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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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20.04.29 11:04 조회수 91 추천 0
제목
 덮어주는 사람(03:20-28)  
 
로마서 3장 20-28절. 

예수께서 어느 날 아침에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사람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한 여인을 끌고 들어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기세가 등등했고, 
이 여인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처럼, 
겁먹은 표정을 하고 고개를 푹 늘어뜨린 채 끌려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끌고 온 여인을 사람들 가운데 세워 놓고 예수께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간음했습니다.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끌고 왔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율법을 통해서, 
이런 사람은 돌로 처서 죽이라고 교육을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당시의 율법에 의하면, 
음행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목적이, 
그 음행한 여인을 처벌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랑을 말씀하셨고, 용서를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예수에 대해서, 
자칫하면 율법을 훼손하게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자로 여겼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꼬투리를 잡아서 제거하려는 속셈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를 곤경에 빠뜨리려는, 
고도의 계산이 깔려 있는 질문이었습니다. 
만일 ‘용서하라’ 하면, 예수는 율법을 범하는 죄인으로 몰아붙이고, 
반대로 ‘돌로 치라’ 하면, 
그가 지금까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이 위선이고 허구임을 증명됨으로,
예수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저들의 말을 들으시고, 
한참 동안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가 몸을 꾸푸려 손가락으로 땅에다가 무언가를 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성질 급한 저들은 빨리 대답하라고 재촉을 합니다. 
드디어 예수께서 침묵을 깨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8:7). 

떠들던 군중이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더니 한 사람 두 사람 손에 들었던 돌을 버리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른으로부터 시작해서 젊은이들까지 모두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저들은 죄를 들추었으나, 예수께서는 그것을 덮으셨습니다. 

누가 누구를 정죄(定罪)할 수 있습니까? 
죄 없는 사람만이 죄 있는 사람을 정죄할 수 있습니다. 
죄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정죄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사람을 정죄할 수 있습니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모두 죄인인데 누가 누구를 정죄한단 말입니까? 
‘나는 죄 없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거룩하게 여기고, 스스로 의롭게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평가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거룩하다 여기고, 다른 사람이 의롭다 여겨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게 여기시고, 하나님이 의롭다 여겨 주셔야 되는 것입니다

저들은 생각하기를, 
자기들 보다 거룩하고 자기들 보다 의로운 사람은, 
세상에 없는 줄로 알고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일 뿐임을 성경은 말씀합니다. 
예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마5:28)라고 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이미 살인하는 자(요일3:15)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 
여기에서 벗어날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3:10). 
그러니 누가 감히 ‘나는 죄인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목사님이 일본에 가서 어느 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죄인임으로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 구원함을 받으라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사람이 불쾌한 낯빛으로 그 목사님께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 나는 평생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죄 안 지으려고 노력했고, 
재판 받아 본 일도 없으며, 감옥에 갈 만한 죄를 지은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싸잡아서 모두 죄인이라고 말하십니까? 
그러니 이제부터는 아무나 보고 죄인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그 목사님은 조금 후에 그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독사(毒蛇)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물론 많이 보았지요”.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만일 그 뱀이 평생 아무도 물지 않았다면 그 뱀은 독사가 아닙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그래도 독사는 독사지요”. 

목사님이 또 물었습니다. “아무에게도 해(害)를 주지 않았는데 왜 독사입니까?” 그 사람이 대답합니다. “몸 안에 독이 들어 있으니까 독사지요”. 
그래서 이 목사님이 말하기를, 
“비록 물지 않았어도, 몸안에 독이 있으므로 독사는 독사인 것처럼, 
비록 평생 남 보기에 죄 지은 일 없어도, 
선생님의 몸 안에 죄성(罪性)이있기 때문에 선생님은 죄인입니다” 했습니다. 
그제서야 그 사람이 자기도 역시 죄인임을 고백(告白)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룩한 곳입니다.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할 것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사35:8) 
죄를 가지고는 거기에 갈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죄(罪)’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가리움을 받아야 합니다. 

