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의 골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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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작성자  목동 작성일  2020.05.20 15:31 조회수 70 추천 0
제목
 새로운 윤리(막 3:31-35)  
 
마가복음 3장 31-35절

예수께서 십자가 형틀에 못박혀 갈보리 언덕에 세워지시고 난 후,  
아직 운명하시기 전에, 
예수의 어머니와 이모, 그리고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두 사람의 여인들이 그 십자가 곁에 서 있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이 박혀 매달린 채로 고통을 참으시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는 어머니와 또 함께 있는 여인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셨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예수께서 입을 열어 말씀하셨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요19:26) 

그리고 나서 그 주위에 있던 제자에게 말씀하셨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7).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예수의 어머니를 자기 집에 모셨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예수의 어머니는 마땅히 거할 곳이 없었던 것 같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장남이 되어 가지고 부모님 한번 제대로 편히 모시지 못하셨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돌아다니다 보니,  
사랑하는 어머니와 오손 도손 예기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 
그러다가 이제 겨우 서른 세살의 젊은 나이로, 
십자가의 형틀에 대역 죄인의 죄목을 달고,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참담한 모습이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얼마나 한이 클 것인가? 
예수께서 어머니를 보고 할 수 있는 말은, “저는 이렇게 갑니다.” 이 말 뿐이었다.
어머니가 얼마나 불쌍하셨을까? 어머니를 누구에게 부탁한단 말인가? 
주위를 돌아보니 요한이 있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말씀하셨다. 
“요한아, 내 어머니를 잘 부탁한다”. 이것은 지극히 인간다운 모습이다. 
예수님은 효자셨다. 

어떤 이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 
제 부모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기독교를 잘못 이해한 것이고, 
잘못된 신앙인의 모습만을 보고 하는 말이다. 

기독교에는 근본적으로 효도의 사상이 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20:12)
이는 축복의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엡6:3)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이웃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하거늘, 
하물며 부모님이겠는가?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복 받는 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를 공경하는 것인가? 
성경은 그 방법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내 아들아 네 아버지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머니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잠1:8-9) 

여행을 많이 보내 드리면 되는 것인가? 용돈을 듬뿍 드리는 것인가?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아비의 훈계를 듣는 것이 아비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어미의 법을 떠나지 않는 것이 어미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아무리 부모에게 호의 호식을 누리시게 할지라도, 
부모의 마음을 슬프게 하는 것은 효도가 아니다.
성경은 말씀한다.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잠 23:22)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잠 23:25)   

요즘 같으면 효부 상을 받을만한 여인이 성경에 있다. 
나오미라는 여인은 남편을 따라서 고향을 떠나 객지로 갔다가, 
남편과 두 아들을 잃었다. 졸지에 시어머니와 두 며느리가 과부 신세가 되었다.
그들로서는 객지생활을 더 이상 계속하기가 힘들어졌다. 

나오미는 어느 날 두 과부며느리를 불러 놓고 말했다. 
“나는 이제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 
나 따라가 봐야 고생만 더 될 터이니 너희들은 나 따라오지 말고, 
팔자 고쳐서 좋은 사람 만나 새 삶을 살아라.” 

그 말을 듣고 큰 며느리는 나오미의 곁을 떠나 제 갈 길로 갔다. 
그런데 둘째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와 함께 가겠다고 남았다. 
따라오지 말라고 계속 권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룻’은,  
시어머니와 남은 생애를 같이 보내겠다는 자기의 결심을 굳히고 말했다.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 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 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룻 1:16)

나오미의 가슴 속에서는 하염없는 고마움의 눈물이 흘렀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런 ‘룻’에게 복을 주셨다. 
성경의 말씀은 진리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는다. 
기독교는 절대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배제하는 종교가 아니다. 

이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딴 길로 갔다. 
옛날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고르반’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어떤 사람이 부모를 잘 봉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많은 물질을 하나님께 바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부모를 제대로 봉양할 수가 없게 되었는데, 
이런 경우 주위 사람들은 그 사람을 향해서 손가락질을 하게 된다. 
세상에 한 분 밖에 아니계시는 부모님을 그렇게 모셔도 되는 것이냐고, 
이런 경우 그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너무 많이 드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이해해 주어야 했다. 이것이 고르반 법‘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법을 악용해서, 
평소에 부모를 잘 봉양하지 않다가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게 되면, 
얼마의 물질을 성전에 바치고는, 
‘고르반’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핑계를 대었다. 

예수께서는  이것이 옳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했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막 7:10)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나는 모두 하나님께 드렸기에(고르반) 드릴 것이 없다 하고,(막 7:11)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것도 하여 드리지 않음으로,(막 7:12)   
전통적으로 잘못된 유전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고 있다고 하셨다.(막 7:13)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부모에 대한 한층 더 높은 차원의 효도를 말하고 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이웃의 부모도 내 부모처럼 존경하라는 말씀이다. 
이웃의 자녀도 내 자녀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이다.

내 부모가 중요하면 남의 부모도 중요하다.  
내 부모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남의 부모도 생각해야 한다.
내 자식만 귀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남의 자식도 귀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두 형제요 자매다. 

하나님의 뜻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형제의 모친이 내 모친이다. 남의 자녀도 내 자녀나 같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녀를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살아야 한다.

(옹달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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