 내어 주셨지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마3:17)이라고 하시는 것처럼, 
나는 비록 지금 불만에 가득찬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 것 때문에 오늘도 나는, 
아버지여! 하고 부르짖으며 하나님 앞에 나아올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과의 긴밀한 교제가 있어 야 하는 것이다. 

2). 예수가 누구인가를 분명히 알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바로 알지 못하면 잘못 믿고 잘못 행할 수 있는 것이다.  
자기 생각대로 자기만 옳은 줄 안다.
무지하면 죄를 범할 수 있다. 

3). 용서는 계속적이다. 
예수는 십자가에 뉘어 지면서, 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 
십자가를 들어 땅 구덩이에 박아 세울 때, 
마지막으로 운명하실 때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셨다. 
용서는 끝까지 하는 것이다. 
이제는 더 참을 수 없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4). 주님의 이 용서의 간구가 있었기에, 
오늘도 나는 그 놀라운 은혜를 감사하며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 주님의 용서가, 
죄와 더불어 사는 나로 하여금 주님 앞에서 회개의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두번째 말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1). 예수님은 죄인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  
두 강도 사이에서 나란히 십자가에 달리셨다. 기회는 동시에 주어졌다. 
한강도는 예수님을 욕했고 다른 강도는 예수님께 자비를 구했다.
참으로 좋은 기회를 놓지는 것은 비극이다.
 
2).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예수를 믿은 강도는 구원함을 받았다. 
무엇을 보고 믿었는가? 
예수의 기적 행함이나 능력 있음을 보고 믿은 것이 아니다. 
예수가 구원자라고 하는것, 
그가 유대인의 왕이라고 붙여저 있는 팻말을 보고 믿은 것이다. 
믿음의 근거는 말씀에서 찾아야 한다. 

3). 강도는 은혜로 구원함을 받았다. 그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다. 
십자가에 매어 달려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그가 구원 받을 길이 전혀 없는 것이다.  
나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했으니... 하는 자만은 금물이다. 
내가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이것이 감사한 것이다. 
자랑할 아무것도 하나님 앞에는 없다. 

-세번째 말씀-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1). 누가 왜 십자가에 가까이 있는가? 
4명의 로마 군병들은 의무 때문에 있었고, 
요한과 4명의 여자들은 애정 때문에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악귀에 묶여 있었다가 풀려난 사람이다.(눅8:2).  

예수님은 나에게 빛을 주시기 위해서 어둠속으로 가셨으며, 
내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이다. 
나로 하여금 천국의 부요함을 맛보게 하시기 위해서, 
가난한 자 중 가난힌 자가 되셨다.  

막달라 마리아가 십자가 곁에, 무덤 옆에 있었던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구원의 은총을 입은 자는 예수님 옆에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가 예수님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2). 주님께 가까이 있는 것은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를 잃어버린 어머니에게는, 
요한이 있음으로 위로가 되는 것이다. 
요한은 예수님 대신 예수의 어머니를 돌보아 드려야 하는 것이다. 
요한은 주님의 역활을 대신 맡았기 때문에, 
마리아를 사랑하고 돌볼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님과 가까이 한다고 하는 것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위해서 살고,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관계가 이루어진 형제를 사랑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네번째 말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십자가의 괴로움은 
어두움과, 외로움과, 사람들의 무지함으로 부터 오는 오해였다.  
주님은 어두움 속에 3시간동안 세워져 있었다. 
버려진 것 같은 어두움과 고립된 상태에서 나온 절규였다.  
우정도 없고 교제도 없다. 따르던 무리들도 모두 떠나갔다. 
이것이 바로 지옥의 모습이다. 

이러한 암흑과, 고독, 그리고 모든 오해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결코 그 아들을 버리지 아니 하셨다. 
비록 때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내가 예수님 안에 있는 한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문제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다섯번째 말씀-
내가 목마르다(요19:28)  

예수님도 어린아이로 태어나셨고 젊은이로 성장하셨으며, 
배고프면 잡수셨고, 목마르면 마시셨으며, 피곤하면 주무셨다. 
때로는 울기도 하셨고, 사람들에게 매 맞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예수님도 나와 같은 의식과 경험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나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기도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나의 고통을 아시기에 나의 위로자가 되실 수 있는 것이다. 
목 마름은 모든 인생의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것의 완전한 해결은 예수님과의 만남으로만 가능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계7:16).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6:35) 

-여섯번째 말씀-
다 이루었다 (요19:30)

1). 십자가는 수치와 고통과 죽음의 상징이다. 대속의 완성이다. 
십자가 상에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완성하셨다.
완성에는 때로 수치와, 고통과 죽음이 따를 수 있다. 
어떤 면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무엇이 완성되는 것이다.  
힘 안들이고 쉽게 완성되는 일이란 흔치 않다. 
출생의 기쁨은 해산의 고통뒤에 오는 것이다. 

2). 인간은 누구도 다 이루었다고 말할 수 없다.  
다만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에 최선을 다해 충성할 것 뿐이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오직 주님께만 합당한 말씀이다. 
그는 십자가 희생으로 구원사역을 완전히 마치셨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아시고, 
끝까지 순종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다.  
다 이루어 놓으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만이 나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일곱번째 말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모든 사람은 살기위해 투쟁한다. 
그러나 그것은 죽음을 향해 가고있는 것이다.  
그 시간은 하나님 만이 아시고 계신다.  
믿고 구원을 얻은 사람은 이것을 알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에게 마지막 순간이 주어진다고 하면 나는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 

1).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다. 
세상에 있는 인간은 누구도 이것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이것을 대비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2). 예수님은 담대하게 죽으셨다.  
그것은 그가 항상 아버지와 교제하고 있었으며, 
아버지의 약속을 신뢰했고, 아버지께 완전히 맏기셨음으로 가능한 것이었다. 
나에게는 다가오는 죽음을 담대히 맞이할 수 있는 어떠한 보장이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죽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생명을 던지시기 전에  원수를 용서하셨고, 
회개하는 강도를 구원하셨으며,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도록 제자들에게 부탁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일을 다 이루시고, 
영혼을 아버지께 부탁하시고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얼마나 이세상에 더 두실 것인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오늘 용서하고, 오늘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면서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구원의 은혜 가운데로 행하며, 서로 돌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이 맏기신 일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내 영혼을 기꺼이 아버지 손에 부탁하고 죽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승리의 삶인 것이다. 
이와 같은 십자가의 삶이 있을 때, 
그에게 부활의 영광이 주어질 것이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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