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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소식 (미국, 및 해외)
작성자  kaac 작성일  2018.11.08 20:10 조회수 182 추천 0
제목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히말라야 간잘라피크 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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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원정 _ 발달장애 청소년들의 히말라야 간잘라피크 등정기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정상에 서다

 

경기도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산맥 간잘라피크(해발 5,675m) 등정에 성공했다. ‘2018 경기도 발달장애 청소년 극기캠프 히말라야 원정대’의 박태원 대장을 비롯한 19명의 극기캠프 대원들은 4월 27일 새벽 하이캠프(4,500m)를 출발, 오전 7시쯤 간잘라피크 등정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글 · 윤미연(발달장애 청소년 극지캠프 지도자)  사진 · 원정대

 

 

박태원 대장이 이끄는 ‘2018 경기도 발달장애 청소년 극기캠프 히말라야 원정대’는 발달장애 청소년 아홉 명과 산악인과 봉사자들이 1대 1이 되어 동행했다. 원정대를 이끈 박태원 대장은 고산 경험이 풍부한 베테랑 산악인으로 아이들의 꿈을 위해 오랫동안 헌신적인 노력을 해왔고, 스텝들은 지리산과 한라산은 물론 동남아시아 최고봉인 키나발루 등정 및 고산 대비 훈련을 하는 등 발달장애 아이들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힘써왔다.

 

장애라는 편견을 깨기 위해 히말라야에 도전장

간잘라피크 등정은 아이들에겐 대단한 모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까닭은 다른 장애인들에게 장애라는 편견을 깨고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다는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은 정복하는 게 아니라 인연을 맺는 것이라고 했다. 필자 역시 산과 인연을 맺어가는 동안 경기도 발장장애 청소년들과의 귀한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들의 꿈, 히말라야 간잘라피크 등반 도전에 함께할 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여정은 히말라야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네팔 트레킹의 꽃이라 불리는 랑탕 코스로 카트만두에서 차를 타고 샤브로베시로 이동, 2박 3일간 걸어 강진곰파에 도착한 후 베이스캠프와 하이캠프를 거쳐 5,675m 간잘라피크를 등반하는 16일의 대장정이다.

4월 17일 드디어 네팔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날 랑탕 트레킹이 시작되는 샤브로베시로 출발했다.

도로가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9시간 넘게 달려야하는 험한 산길이었다. 마치 롤러코스트처럼 아찔한 길을 따라 히말라야 품속으로 가는 길은 그리 쉽지 않았지만 다음날부터 걸어야 하는 여정에 비하면 차라리 쉬운 일에 속했다. 샤브로베시는 차가 들어갈 수 있는 마지막 마을로, 트레킹과 등반에 도움을 줄 셰르파와 짐을 날라줄 포터, 음식을 담당할 쿡이 함께하게 된다.

첫날 트레킹은 샤브로베시(1,467m)에서 라마호텔(2,340m)까지다. 고도가 높지 않아 고산의 부담은 없지만 15km라는 긴 거리를 걸어야했다.

처음 발을 들여놓은 히말라야의 풍경은 설렘 그 자체였다. 빙하가 녹아내려 흐르는 옥빛 계곡과 그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울창한 나무들이 트레킹 코스를 따라 서있고 바람에 나부끼는 타르초는 ‘아, 우리가 히말라야에 와 있구나’를 절로 느끼게 해주었다. 또 걷다가 로지를 만나면 차를 마시면서 쉬곤 했는데, 이는 랑탕 트레킹의 또 다른 즐거움이기도 했다. 그렇게 뱀부를 거쳐 무사히 라마호텔에 도착했다. 이날부터 대원들은 고소예방을 위해 머리 감는 것과 샤워가 금지되었고 1리터의 날진에 든 물로 씻고 마시는 걸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도 불편을 내색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이루어야할 목표가 아직 저 위에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천상의 화원이나 다름없는 랑탕 마을 가는 길

4월 20일, 라마호텔을 떠나 해발 3,430m에 위치한 랑탕 마을로 출발했다. 고도 적응을 위해 천천히 걷고 물을 많이 마시라는 대장의 당부도 있었다. 랑탕히말의 최고봉 랑탕리룽(7,256m)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네팔의 국화 랄리구라스와 야생화가 천상의 화원을 이루고 있었다. 함께 걷던 최상규 선생이 랄리구라스가 우리나라 고산에서 피는 만병초와 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들으며 ‘히말라야의 봄도 우리나라의 봄과 다름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가로이 풀을 뜯는 야크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그렇게 랑탕이 품고 있는 히말라야는 그동안 춥고 삭막할거라고만 짐작했던 내 생각과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트레킹을 이어가던 중 덕우의 발걸음이 느려졌다. 출발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덕우는 고도가 올라가자 힘들어했다. 덕우를 도와주던 김철수 선생이 아이가 충분히 쉴 수 있도록 묵묵히 뒤에서 지켜주셨는데, 그동안 수없이 많은 훈련과정에서 쌓았던 정과 신뢰가 눈에 보였다.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들과 떠나오지 않았다면 겪어보지 못했을 일들은 힘들어도 다시 걷게 해주는 힘이 되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렇다고 늘 아름다운 순간과 마주치는 것만은 아니었다. 2014년 네팔 지진으로 인해 매몰된 랑탕 마을 위를 지날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는 여전히 참혹했고 그 위를 지나가는 게 너무나 힘들었다. 자연의 경외를 새삼 다시 느꼈다.

