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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aac 작성일  2018.12.20 16:19 조회수 249 추천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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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시작했다 (작가 신영철 과 안나님간 서신편)  
 


난 사랑을 시작했다. 
기러기 아빠답게 바쁜 날개 짓으로 내 가족을 보듬어야 하는데, 또한 정말로 바쁜데 사랑운운은 가당치 않은지 모르겠다.
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몇 일 전 아침 이 메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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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1

그간 별고 없으셨지요?
오랫만에 홈페이지에 들어 가 봤더니 [동백꽃]이야기가 있더군요. 너무 반가워서 대번에 읽었지요. 여전히 멋진 매력 만점 나마님이시더군요.

저는 내일 산악회 따라서 광주 무등산에 갑니다. 그리고 산행 후에 저 혼자 해남으로 내려 가서 땅끝 마을에서 자고..

그리고 22일부터 시작해서 통일 전망대까지 갑니다.
혼자서 타박타박 걸어서 2000리 길을 갈 겁니다. 

글세 말 그대로 땅 끝 마을 가서 절망을 털어 버리고(가는게까지 갔으니까^^) 올지 모르겠어요. 모두 다 저를 희귀 동물 보듯해요. 이 나이게 그딴 짓한다구요. 

다녀 와서 소식 드릴게요. 또 모르죠. 어느 시골에 피씨방이라도 있음 들어가서 몇 자 소식 전할는지... 걷다가 일렁이는 보리밭이라도 보면 눈물 펑펑 쏟을 것 같아요.
동해 바다에 이르면 거기다가 서리서리 맺힌 한을 훌훌 털어 버리고 텅 빈 가슴으로 돌아 올 겁니다. 거기서 얻는 게 뭘지 모르지만...

40~50일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
그럼 다녀올게요.. 나마스테님, 보고 싶은 나마스테님~~~ 

                안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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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1.

갑자기 콧등이 매워 오네요. 
지방 출장 갔다가 오늘 사무실로 올라와서 누님 메일을 찬찬히 읽었거든요. 땅끝 마을에서 통일 전망대까지라니요... 거기가 어디라고요....
그렇지만 그런 시도를 한 것으로도 누님은 제가 이생에서 만난 분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봄꽃들이 누님 걸음 보다 한발 앞서 북상을 시작했지요. 누님 가는 그 길 꽃 등불 켜서 불 밝히려고요. 

제 선배는 목적이 있는 인생은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아름다운 마음과 어울리는 국토 종단에 부디 성공 있기를. 타박타박 걸어 또 다른 땅끝인 통일 전망대에 이르시기를.

가끔 외로우시면 저에게 메일 주세요. 길 위에서 쓰신 글 고맙게 읽겠습니다.
그리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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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2.

어제는 땅끝마을에서 남창까지 22키로를 걸었고, 오늘은 강진까지 32키로를 걸었어요.
7시간이 걸렸어요. 봄볕은 따뜻하고  꽃은 피어나고 아주 좋은 계절에 종주를 시작한거지요.
전화를 하려니까 알아야지요. 
제 전화 번호는 011-719-**** 입니다.
전화로 나마님 전화 번호 알려 주세요.

이제 나가서 숙소 정하렵니다. 연락 주세요.

강진의 피시방에서..안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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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2.

누님, 어제 우리 모임에 열분 정도 오셨습니다. 세월의 흐름이 무심하다는 말에 동의를 합니다만 그 세월에 녹아 있는 그리움은 무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맑은 쇠주 앞에 놓고 정담을 나누다 덜렁 누님 이야기를 해버렸습니다. 

"제가 메일을 받았는데요, 출장 중 경황이 없어 자세히 못 읽었거든요. 어제 서울 올라와서 다시 읽다가 그만... 콧등이 매워왔습니다."

"??..."

"안나 누님인데요, 해남 땅 끝 마을에서 삼팔선 통일 전망대까지 국토 종단을 시작했어요. 그 내용을 읽다 보니 울컥 뭔가 치밀어 오르네요. 춘설이 모자 챙을 살짝 덮은 사진도 함께 보내왔어요
모임 사람들이 놀라더군요.