누군가 이 죄를 덮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죄가 드러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노아’는 당대에 의인으로 존경받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큰 홍수(洪水)를 겪은 후에 아들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특별히 포도나무를 많이 심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게 되었고, 
결국 어느 날인가 포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그만 취(醉)하고 말았습니다.  
장막에 들어가서, 더운 김에 옷을 다 벗어 버리고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노아의 세 아들 중 ‘함’이 이것을 보았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아버지의 벗은 몸을 덮어 주었으면 좋았으련만, 
‘함’은 그렇게 하지 않고 나가서 형제들에게 떠들어댔습니다. 
이 말을 들은 ‘노아’의 다른 두 아들, ‘셈’과 ‘야벳’은, 
덮을 것을 준비하여 뒷걸음으로 장막에 들어가 아버지에게 덮어 드리고 나왔습니다. 

이 사건(事件)으로 인해서 뒷날 셈과 야벳은 큰 축복의 길로 갔으나, 
함은 그렇지 못한 것을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창9:18-27) 
한 아들은 아비의 부끄러움을 들어내었으나, 
다른 두 아들은 아비의 부끄러움을 덮었습니다. 
믿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세상에 너무 취해 있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됩니다.
비록 그럴지라도, 예수님 앞에 나아오면 예수님은 모두 덮어 주십니다. 

덮는 마음이 귀한 것입니다. 덮어주는 마음이 복 받은 마음입니다. 
여러분은 다른 이의 잘못을 들어내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덮어주는 사람입니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들어내려 하기 보다는 덮어주려 할 때 은혜가 있습니다. 
덮어주는 마음은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덮어주는 마음은 아끼는 마음입니다. 

서로 덮어 줄 때 가정이 평안합니다. 서로 덮어 줄 때 교회가 평안합니다. 
왜 덮어 주지 못하고 자꾸 들추어내는 것입니까? 
그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가 있기 때문입니다. 내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러는 미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사랑으로 감싸고 덮어주는 사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정죄하고 심판하는 것은 법(法)을 맡은 자들이 할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마9:13) 

어느 소년이 강아지를 한 마리 갖고 싶었습니다. 
날마다 애완동물 가게 앞에 가서, 
유리창 너머로 귀여운 강아지들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그리고 용돈을 아껴서 열심히 모았습니다. 
‘이제는 한 마리 살 수 있겠지’ 속으로 생각하고는 애완동물 가게로 갔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 모은 돈을 모두 꺼내어 가게 주인에게 보여주면서, 
강아지를 한 마리 살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한참 돈을 세던 주인이 말했습니다. 
“참 안됐다. 강아지 한 마리를 사려면 9불이 있어야 하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돈은 모두 2불 50전 밖에는 안되는구나”. 
소년은 실망스러운 얼굴로 멍하니 강아지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가만히 보니, 소년이 불쌍했습니다. 그래서 말했습니다. 
“네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니 한 마리 골라 보아라. 
특별히 네게만 2불 50전에 한 마리 줄테니까”.  
소년은 너무 기뻣습니다. 
그래서 얼른 자기가 좋아하는 강아지를 한 마리 가슴에 안고 나왔습니다. 
그 때, 주인이 말했습니다. “얘야, 그 강아지는 절름발이 강아지란다. 
다른 것을 골라 보렴”. 

그 말을 들은 소년이 빙긋이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의 한쪽 다리 바지를 들어 올리며 말했습니다. 
“아저씨, 제 다리도 하나는 의족(義足)이어요. 
저는 저와 닮은 이 강아지가 더 좋아요.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좋은 친구가 될 거예요”. 
죄인이 죄인을 덮어 주지 않으면 아무도 덮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 죄인을 덮어 줄 의인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죄인을 사랑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은 덮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로 덮어 주시지 않고는 의롭다 여김을 받을 육체가 없습니다.(롬3:20) 
내게 비록 부끄러운 것이 있고, 
피와 같이 붉은 죄, 진홍같이 붉은 죄가 있다 할지라도,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보혈(寶血)로, 
흰 눈같이 양털같이 깨끗하게 덮어 주시는 그 사랑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다윗은 이 은혜로,
“주의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으셨나이다."
하고 노래했습니다.(시85:2).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의 의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갈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인간 스스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결코 이를 수 없는 것입니다.(롬3:23) 

그런데, 이 멸망 받을 죄인을 하나님의 영광에 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모든 잘못된 것들을 덮어 주시고, 
받아 주신 것입니다. 지난 죄를 눈감아 간과(看過)해 주신 것입니다.(롬3:25) 
이 큰 은혜로 말미암아 항상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하나님이 여러분을 용서하시고 덮어 주신 것처럼, 
여러분도 이웃의 잘못을 사랑하고 덮어주는, 아름다운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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