4월 21일, 트레킹의 종착지인 강진곰파(3,850m)로 출발했다. 이날은 방현수 대원의 생일이여서 아침에 미역국이 나왔다. 집에 계시는 현수 엄마는 아이를 이곳에 보내놓고 오늘 아침 어떤 마음이었을까. 같은 엄마의 심정으로 괜히 콧날이 시큰해지는 아침이었다. 랑탕 마을을 출발하면 티벳 불교의 상징인 마니월과 초르텐을 지나게 되는데 한발 한발이 조심스러웠다. 마니월을 만나면 반드시 오른쪽에 둔 채로 지나가야 하는데, 그래야 행운이 찾아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순례자의 마음으로 옴마니 반메훔을 되새긴다. 이 여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기를….

강진곰파로 향하는 길은 네팔인들이 신성시 여긴다는 강첸포(6,387m)를 바라보며 걷는 길이다. 푸른 물이 묻어날 듯한 하늘도 머리에 만년설을 인 봉우리들도 쏟아질 듯 가까운 길이다. 수목한계선을 지나고나니 땅도 척박해지고 산소도 줄어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벼운 고산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힘이 되는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강진곰파에 도착했다. 로지에 짐을 풀고 다이닝룸에 올라갔을 때 박형준 대원이 심한 설사로 주사와 수액처방으로 치료 중이었다. 평상시 산행에서는 늘 앞장서서 걷고 파이팅이 넘치는 박형준 대원인데 고산 등반은 힘이 들었나보다. 가벼운 장염 증세와 열로 인해 링거를 맞아야했지만 다행히 크게 악화되지는 않았다.

오후 휴식이 끝나고 저녁을 먹고는 방현수 대원의 생일파티가 열렸다. 대장과 세심한 한영애 선생의 배려로 누구보다 특별한 열아홉 살의 생일잔치를 히말라야에서 맞이한 것이다. 현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즐거운 추억이 되었다.

 

가슴 벅찬 풍경에 구토와 고소증도 이겨내

둘째 날은 고소적응을 위해 강진곰파에서 강진리(4,400m)를 오르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박태원 대장은 박형준 대원에게 몸이 안 좋으니 로지에서 쉬라고 했는데, 박형준 대원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대장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이닝룸을 내려갔다. 나 같으면 그냥 쉬었을 텐데 박형준 대원에게 히말라야는 어떤 의미인걸까? 문득 속초 국립산악박물관에서 형준이가 자신의 꿈을 산악인이라고 썼던 게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정말 산을 사랑하고 이 도전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진리의 리(Ri)는 낮은 언덕을 뜻하는 단어지만 4,000m대의 오르막길뿐인 강진리를 향해 오르는 일은 무척 고됐다. 아이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저 그냥 천천히 산의 높이에 몸을 맡기고 적응시키는 것뿐이었다.

묵묵히 제 걸음으로 오른 아이들과 함께 강진리 정상에 올랐다. 웅장한 어깨를 마주하고 온 세상을 굽어보는 히말라야의 설산과 그 사이로 생전 처음 보는 빙하의 모습은 글로도 사진으로도 표현하기 힘든 벅찬 풍경이었다. 강진리에서 하산한 후 점심을 먹고는 오후 휴식이 이어졌다. 히말라야에 오기 전 나는 히말라야 마을에서 보내는 시간에 대한 낭만을 꿈꿨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내 헛된 상상에 불과했다. 로지 내에서 잠깐 움직이는 것도 숨이 찼고 고소로 인한 구토 증세로 속을 달래느라 힘들었다. 아이들 역시 말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자신과의 싸움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각자 힘든 와중에도 힘을 낼 수 있었던 건 역시 팀원들 덕분이었다. 아이들 때문에 웃을 수 있었고 힘내라고 파이팅 해주던 스텝들 때문에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다음날엔 간잘라피크 등반을 위한 주마링 연습을 했다. 셰르파들이 강진리 언덕 부근에 로프를 매놨고 아이들은 선생들과 숙련된 셰르파들의 도움을 받으며 훈련을 이어갔다.

4월 24일 드디어 간잘라피크 등반의 기점이 되는 베이스캠프로 떠났다. 설산의 모습은 더욱 선명해지고 책장을 넘기듯 풍경은 한순간 바뀌었다.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은 글로도 사진으로도 다 담아낼 수 없는 감동이 있었지만 걸음만큼은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다. 히말라야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기 때문이다. 이 고비를 훌륭히 이겨내는 길은 그저 묵묵히 견뎌내는 것임을 알기에 나도 일행도 모두 참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그렇게 마주한 베이스캠프 하얀 설산 아래 노란 텐트가 옹기종기 설치돼 있는 모습은 뭉클함 그 자체였다.