먼젓 번 메일에도 말씀 드렸지만 누님은 참 아름다운 일을 행하고 계시는 겁니다.
공연히 제가 미안스럽고 죄송하고... 뭐 그런 감정이 되네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이런 생각이 불현듯 듭니다.
누님은 발로 글을 쓴다. 소식을 받은 나는 손으로 답장을 쓰고 있다. 발과 손. 홀로 걷는 자유로움. 가끔씩 밀려드는 외로움. 당신이 발로 쓴 단상을 읽은 나는 답장을 쓴다. 시공을 넘나드는 편지들엔 진실이 있다. 왜? 발은 정직한 법이니까. 그리고 나도 그러한 발품 팔은 경험이 무수히 있지 않은가!

허락하신다면 누님이 보내준 글과 제가 쓴 답장을 우리 모임 홈에 올리면 안될까요?
길 위에서 쓴 편지와 불경스럽게 사무실에 앉아 쓰는 편지. 한 꼭지 제법 충실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한 저어되는 마음도 있습니다. 
훌훌 자유롭게 이 땅을 관조하며 걸어야 할 여여로움이 변형될까 봐서 입니다. 

어찌 되었던 누님의 하루 행정이 끝나면 그 단상을 기록해야 합니다.
카메라와 수첩은 과감하게 배낭 밖으로 추방해라
이 말은 제가 산을 다니며 선배들에게 들었던 금언입니다.

느낌의 기록과 영상은 나를 위하여 기다려주지 않거든요. 
그리하여 누님의 눈이라는 창을 통해 살가운 이 땅의 해석을 듣고 보고자 합니다.

... 어디쯤 걷고 계십니까?

                                              서울에서 나마스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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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3.

오늘은 순창에서 임실까지 왔어요,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서 헛걸음 4키로를 걸었지요.
이제 모텔에 들 시간입니다.

이 시각이 제일 싫습니다.
낯선 모텔에 들어서기도 싫고 혼자서 빈방에 있기도 서글픕니다.
한정 없이(?) 주어진 이 자유가 왜 또 이렇게 외롭습니까!

외롭지 않으려면 구속을 감수해야겠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
이제 돌아가면 제 주변 사람들한테 아주 잘 할 것 같습니다.
목 메이게 그리운 이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거겠지요?

오늘 아침에 우리 영감이 저더러 "여보, 사랑해!" 라고 했어요.
아마 다른 때 같았으면 웃었을 텐데 오늘은 눈물이 핑 돌았어요.

어제는 광주시 광산구 송정리에서 걸어오다가 중간에서 공원 비슷한 곳에서 40여분을 잤어요. ^^ 여자가(저 아직 여자예요 ^^) 길에서 자다니...
그런데 길 가다가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해지는 시간이 있어요.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걷는 거지요. 

내일은 진안까지 가는데 90리길이 될듯합니다. 다음 피시방 들리면 연락드리지요.

            안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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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장 3

누님. 
훠이훠이 걷는 남도 길은 지금 신록으로 온통 초록빛이겠습니다. 
그리도 춥고 눈 많았던 지난 겨울이 언제 왔다 갔느냐는 듯, 바람도 봄바람이겠습니다. 

길옆으로는 노란 개나리가 폭포를 이루고, 봄기운 충만한 낮은 산등성이에는 성급한 진달래가 연분홍 꽃을 부끄러운 듯 틔워 내겠습니다. 
햇빛을 톡톡 튀겨내는 초록 잎새가 주는 한철 윤회의 싱그러운 산하. 
그건 살 떨리는 각성이고 길 위의 사람들에게 환희심을 불러일으키는 풍경이겠습니다. 

봄은 남녘에서, 산 위에서 먼저 옵니다. 
느릿느릿 걷고 계신 누이의 발걸음에 맞춰 꽃 소식의 북상도 조금 속도를 늦춰 줬으면.
먼 길 가는 나그네와 어깨동무라도 하여 길동무가 되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만 노란 병아리 뒤뚱거리면서도 앞서 달려가듯, 누님 걸음 보다 저 만치 앞서 서울에도 개나리가 활짝 피었답니다. 