4,800m 고도의 베이스캠프에서 고산증세에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부쩍 늘어났다. 대원 중에 가장 나이가 어렸던 박종천 대원은 산소포화도가 많이 낮아져 밤새 산소를 마시라는 대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로지에서의 생활과는 또 다른 베이스캠프에서의 생활은 추위와 고산병을 이겨내야 하는 힘든 시간이었다.

 

새벽 2시, 하이캠프에서 어둠 뚫고 정상으로

다음날은 하이캠프까지 가는 훈련을 위해 빙벽화를 신고 하이캠프 3분의 1지점까지 올라갔다. 그곳에 크램폰과 안전벨트를 데포하고 다시 하산했다. 오후엔 베이스캠프에 눈이 내렸는데, 히말라야에서 처음 보는 눈 내리는 풍경은 울렁거리는 속을 잊게할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처음 겪는 모든 것들이 힘에 부쳤지만 참아낼 수 있었던 건 이곳은 히말라야고 지금 나는 그렇게 바라던 히말라야에 와 있다는 그 사실 하나였다.

하이캠프(5,000m)로 출발하는 날 베이스캠프에는 고소 증세로 몸 상태가 안 좋은 5명의 아이들과 김진철 선생이 남기로 하고, 박 대장의 판단 하에 박형준, 박종혁, 김연수, 방현수 대원과 남은 스텝들만 하이캠프로 출발했다. 여기서 멈췄다 해도 패배자가 아니었다. 고산에선 무리해서 오른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며 자연을 거스르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하늘은 푸르다가도 금세 표정을 바꾼다. 눈보라가 갑작스럽게 몰아쳤고 바위산에서 쿵하고 간간히 들리는 낙석소리는 지나온 길보다 더 고된 길이 남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산처럼 거칠던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고, 사방이 설산으로 감싸고 있는 하이캠프에 도착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이 왈칵 쏟아졌고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의 편견을 깨고 순백의 정상에 서다

4월 27일 새벽 1시, 밖은 분주했고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차를 마셨다. 나는 올라가지 않겠다는 다짐도 잊어버린 채 차를 마시고 흰죽을 먹었는데, 저절로 산에 가야겠다고 몸이 반응하는 게 우습기도 했지만 한편 고맙기도 했다. 출발시간은 2시. 늦어도 9시까지는 정상에 올라가야 한다고 대장이 말했다. 얼지 않도록 텐트 안에 두고 잤던 빙벽화를 신고 셰르파의 도움으로 크램폰과 장비를 착용한 뒤 대장과 아이들의 뒤를 따라 하얀 눈 사이를 걸었다.

전날처럼 바람이 불진 않았지만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산의 공기는 상상 이상으로 차가웠고 추위와 두려움에 머릿속은 텅 비고 온몸은 마비가 되는 듯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도처에 있었지만 저 멀리 묵묵히 자신의 도전을 이어나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등대삼아 힘든 발걸음을 내딛었다.

어둠이 걷히고 그렇게 높아보이던 순백의 아름다운 설산이 눈앞에 보였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설경은 아름다운 만큼 위험하다. 곳곳에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숨 막힐 듯 날카로운 칼날 능선에서 전날 셰르파들이 설치한 고정로프를 잡고 거친 숨을 내뱉으며 올라 드디어 5,675미터의 간잘라피크 정상에 도달했다.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 구름처럼 흐르지 않는 순간은 없다. 끝이 보일 것 같지 않았던 고통의 시간도 결국엔 지나가고 지상보다 천상에 가까운 이곳에서 그동안 소란했던 마음이 비로소 평화로워짐을 느꼈다. 누구도 말은 없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지 않았을까. 생애 가장 큰 고비들이 흘러갔음을….

도전에 성공한 자랑스러운 박형준, 박종혁, 김연수, 방현수 그리고 그 순간에 내가 함께했다는 것이 너무나 기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리고 힘겨운 고산증을 이겨내며 베이스캠프까지 함께해준 온정호, 김덕우, 강웅, 이준희, 박종천 대원들도 자랑스러웠다. 또한 박태원 대장을 비롯하여 팀닥터 김진철 박사, 박용운, 최상규, 한영애, 김철수, 윤창한, 김상균, 배영미, 윤미연 등 국내 스텝들의 노고와 셰르파, 포터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이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하산 후엔 다시 강진곰파로 이동하여 대원들은 물론 그동안 우리를 위해 헌신적으로 도와줬던 셰르파와 포터, 키친보이까지 모두 함께 간잘라피크 등정 성공에 자축하며 그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축하 파티를 열었다. 정말 고마운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짧은 인연이지만 긴 여운으로 오래오래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물리치고 또 다른 장애인에게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바라며 시작된 9명 아이들의 도전은 아름답게 마무리되었다. 정상이 길의 끝이 아니라 길이 끝나는 곳에 또 다른 길이 시작되듯 인생에 또다시 넘어야할 높은 산이 나타나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걸었던 그 순간처럼 잘 이겨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들이 내딛는 걸음걸음이 새로운 희망이 되길 바란다. “나마스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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