그러나 길가는 나그네는 여여로운 법입니다. 
진달래 뒤를 이을 복숭아꽃 살구꽃 배꽃에 남녘 소식 전해 주십시요. 
꽃바람 결에 들리는 누님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 느낌이 아주 각별합니다. 
그렇군요. 누님이 걷는 길은 지금 제철을 맞은 꽃길입니다. 

붉은 철쭉도 우리보다 먼저 볼 것이고, 지금 서울에선 개화를 앞둔 하얀 목련도 남녘에서는 활짝 꽃잎을 열었겠습니다. 
분홍 벚꽃. 연두색 제비꽃. 담홍색 금낭화도 찾아보시길 권합니다. 

색을 잘 구별하지 못합니다마는 전문가인 화가들도 식별 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 봄은, 색깔의 잔치를 벌리고 있겠습니다. 
그 많은 색들이 땅 속에 숨어 있었다니요. 

그것들을 피우기 위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곳이 바로 땅 속이라는 걸 생각해 봅니다. 
그러니까 그 색깔의 근원이 땅 속이라고 해도 별 반 다름이 아니겠습니다. 
누님, 땅 속 어디에 이런 물감들이 숨어 있었을 까요?. 
그리고 꽃들은 어떻게 자기들의 색깔만을 골라 땅속의 물감을 길어 올렸을까요. 

나무들이 그 보물 창고에서 길어 올린 녹색의 물감을 보십시요. 
햇볕에 자르르 윤기 흐르는 녹색 구릉은 순하게 구비치는 파도와 같지 않습니까. 

문득 누님이 걷고 있는 붉은 황토빛 남녘 땅은 초록 바다란 생각이 듭니다. 
그 초록바다를 가르며 유영하듯 걷고 있는 누님은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오르고 있는 연어 같은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루 행정을 끝내고 낯선 땅 낯선 여관에서 여정을 마무리 할 때 문득 외로움이 치민다는 말씀에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걷다 걷다 힘들어, 어느 공원 벤치에서 잠시 눈을 붙이셨다는 말씀에 미소가 떠오릅니다. 

그게 바로 나그네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겠습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진폭이 넓은 순수라는 이름의 힘이라는 생각입니다. 

아드님 블로그 주소를 알려 줄수 있습니까? 
내가 생각해도 누님의 길에서 쓴 편지에 가슴이 짠- 한데 아들의 입장이 전해져 옵니다. 

묵상은 강요해서 되는 게 아닌 걸 잘 압니다. 
길은 그 묵상을 보너스로 줍니다. 
그 느낌들 꼭 메모해 두시길 다시 한번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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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와 답장은 계속 될 것이다.
나는 잊고 있었던 사랑에 빠졌다.
칠순이 내일 모래인 누님.
평생 봉직하던 학교에서 정년 퇴임을 한 후, 늦깍이로 배운 산행에서 삶의 새로운 눈뜸을 시작한 누님.

누가 이 누님에게 2000리가 넘는 이 땅의 땅 끝에서 땅 끝까지 종주를 강요한 것이 아니다.
다복한 가정이 있고, 번듯한 직장에 다니는 아들들이 있으며, 은퇴 후 안락한 노후를 보낼 권리와 조건과 경제적 힘이 있다.  
그런데 나그네가 되어 낯선 길을 나서다니. 그것도 상상조차 끔직한 먼 길인데.
그 길떠남은 스스로의 결정이었고, 그것이 나를 눈물나게 한다.
존재의 확인이다. 가파른 세상을 여유롭게 되돌아보는 각성의 길이자, 고행의 길이고 마음자리를 찾아가는 수행의 길이며, 우리에게 잘 살고 있느냐고 허공을 울리는 죽비 소리다. 

누가 이런 마음과 사랑을 나눈 적 있는가?
누가 이런 외로움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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